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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감정 노동자의 비애

by 언덕에서 2015. 5. 29.

 

 

감정 노동자의 비애 

 

친구 L교수는 내게 말했다.

 "휴대폰 통신사 고객센터에 대고 따졌어. 대리점에서 내게 약속한 내용과 달리 청구서가 오는 거야. 한참을 퍼부었더니 속이 시원하네."

 걱정스런 표정으로 내가 말했다.

 "이 사람아, 전화 받는 그 아가씨들 속에는 자네 제자들도 있을 걸. 그렇게 청구된 것과 걔들이 무슨 상관이 있나? 그들은 회사의 가장 밑바닥에서, 회사가 저지른 쓰레기를 치우는 사람들이야. 전화 받는 직업이라는 이유 하나로 갖은 욕을 듣는 것이지. 자네 딸이 그 자리에서 일한다면 그렇게 하겠어? 아마 전화 받은 그 아가씨는 오늘밤 잠을 이루지 못할 걸? 아니면 지금쯤 스트레스를 삭히려 술을 마시고 있든지…….“

“아, 그렇군. 과연 다시 생각해 보니 그렇구나.”

 

 

 

 

 

 작년에 라면상무 사건이 나라를 떠들석하게 헸고 금년에는 땅콩회항 사건이 그랬다. 이 두 사건의 뒤에는 감정노동자라는 우리 시대의 애처로운 부산물이 존재하고 있다. “사랑합니다. 고객님.” 모 통신사의 콜센터에 전화를 했을 때 들었던 말이다. 언제 봤다고 사랑한다니? 그래도 듣는 사람 쪽에선 기분 나쁘진 않다는 평이 있지만 내가 볼 때는 이면에 숨어있는 감정노동자의 비애를 훔쳐보는 듯해서 씁쓸했다. 매일같이 낯선 이에게 미소 지으며 사랑한다고 말해야 하는 사람의 속은 어떨까. 겉으로 웃으며 속은 숯검정이 될 것이다. 몇 시간 전에 보험회사 콜센터에 문의 사항이 있어 전화를 했다. 웃음소리를 만들어가며 내게 응대를 했지만 그녀와 통화하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알리 러셀 혹실드 교수는 배우가 연기를 하듯 직업상 본인의 감정을 숨긴 채 다른 얼굴과 몸짓을 지어내야 하는 사람들을 ‘감정노동자’라고 했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내가 약 10년전에 고객센터의 책임자로 근무했던 기억 때문이다. 그래서 감정 노동자의 심리에 대해 누구보다 더 많이 알고 있다고 자부하는 편이다.  

 

 

 

 

 호치민시(市)에서 부산으로 오는 베트남 국적 항공기에서였다. 민소매 상의에 슬리퍼를 신은 젊은 부부가 아기를 안고 내 앞자리에 앉았다. 팔뚝에 커다란 호랑이 문신이 그려진 남자는 자리에 앉자마자 여승무원을 불러 서툰 영어로 아기에게 먹일 우유와 빨대를 달라고 했다. 생우유를 들고 온 베트남 여승무원은 미안해하며 '기내에 빨대(straw)가 없다‘고 했다. 그때 터져 나온 말.

 "야! 이 씨×년아!"

 지금도 그 끔찍했던 장면이 생생하다. 그 아가씨는 한국인들을 평생 어떻게 생각할까?

 

 

 3차 산업이 고도로 발달하고 대인(對人) 서비스의 가치가 높아지면서 감정 노동자가 급증했다. 친절이 생명인 전화상담원, 상사의 기분을 살펴야 하는 비서, 즐거운 식사 분위기를 만들어내야 하는 식당종업원, 관람객에게 언제나 밝은 얼굴을 보여야 하는 놀이공원 직원, 승객을 편안히 모셔야 하는 항공승무원이 대표적일 것이다. 골프장 캐디처럼 감정노동과 육체노동을 합친 복합노동을 하는 경우도 있다.

