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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철학서

세계를 개혁한 책『군주론(君主論)』

by 언덕에서 2013. 10. 17.

 

 

 

세계를 개혁한 책군주론(君主論)

 

 

 

 

 

 

1532년 니콜로 마키아벨리가 쓴 『군주론』은 수많은 정치지도자들, 혁명가들, 그리고 자국의 권력자의 실체를 시민들에게 폭로하려는 사람들을 위한 지침서로서 수세기 동안 읽혀 왔다. 이 책은 조국 통일과 외세축출을 열망하던 이탈리아의 정치가 마키아벨리가 가지고 있던 염원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다.

 

 마키아벨리는『군주론』에서 정치 행위가 종교적 규율이나 전통적인 윤리적 가치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근대 현실주의 정치사상을 최초로 주창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역사상 많은 정치사상가들의 편력이 보여주듯이, 정치사상가로서 마키아벨리가 얻게 된 불후의 명성은 그가 공직생활에서 추방된 후 자신의 의사에 반해 얻게 된 여가, 즉 강제된 칩거생활을 활용하여 집필한 저작들에서 유래한다.

 이는 사마천으로 하여금『사기』, 정약용으로 하여금 『경세유표』, 『목민심서』 등을 집필하게 한 유배생활과 그 맥락을 같이한다. 1513년에 원고가 완성된『군주론』은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필사본 형태로 읽혀지다가 거의 사후인 1532년에 비로소 출간되었는데, 그 내용에 대한 비난이 거세어지자 1559년 교황 파울루스 4세에 의해서 교황청의 금서 목록에 등재되는 “명예”를 누리기도 했다.

 

 

 

 

 

 

 

 이 책은 르네상스시대 대표적인 정치적 저작으로, 근대 정치사상의 기원이 되었다는 점에서 근대정치사상사에서 중요한 의의를 지니고 있다. 1512년 메디치가(家)의 복귀로 피렌체공화국에 정변이 일어나자 저자는 추방되어 피렌체 교외의 산카시아노 근처의 산장에 은거하게 되었다. 이 책은 이러한 은퇴생활의 소산이다.  지난 500년 동안 무수한 오해와 다양한 견해 속에서도 <군주>에 대한 일치하는 평가가 있다고 한다. 즉, 정치의 본질적인 요소인 '힘'에 대한 통찰력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이때 힘은 권력과 권위에 국한되지 않고, '지배를 받지 않으려는 열망'까지 포함하고 있다.

 마키아벨리는 이 같은 힘에 대한 통찰을 통해 '지배를 받지 않으려는 열망'을 가진 '다수'의 뜻을 충족하는 것이 곧 강력한 나라의 원동력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이런 생각이 변화를 추구하는 시대적 열망을 대변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했다. 이탈리아 통일을 염원했던 혁명가뿐만 아니라 프랑스혁명 지도자도 이 책을 통해 변화의 열망을 키워 나갔다. 러시아혁명을 주도했던 트로츠키는 "마키아벨리는 민주주의 혁명을 보급시킨 정치철학자"라고 평가했다.

 저자는 로렌초에 대한 헌사(獻辭) 속에서 본서의 '재료의 진실성과 주제의 중요성'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데, 이것은 저자가 중세의 전통적인 군주론과 전혀 다른 기도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전편 26장으로 되어 있으며,  그 구성면에서,  ① 각종의 군주국, 특히 신흥군주국의 통치방법(1∼11장)  ② 군주의 군사문제(12∼14장)  ③ 군주가 좇아야 할 행위의 준칙(15∼25장)  ④ 군주에의 호소(26장)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르네상스 시대 화가 베노초 고촐리의 ‘동방박사의 여정’에 등장하는 말 탄 인물은 마키아벨리가 <군주>를 헌정한 로렌초 메디치다

 

 

 전체적인 구성은 일목정연하게 정리되어 있으며 저자는 이탈리아 산문의 거장답게 아름다운 문체로 각 장마다 논리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저자가 묘사하는 군주의 모습은 이를테면 반인반수(半人半獸)가 될 수 있어서 인간과 짐승을 부릴 줄 알아야 하며(18장), 그 이상상을 '여우와 사자의 2역을 실행하는' 군주의 모습에서 찾아냈다.

 이 책은 한마디로 말해서 '기술의 서(書)'이다. 저자는 인간성에 대하여 조금도 존경을 보이지 않고 가차없이 인간의 모든 심리적인 약점을 들추어 폭로하면서 새로운 정치 기술을 논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 소위 마키아벨리즘의 본질이 나타난다. 근대정치사상사의 고전적 저작 중에서 이 책만큼 논의를 불러일으킨 것은 없으며, 여기에서 보이는 저자의 사상뿐만 아니라 집필동기를 둘러싸고 숱한 해석이 행해졌다. 오늘날 마키아벨리즘은 당시 이탈리아의 정치적 상황에서 생긴 필요악으로 이해되고 있다.

 로버트 다운스는 <세계를 개혁한 책>이라는 저서에서 16권의 책을 해설했는데, 인문계통에서 제일 먼저 소개한 책은 <권력정치의 해부>라는 부제가 붙은 마키아벨리(Niccolo Machiavelli)의 <군주론>이다. 누구나 <군주론>이라면 몰라도 소위 ‘마키아벨리즘’이라면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는 주의(主義)’라는 정도는 알고 있을 것이다.

