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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이효석 장편소설『화분(花粉)』

by 언덕에서 2013. 7. 16.

 

이효석 장편소설『화분(花粉)』 

 

 

 

이효석(李孝石, 1907 ~ 1942)이 1939[조광]지에 연재한 장편소설로 작가의 몇 편 장편 중 널리 알려진 명작이다. '화분(花粉)'은 바람, 물, 곤충 따위를 매개로 암술머리에 운반되는 종자식물의 수술의 화분낭 속에 들어 있는 꽃의 가루를 말한다. 제목이 암시하는 것처럼 이 작품은 그의 많은 작품과는 달리 현대적인 성윤리를 가장 리얼하게 다루어, 도덕 이전의 모럴을 다루고 있는 충격적인 작품이다.

 『화분』1939조광지에 연재되었다가 같은 해에 전작 장편소설로 출간된 바 있다. 남녀의 애욕을 다루었다고 해서 발표 당시에도 상당한 논쟁을 촉발한 작품이다. 우리 문학사에서 상업적 소설이 아닌 본격소설로서 화분 만큼 남녀의 성 풍속도를 작품의 중심에 둔 작품은 일찍이 찾기 어려웠다. 남녀 간의 애정문제가 중심을 이루지만 거기에다 등장인물들 간의 복잡한 성관계와 아울러 동성애까지 다루어 변태적이고 일탈적인 성격을 지녔다. 게다가 이 소설 『화분』은 이효석의 작품 중에는 보기 드문 장편소설이다. 때문에 이효석의 작가적 면모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작품으로서 문학사적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세 남성과 세 여성이 복잡하게 얽히면서 애정의 갈등을 벌이는 이 소설에서 성()을 부끄럽고 천한 본능이 아니라 원초적이며 건강한 것으로 파악한 작가의 태도는 다분히 로렌스(Lawrence,D.H.)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작가 특유의 시적 필치가, 저속으로 흘렀을지도 모를 이 작품의 격을 유지시키는 데 공헌하고 있다. 이 작품은 발표된지 30년이 훨씬 지난 1972년 하길종에 의하여 영화화되었다. 

 

영화 [화분], 1982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한적한 교외의 ‘푸른 집에는 현마와 세란, 그리고 세란의 동생인 미란, 식모 옥녀 이렇게 살고 있다. 이따금 미남 청년 단주가 놀러 온다. 그는 현마가 경영하는 영화사에서 근무하는 사람으로 현마와 동성애 관계다. 어느 날 단주와 미란은 우연히 단주의 아파트에서 같이 자게 된다. 그들은 성인(成人)의 욕구로 괴로워했지만 아무 일없이 밤을 지내고 무척 가까워진다. 그러나 현마는 처제와 단주가 가까워지는 것을 걱정한다. 잠시라도 그들을 떨어져 있게 하기 위해 일본 길에 미란을 동행한다. 그 사이에 자유분방한 세란은 단주를 유혹해서 정을 통한다.

  한편 현마는 처제 미란에게 강렬한 애정을 느끼면서도 끝내 참는다. 동경에서 현마와 미란은 피아노를 사러갔다가 피아노를 두고 어느 한국인 청년과 말다툼을 하게 된다. 일본에 있는 동안 미란은 음악에 매혹되어 음악을 공부하기로 마음먹는다. 미란은 귀국 후 영훈이라는 음악 교사에게 교습을 받게 되는데 그는 바로 일본에서 피아노를 살 때 시비를 걸었던 청년이었다. 그들은 차차 사랑하게 되었으나 영훈에게는 그를 사랑하는 사팔뜨기 여인 가야가 있었다. 그런 중 미란은 단주의 교묘한 유혹에 빠져 정조를 빼앗기고 괴로워한다. 그러나 음악 교사 영훈을 향한 그녀의  연정은 더욱 짙어만 간다.

  어느 날 가야의 약혼자 갑재라는 럭비 선수가 나타나 영훈에게 폭력을 가한다. 미란과 가야는 합세하여 그 위기를 구해 주지만 영훈은 그 길로 종적을 감추고 만다. 그래 여름 피서 떠날 준비로 푸른 집이 들떠 있을 때 뜻밖에도 영훈이 미란에게 건 장거리 전화가 온다. 그곳은 바로 그들이 가려는 피서지였다. 그곳에서 그들은 사랑이 깊어지고 서울에 남게 된 단주는 식모 옥녀를 범한다. 피서지에서 현마는 술에 취하여 처제 미란을 범하게 되고, 미란은 그날 밤으로 그곳을 떠나 영훈의 사무실로 온다.

