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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현대소설

모파상 장편소설 『여자의 일생(Une Vie)』

by 언덕에서 2011. 6. 24.

 

 

 

 

 

모파상 장편소설 『여자의 일생(Une Vie)』

 

 

 

 

 

 

프랑스 작가 모파상(Guy de Maupassant.1850∼1893)의 대표적인 장편소설로 원제목은 ‘어느 생애’라는 뜻이다. 이 작품은 정교한 단편작가로서 알려진 모파상의 첫 번째 장편이다. 신문지상에 연재하다가 1883년에 출판되자 이듬해 초에는 25판을 거듭할 만큼 호평을 얻어 작가는 그 명성을 일약 전 유럽에 떨쳤다.

 이 작품에는 인생에 대한 사무치는 애수와 아름다운 서정이 흐르고 있다. 모파상은 이 이야기를 한 여성에게만 국한시키지 않고 인생의 여러 가지 상황에 대한 우리들 각자의 깊은 절망과 혐오를 집약시켜 놓고 있다.

 소녀 시절에 품었던 낭만적인 삶이 현실에서 무참히 파괴되면서 잔느는 자신의 운명에 수동적으로 대처해 나가는 여인이 되어 버린다. 잔느는 결혼 상대자 선택에서부터 재산을 모두 탕진했을 때조차도 주체적으로 행동하지 못하고 운명에 몸을 맡겨 버린다.

 이 소설은 꿈과 희망에 넘친 처녀의 수도원에서의 출발로 시작되어, 결혼에 대한 환멸, 남편의 배반과 죽음, 자식에 대한 실망 등, 현실과의 접촉으로 가지가지의 환멸을 맛보는 한 여성의 생활이 노르망디의 고원과 바다를 배경으로 그려졌다. 그 테마와 묘사법으로 모파상의 대표적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프랑스 영화 <여자의 일생 A Woman's Life> , 2016 제작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노르망디의 귀족의 딸로 태어난 잔느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열두 살 때부터 열일곱 살 때까지 수도원에서 엄격한 교육을 받으며 교양을 쌓는다. 수도원을 나온 잔느는 오랫동안 동경해 오던 인생의 온갖 행복을 꿈꾸며 양친과 하녀 로잘리와 함께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베 피코 사제의 소개로 줄리앙이라는 젊은 자작을 알게 된다. 순진무구한 잔느는 자작에게 사랑을 느끼게 되고, 자작의 청혼으로 결혼한다. 그러나 첫날밤 줄리앙의 사나운 행동에 잔느의 아름다운 꿈들이 무참히 무너져 버린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오니 줄리앙은 잔느의 일에 더 이상 마음 쓰지 않았으며, 침실을 따로 쓰게 된다.

 어느 날, 잔느와 친형제나 다름없이 자란 하녀 로잘리를 남편이 건드려 사생아를 낳게 된다. 잔느는 사제의 주선으로 로잘리를 시집보내 버린다. 모든 것을 체념한 잔느는 임신하여 아들 폴을 낳는다. 폴은 잔느의 희망으로 열정적인 애정을 쏟아 붓는다.

 남편 줄리앙은 로잘리 이외에도 이웃에 사는 푸르빌 백작 부인과도 관계를 맺는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잔느는 괴로워한다. 잔느가 처한 잔혹한 상황은 어머니의 죽음 앞에서도 상처를 받는다. 어머니의 유품인 편지 속에서 어머니가 남편의 친구인 포르 테르테느마르와 불륜 관계였다는 사실을 알고는 가슴이 찢어질 듯한 고통을 느낀다.

 줄리앙과 푸르빌 백작 부인이 보코트 언덕의 양치기 이동식 막사에서 밀회를 즐기고 있던 현장을 목격한 푸르빌 백작이 이동식 막사를 절벽 아래로 밀어 남편이 죽고 만다. 바로 그날 밤 잔느는 죽은 계집아이를 낳는다. 이제 잔느에게는 폴이 전부였다. 폴의 성장을 지켜보는 것이 그녀의 유일한 낙이었고, 폴은 어리광을 부리며 자라났다.

 폴은 15세가 되던 해에 아브르에 있는 중학교 기숙사에 들어간다. 자주 면회 오는 어머니를 반갑게 여기지 않는 폴은 공부를 하지 않아 낙제를 하고 만다. 폴은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사귀던 여자와 파리로 떠나버린다.

 절망 속에서 허덕이고 있는 잔느는 폴이 진 엄청난 빚을 갚아나가야만 했다. 그러던 중 아버지가 죽고 곧 이어 이모도 숨을 거둔다. 모든 재산을 날려버린 잔느는 전에 내보냈던 하녀 로잘 리가 찾아와서는 함께 살자고 하여 둘은 서로 의지하며 오두막에서 생활을 한다.

