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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朋滿座

정신과 의사 정혜신이 쓴 심리치유서『홀가분』

by 언덕에서 2011. 6. 28.

 

 

 

 

정신과 의사 정혜신이 쓴 심리치유서『홀가분

 

 

 

 

 

 

 

언젠가 이 블로그에서 마광수 시인의 시 <효도에>를 소개한 적이 있다. 나와 친한 어느 네티즌은 그간 이유없이 싫었던 편견을 없애는 계기였다는 의견을 주었다. 변태성욕자의 전형처럼 보도된 신문기사의 선입견과는 달리 마광수의 시는 젠틀하며 너무도 지적이고 서정적이기에 발생하는 부분이 아닐까 한다. 마광수 교수는 우리사회의 전형적인 자유주의자로 '구속', '수감', 항소심' 등이 말이 등장하는 그의 이력은, 마치 무슨 민주화 운동가의 이력을 보는 듯할 만큼 극적이다. 그러나 문제는 언론의 보도가 선정적이고, 마광수 교수 자신은 작가로서 글을 썼을 뿐이라는데 있다. 객관적으로 보아도 그렇다. 마광수 자신은 자신의 하고 싶은 말, 옳다고 생각한 말을 했을 뿐이고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한 자신은 처벌받을 일을 한 적이 없다.  단지, 성(sex)에 관해 자유분방한 작품을 썼을 뿐이고 그 평가는 그것은 독자의 몫이기 때문이다.

 이런 면을 보면 우리가 사회적 인물(‘공인’이라고도 표현한다)에 관해 가지고 있는 선입관이란 게 얼마나 무섭게 자리 잡고 있나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MB가 하는 정책은 무조건 싫은 사람(물론 MB의 정치력 부족이 가장 큰 이유겠지만), 지난 정권 때는 애인과 헤어진 것도, 폭우가 쏟아진 날씨조차도 모두 노무현 탓으로 돌리던 현상도 그러한 부류로 여겨진다. 이 글을 쓰는 나 역시 비슷한 선입관을 가지고 사회적 인물을 대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한 선입관으로 대하는 대표적인 인물이 정신과 의사 정혜신, 가수 백지영, 정치인 손학규, 정몽준, 방송인 강호동, 정치학자 박명림 등이 아닐까 한다. (이유는 일일이 설명하기 그렇고 향후 이런 점들은 고치도록 하겠다)

 

 정신과 의사 정혜신에 대한 나의 선입견은 세간에서 굴러다니는 잡지기사를 기억하는 데서 기인한다. 2001년 동아일보 계열잡지사에서 나온 기사는 정혜신은 자신에게 치료차 찾아온 유부남 환자의 가정을 깨고 결혼한 의사이며, 자신의 행복을 위해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준 사람이 방송/언론 등에서 강의를 할 자격이 있느냐의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두 얼굴의 인간으로 치부하곤 했는데 <홀가분>이라는 이 책을 읽고 그러한 선입관을 많이 털어내게 되었다. 

 

 

 

 

 

 책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사회라는 거대한 ‘정글’ 속에서 현대인은 자신의 생살을 부비며 살아간다. 그리고 사회적 지위, 부나 능력, 세상의 속도와 시선 같은 외형과 잣대에 휘둘리며 끊임없이 상처받고 갈등하기 마련이다. 타인의 요구와 세상의 평가에만 맞추어가다 보면 누구랄 것 없이 삶의 고비와 ‘막다른 골목’에서 심리적으로 무너질 수밖에 없다. 그럴 때 누군가가 진심을 다해 조언해 줄 수 있다면, 혹 그렇게 되지 않도록 미리 마음에 예방주사를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 책은 그런 도움이 될 수 있는 괜찮은 책이다.

 책의 제목인 ‘홀가분’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감정을 표현할 때 즐겨 쓰는 430여 개의 단어 중 긍정성을 뜻하는 쾌(快)의 최고 상태로 꼽은 말이라고 한다. 이 책은 바로 세상의 기준과 시선에 불안해하지 않을 수 있도록, 그 어떤 경우에도 나를 사랑하고 지지함으로써 온 마음으로 홀가분해질 수 있도록 응원하는 독특한 형태의 심리처방전이라고 저자는 밝히고 있다.

 이 책은 마음 상태에 따른 다섯 가지 심리처방전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처방전에서는 조건 없이 ‘나를 사랑하는 법’을 담았고, 두 번째 처방전에는 나의 상처와 고통을 뜨겁게 안을 수 있는 사람은 바로 ‘나’임을 일깨워준다. 세 번째 처방전에서는 세상과 나 사이에서 균형을 잡고 나다운 삶을 살아가기 위한 메시지를 들려주고, 네 번째 처방전에서는 사람 관계 속에서 아프고 힘들더라도 건강하게 거리를 두는 법과 마주보는 법을 담고 있다. 다섯 번째 처방전에서는 내 마음을 제대로 들여다보고 자기 자신을 알아가는 법을 담고 있다.

 

 

 

 

 

 책 속의 내용을 조금만 보도록 하자.

 

'공중목욕탕의 탕 속에 누군가 갓난아기를 데리고 들어오면 분위기가 단번에 평화로워집니다. 서먹하게 마주하고 있던 사람들이 아기를 중심으로 가족처럼 재구성되는 느낌마저 듭니다. 총알이 핑핑 날아다니는 전쟁터 한가운데 아장거리는 아기가 등장하니 잠시 총성이 멈추는 영화의 한 장면, 과장이 아니다 싶습니다.

모든 아기에게는 막강한 치유적 힘이 있습니다. 그건 어쩌면 인간이라는 존재가 가진 치유적 힘의 원형적 형태일지도 모릅니다. 누구나 한때는 다 아기였으니까요. 그 자체로 치유적 존재였으니까요.

 어느 연쇄살인범이 사형이 집행되기 전날 엄마와 마지막 전화 통화를 하며 “아직도 내 안에는 엄마가 기억하는 나도 있어”라며 흐느꼈다지요. ‘엄마가 기억하는 나’란 치유적 기운을 내뿜는 인간의 심리적 원형일 겁니다.

 살다 보면 치유적 존재의 도움이 절실해 두리번거리게 되는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대개 그것은 파랑새 찾기처럼 내 안에 있는, ‘엄마가 기억하는 나’를 찾는 과정과 다르지 않습니다.

 내가 깊이 사랑하는 누군가가 기억하는 ‘나’를 떠올리는 바로 그 순간, 모든 인간은 치유적 존재가 됩니다. '

---「엄마가 기억하는 나」에서

 

 이 책의 '옥의 티'는 저자 서문인 것 같다. 정혜신은 이 책을 쓸 수 있개 해준 장본인 즉, 심리적 배후는 자신의 짝 이.명.수 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치유자이자 심리적 구루라고 극찬하여 지칭한다. 뿐만 아니라 그는 정혜신이 아는 모든 사람 중에 몸과 마음이 가장 섹시한 남자라고 극찬한다. 이 이야기는 부부간 둘만 있을 때 표현하는 것이지, 많은 사람들이 선입견으로서 '정혜신의 무엇'인가를 기억하고 있는데 책의 서문에 상당량을 할애하고 있는 건 적절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덕분에 나처럼 선입견을 없애려 노력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심리치유에 상당히 도움이 되는 책의 좋은 내용이 반감될까 우려가 되는 것은 나만의 생각인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