 아무도 미란의 행방을 모른다. 영훈은 단주로부터 미란의 처지를 모두 들었지만 자기의 사무실로 되돌아 와서 미란을 만났을 때 그들의 사랑은 더욱 강렬해진다. 세란과 단주는 육욕에만 빠져 정신없이 지내다가 끝내 현마에게 발각되고 파국이 온다. 미란과 영훈은 가야의 임종을 맞고 얼마 뒤 현마의 도움을 받아 유럽으로 즐거운 여행을 떠난다.

 

영화 [화분], 1982

 

 부유한 사업가 '현마'는 본부인에다 첩인 '세란'까지 두고 있으면서도 남몰래 남색을 탐한다. 어느 날 그는 길에서 주워온 아도니스를 닮은 미소년 '단주'에게 빠져 세란과 동거하는 집에까지 그를 들인다. 그 후 세란의 여동생 '미란'과 단주가 어느 폭풍우 치는 날 엮이면서, 식모 '옥녀'와 미란의 피아노 교사 '영훈'마저 더한 여섯 남녀는 격정 속으로 엉켜들기 시작한다.

 세 남성(현마, 단주, 영훈)과 세 여성(세란, 미란, 옥녀)이 복잡하게 얽히면서('갑재'와 '가야'는 별개로 한다) 애정의 갈등을 벌이는 이 소설에서 성(性)을 부끄럽고 천박한 본능이 아니라 원초적이며 건강한 것으로 애로티즘에 대한 소설의 구성을 갖고 있으니 1930년대의 작품으로서 파격적이다. 작가의 펜끝은 사회적 모순 속에서 인간의 진실을 추구하는 내면적 영상(映像)의 탐구하고 있다.

 이 작품은 적나라한 인간의 본연의 모습을 알고자 줄기차게 노력했던 이효석의 작가적인 특성을 나타내는 작품이다. 현마의 아내인 세란은 남편의 동성애인인 이십여 세의 청년 단주와 뜨거운 불륜의 관계를 맺고도 후회할 줄 모르는 인간으로 부각되어 있고, 현마는 처제인 미란을 범하며, 미란은 단주와 동침하고, 다시 음악교사인 영훈과 결합하며, 단주는 식모를 범하는 등, 기존 도덕에의 과감한 도전을 보여주고 있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이효석은 현대인의 성윤리에 대한 사고방식의 한 단면을 도식해 보이려고 했으며, 에로티즘을 통한 비극적인 사랑을 작품 말미에서 낭만적으로 형상화하려 한 듯하다. 작품 전반적으로 기성 사회의 도덕과 윤리가 깨어지고 새로운 윤리관이 엿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미소년 아도니스인 단주는 팔이 부러지고 세란은 눈이 멀며, 현마는 그보다 더욱 가혹한 마음의 파멸을 갖는다는 비극적 결말은 작가가 새로운 도덕관의 수립보다는 기성윤리로 수렴되었음을 보여준다.

 

 

 녹음이 짙어지기 시작하는 5월 어느 날, 현마와 그의 아내 세란, 그리고 세란의 동생 미란이가 사는 집에 작은 사건이 생긴다. 찔레꽃 순을 따던 미란이가 뱀을 보고 놀란 것이다. 그 바람에 목욕탕에 들어간 미란은 예정보다 빨리 월경을 한다. 때마침 들어온 현마와 그의 비서 단주에게 이 사실이 알려지자, 미란은 집을 뛰쳐나가고 그녀를 달래기 위해 단주가 따라 나가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혈육간의 애욕과 근친상간을 그린 이 작품은 그 자체가 이미 비극적 애정구도를 보여주고 있다이 작품은 이러한 애정 소설의 전형으로서 무의미한 인간의 심층에 깔려 있는 관능적인 애정에 대한 탐미적 의식과 윤리를 깊이 있게 다루고 있다이런 면에서 이효석의 『화분』은 독자에게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욕망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이 작품의 줄거리는 한마디로 말해 애욕의 갈등이요, 육체의 교섭이다. 현마와 세란을 중심으로 한 미란과 단주, 옥녀, 영훈 등이 야릇한 복선을 보이면서 서로 얽혀가고 있다. 그 종착점에서 잘 헤어난 장본인은 미란과 영훈이다. 장편소설 화분』이 제시한 문제점은 작품의 결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지녔던 이른바 에덴적인 성의식이 어떠했던가 하는 것이라 하겠으며, 이에 작가의 행복관이 덧붙여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