 이렇게 유명한 마키아벨리즘이란 말은 <군주론>이라고 하는 그리 많지 않은 책에서, 또 작은 부분적인 설명에서 따온 뜻인다. 실상은 세계를 떠들썩하게 하는 마키아벨리즘도 마키아벨리가 쓸 때에는 오늘날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뜻에서 쓰였다고 하는 사실을 이 책 <군주론>을 자세히 읽으면 알게 된다. 확실히 지금까지도 마키아벨리즘이라고 하면, 악질적인 주의로 통용되고 있다.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을 발표한 뒤 위선자요, 음모가로 알려졌을 뿐만 아니라, 한때 17세기의 영국에서는 ‘악마’라는 말은 사탄과 마키아벨리의 대명사라고까지 혹평한 일이 있었다.

 

 

 

 

 

 

 마키아벨리는 1469년 5월 4일 이탈리아의 피렌체에서 태어났다. 그는 젊어서 르네상스의 신학문인 인문학을 공부하고, 정계에 들어가서 눈부신 활동을 하게 되었는데, 1498년 그의 나이 29세에 벌써 플로렌스 공화국의 국무장관이 되었다. 마키아벨리가 활동하던 무렵, 이탈리아는 아직도 근대국가가 형성되지 못했고, 여전히 중세기적 자유도시로 분립되어 있었는데, 서로 세력 확충에서 오는 싸움이 잦았다.

 이러한 어수선한 때 마키아벨리는 말이나 글을 통해서 애국ㆍ애족을 호소하고 정치ㆍ군사 등에 탁월한 식견을 발휘했을 뿐만 아니라, 순수문학적인 창작에도 힘써서 시ㆍ소설ㆍ희곡ㆍ역사 등 많은 저술을 남겨 이탈리아 문학사상에서는 물론, 16세기의 위대한 산문가로 정평이 있다. 마키아벨리는 1512년 정권이 전복되어 독재정권이 수립되자, 이를 타도하려는 음모에 가담했다는 혐의를 받고 투옥되었다가 간신히 풀려나왔으나, 정계에서 밀려나게 되었다.

 이때 마키아벨리는 저술을 통해서 국가에 봉사하려고 결심했다. 마키아벨리는 새로운 공화국을 융성하게 하는 데 필요한 지도자, 다시 말하면, 군주의 성격과 그 지도이념으로서의 지침서를 쓰려 한 것이다. 당시는 군주란 이름뿐이고 모든 권력이 교황(法皇)에게 있음을 좋지 않게 생각한 그는 이상적인 군주가 나타나서 이탈리아를 외국 세력에서 해방해야 하겠다는 결심을 했다. 마키아벨리의 사상이 이렇게 교황과 대립되었기 때문에 <군주론>은 저자인 마키아벨리가 죽은 지 6년이 지난 뒤에야 출판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에서 <군주론>을 전부 불태워 버리고 나아가서 마키아벨리의 모든 저서를 금서목록에 넣어서 말살하려 하였다.

 

 

 

 

 

 마키아벨리가 훌륭한 저서를 남기고도 그 후세 사람들에게 좋지 못한 인물로 평가되는 원인이 소위 ‘마키아벨리즘’인데, 바로 이것이 앞에서 지적한 군주가 반은 인간이요, 반은 짐승이 될지라도 오로지 국가를 위해서는 이를 사양해서는 안 된다고 하는 구절에서 근거한다.

 그러나 이러한 결론을 내리기까지에는 많은 예증과 시대적인 배경이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것을 알지 못하고 결론만을 잘못 원용하다가 역사상 큰 변을 당하는 예가 많았는데, 가까운 예로 히틀러와 무솔리니는 언제나 이 <군주론>을 머리맡에 놓고 애독했을 뿐 아니라, 그들 당원에게 권한 책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은 이를 바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하는 사실은 사가(史家)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권력을 추구하는 소수는 다수의 시민이 열망하는 자유를 지켜줘야 한다. 자의적 지배로부터 자유로운, 비(非)지배에 대한 합의를 해줘야 한다. 이것을 하지 못할 때 군주든 공화정의 지도자든 죽음을 당할 수 있다는 공포를 마키아벨리는 일깨웠다.”

 오늘날 위정자들이 새겨 들어야 할 문구가 아닐까 한다.

 


 

☞마키아벨리(1467 ~ 1527) : 르네상스 말기 이탈리아의 사상가. 피렌체 공화정부의 서기관으로 재직 중, 외교ㆍ군사 면에서 활약, 동시에 정치ㆍ군사ㆍ문학ㆍ역사 등 각 방면에 이르는 많은 저작을 펴냈다. 인간은 사회적ㆍ정치적 존재이며, 모든 정치는 힘의 관계에서 비롯된다는 통찰과, 현재의 여러 조건 하에서 인간은 악(惡)으로 기울어지는 경향을 피할 수 없다는 통찰이 그의 사상적 기반을 이루고 있다.

당시 많은 소(小)국가로 난립해 있던 이탈리아의 발전을 위해서는 강대한 권력을 가진 군주에 의한 통일국가의 수립이 불가결하다고 생각하고, 이를 위해서는 도덕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순수하게 정치의 기술적 합리성에 철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