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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암흑기 국어학의 토대를 마련한 한글학자 주시경

by 언덕에서 2012. 4. 21.

 

 

 

 암흑기 국어학의 토대를 마련한 한글학자 주시경(周時經.1876.12.22∼1914.7.27)

 

 

 

 

 한글학자. 본관 상주(尙州). 호 한힌샘ㆍ한흰메. 초명 상호(相鎬). 황해도 평산군 인산면 진석리 부친 주면석의 4남 2녀 중 둘째로 출생. 1897년 배재학당 만국지지(萬國地誌) 특별과를 졸업, 이어 보통과에 입학, 1900년 졸업하였다. 1896년 독립협회(獨立協會) 조직에 참여하였고, ‘국어를 과학적으로 연구하여 겨레의 얼을 되살려야겠다’는 생각을 하여 한때 [독립신문] 교정원으로 일하면서 협성회(協成會)를 창립하여 [협성회보(協成會報)]를 발간하였고 또 [조선문동식회(朝鮮文同式會)]를 결성, 한글 기사체(記寫體)의 통일과 연구에 힘쓰는 한편, 여러 학교와 강습소의 교사ㆍ강사직을 맡아 한글을 가르치고 보급하기에 전력을 다했다.

 1898년 <국어문법(國語文法)>을 완성, 1910년 이를 수정ㆍ발간하였다. 1905년 국어연구와 사전(辭典) 편찬사업에 관한 건의서를 정부에 제출하였고, 1907년 어윤적(魚允迪)ㆍ이능화(李能和) 등과 함께 학부(學部: 교육부)의 국문연구소(國文硏究所) 위원이 되었다. 1910년 최남선과 함께 [광문회]를 창설, 국어사전 편찬을 담당하면서 한글 기사체(記事體)의 통일과 그 연구에 힘썼고, 여러 강습소에 다니면서 한글을 가르치는 등 한국말과 글을 과학적으로 체계를 세워 국어학 중흥의 선구자가 되었다.

 1910년 경술국치로 나라를 잃은 뒤 보성중학교에서 조선어강습소를 열어 민족의식을 고취하다가 지병이 악화돼 38살의 젊은 나이로 숨을 거두었다.

 한편 한글 보급에 정성을 기울여 김두봉(金枓奉)ㆍ이규영(李奎榮)ㆍ최현배(崔鉉培)ㆍ장지영(張志暎)ㆍ이병기(李秉岐) 등의 제자를 길러냈다. 21년에는 이들 문하생이 중심이 되어 [조선어연구회(朝鮮語硏究會)](한글학회의 전신)를 창설함으로써 33년 드디어 ‘한글맞춤법통일안’을 제정, 맞춤법의 과학적 연구가 결실을 보게 되었다.

 그는 세 가지 요소로 민족이 구성되어 있다고 했다. 지역공동체인 역(域)과 혈연공동체인 종(種)과 언어공동체인 언(言)으로 이뤄진 민족이 독립하게 되는데, 역은 독립의 기(基)이며 종(種)은 독립의 체(體)이며 언(言)은 독립의 성(性)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성은 본질, 본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것이 없으면 체가 있어도 체가 아니요 기(基)가 있어도 기가 아니며 민족의 구성 요소 중에서 성(性)인 언어가 가장 본질을 이룬다고 강조했다.

  주시경은 ‘주(周)‘를 ’한‘(크다, 바르다, 첫째의 뜻)이라 했고, ’시경(時經)‘을 ’힌샘‘(’힌‘은 맑다, 높다, 온전하다. ’샘‘은 생명, 희생, 영원을 뜻함)이라 불렀다. 즉 ’한힌샘‘은 순 우리말로 된 선생의 또다른 이름이다.

 그는 일생을 오로지 한글 연구에 바쳐 문법과 맞춤법 등을 만들고 가다듬으며, 제자들을 길러 내어 후일 [조선어학회]를 결성케 하는 등 뚜렷한 선구자적 업적을 남겼다. 1980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동아대학교 정갑주 교수가 완성한 주시경 선생 영정

 

【업적】

1. 최초로 ‘한글’이란 명칭 사용

2. 문법 용어를 순 우리말로 지어 사용

3. 국어사전 편찬 착수

4. 국어학의 토대 마련

5. 현대 정서법(正書法)의 기초 수립

 

【저서】<조선어문법음학(朝鮮語文法音學)>(1908) <조선어문법>(1910) <말의 소리>(1914) <국어문법>(1910) <한문초습(漢文初習><국문초학(國文初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