 억지 미소를 짓고 마음에도 없는 친절을 온몸으로 표시해야 하는 감정노동의 칼날은 야금야금 영혼을 파괴한다. 그런 예를 '땅콩회항'이나 '백화점 주차장' 사건을 통해 많은 이들이 알게되었다. 감정 노동자는 귀가하면 가족에게 짜증을 낸다고 한다. 그건 다 이유가 있는데 그것은 일하면서 참았던 모멸감 때문이다. 그렇게 참고 참았던 억눌린 분노는 우울증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특히 이들을 괴롭히는 것이 이른바 ‘진상 고객’으로 직원에게 잘못을 뒤집어 씌우거나 욕설을 퍼붓고 상식을 넘어서는 억지 요구를 하는 이들이다. 위의 사진에서 나오는 '정여사'처럼 과도한 요구를 하며 감정 노동자를 괴롭히는 이들은 의외로 많다(나는 저 개그프로를 보면서 고통스러워 숨이 막히는 느낌이었다). 감정노동자가 너무 저자세인 것도 문제라는 말이 있지만 ‘고객감동’을 부르짖는 회사 측은 해당 직원만 나무라고 인사상 불이익까지 주기에 어쩔 수 없다. 대다수 감정노동자가 비정규직으로 노조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것도 치명적인 문제다.

 이른바 비정규직으로 대별되는 이들만 그렇겠는가. 말단 공무원, 교통단속 경찰, 사회복지사도 넓은 의미에서 감정노동자로 보인다. 결혼을 앞두고 자살한 여성 사회복지사는 2분마다 울리는 전화, 욕설을 퍼부으며 쫓아다니는 민원인 때문에 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작년 대한항공 비즈니스석을 탄 포스코에너지 임원이 라면 서비스가 마음에 안 든다며 여승무원을 폭행했다가 어렵사리 올랐을 임원 자리에서 추락했다. 무식하게 쇠만 만지는 철강기업 임원이어서 감정노동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치더라도 사무장과 스튜디어스를 폭행한 대한항공 오너가족의 경우 그녀의 회사관도 엿볼 수 있었다. 

 

 

 

 

 

 

 

 

 

 

 콜센터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흔히들 고객센터로 부르는 그곳에서는 하루 100통 이상의 전화를 받는 것은 기본이다. 전화가 많이 몰리는 월요일이나 월말에는 200통을 받도록 세팅할 때도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많은 전화 통화 내용의  절반은 “죄송하다”는 말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죄송하다' 말을 들은 사람은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약점을 잡았다는 듯  '죄송할 짓을 왜 했느냐'며 욕을 하는 것은 물론이고 윗사람 바꾸라며 공격하기 일쑤다. 윗사람을 바꾸면 어떻게 될까? 그들은 그 윗사람에게도 같은 욕을 하며 자신이 '갑'임을 과시한다. 그리고 그 윗사람은 이렇게 대책없이 전화를 올린 직원을 곱게 볼 리 만무하다. 이러니 직업병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매일 이렇게 8시간씩 말하다보니 턱관절장애가 오는 경우, 목이 쉬어 성대가 상하는 경우, 진상고개들의 욕설과 성희롱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 6개월 이상 생리를 하지 못했다는 직원을 보았다. 비 오거나 날이 궂으면 턱이 쑤시고 어려운 발음은 잘 안 돼 고생하는 경우는 다반사다.  

 

 

 

 

 

 

 

 서비스 업종에 종사하는 소위 '감정 노동자'에 대한 조사에서 이들의 가장 큰 고충은 '상처받은 감정을 숨기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의 가장 큰 고충이 뭐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서도 반 이상이 "지나친 항의, 폭언, 욕설, 성희롱"이라고 말했다. 고객 즉 손님들도 무례한 말이 종업원들에게 상처를 준다는 사실을 대부분 알고 있다. 그럼에도 근절되지 않는 원인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우리나라가 외국에 비해 '갑의 횡포'가 지나치게 심각한 편이라는 진단을 내놓는다. 유교문화의 '사농공상(士農工商)' 전통이 남아 있어 직업으로 사람을 판단하려는 편견이 존재하는 데다, 급격한 산업화를 겪으면서 오로지 '돈'만 중요하게 생각할 뿐 다른 사람에 대한 예의나 존중을 망각하는 세태가 널리 퍼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갑의 횡포'를 근절시킬 방법은 무엇일까? 내가 생각하기에는 아주 간단하다. 지금 전화를 받고 있는 상담원이, 저 종업원이, 저 승무원이 내 딸이고 내 여동생이라는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내 딸이고 내 여동생이라면 저렇게 함부로들 대하겠는가? 우리는 지금 선진국의 문턱에 서있다. 이런 것들이 고쳐지지 않으면 선진 국민의 길은 요원할 뿐더러 우리 사회는 점점 병들어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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