 어느 날 파리에 있던 폴에게서 아내가 출산 후 위독하다는 편지가 날아온다. 잔느는 파리로 가서 손녀를 데리고 온다. 잔느는 손녀를 품 안에 꼭 껴안고는 미친 듯이 입을 맞춘다. 그런 잔느를 바라보던 로잘 리가 이렇게 중얼거린다.

 “따지고 보면, 인생이란 남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즐거운 것도, 불행한 것도 아니로군요.”

 

프랑스 영화 <여자의 일생 A Woman's Life> , 2016 제작

 

 

 이 작품은 자연주의 소설의 전형임에는 틀림없으나, 작품의 이면에는 인생에 대한 사무치는 애수와 아름다운 시정이 흐른다. 러시아의 대문호인 톨스토이는 모파상의 재능을 인정하면서도 창부를 주인공으로 한 그의 작품에서 볼 수 있는 너무나도 자연주의적인 경향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이 작품을 읽고는 종래의 생각을 고쳐 진심으로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고 한다.

 꿈과 희망에 가득 찬 수도원 생활로부터 시작하여, 결혼에 의한 환멸, 남편의 배반과 죽음, 자식에 대한 실망 등 현실과의 접촉에서 오는 여러 가지 환멸을 맛보는 한 여인의 일생이, 노르만디의 고원과 바다를 배경으로 하여 소명하게 그려져 있다. 그 테마와 사실주의적 묘사법으로 말미암아 모파상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톨스토이는 <여자의 일생>을 이렇게 논하고 있다.

 “여기에 한 선량하고 귀엽고 상냥스러운, 좋은 일이면 무슨 일이라도 하는 소질을 가진 한 사람이 있다. 그런데 웬일인지 희생물로 바쳐진다. 처음에는 난폭하고 교양 없고 어리석고 동물적인 남편의, 다음에는 이 남편과 같은 아들의 희생물로. 그래서 이 세상에는 무엇 하나 주지 못한 채 사라져 간다. 왜 그런가? 이 작자는 이와 같은 문제를 제기, 짐짓 아무런 해답도 주지 않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은 이 소설 전체, 여주인공에 대한 동정과 여주인공을 파멸시킨 그 모든 것이 이미 작자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 되고 있다.”  

 

 

 이 소설은 아무에게도 주목받지 못한 채 일생을 살아온 이모가 약혼중인 잔느의 행복을 시새움하다 설움을 견디지 못해 끝내 오열을 터뜨리는 이야기라든가, 지나치게 엄격한 계율로 인해 괴로워하는 젊은 신부가 연인들의 밀회를 방해하고 새끼 밴 개를 때려죽이는 이야기 등, 단편 소설적 구성을 지닌 삽화들이 중첩되며 이야기를 구성하고 있다. 인생의 진실한 단편이라 해야 할 이런 삽화들은 모두 남자들의 뻔뻔스러움, 늙어 가야 하는 인간의 비애, 교육과 종교의 모순 등 작가 자신의 페미니즘이 관통하고 있다. 그것이 유기적으로 구성됨으로써 잔느라는 한 여성의 이야기에 그치지 않고, 인생의 다양한 모습에 대한 작가의 깊은 절망과 혐오를 집약하여 보여주고 있다.

 또한 이 소설에서는 작가의 부정적인 종교관을 엿볼 수 있으며 잔의 아버지 남작의 입을 통해 오히려 자연신 예찬론자의 입장을 밝히고 있다. 잔의 입을 통해 오직 아름다운 것은 물과 빛과 공기라고 말한다. 인간조차도 동물보다 별로 나을 게 없으며 철학은 탁상공론격이고, 사회생활은 깨뜨릴 수 없는 전제적인, 또한 영원히 계속되는 추악한 현상이라는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게다가 각각의 존재들은 서로서로 고립되어 있어 상대방에 침투할 수 없으며, 각 존재들 간의 사랑이나 우정도 진정한 위로를 주지 못한다.

 여주인공 잔은 냉혹한 남편에게 버림받고 이어서 자식에게서도 배신당한다. 그녀와 나란히 늙어가는 하녀 로잘리는 이렇게 말한다.

 "인생이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즐거운 것도 불행한 것도 아니로군요."

 여주인공 잔의 암담한 회색으로 물든 길은 결국 근대 생활에 대한 가혹한 판결이다. 그러나 이것은 또한 증오하고 조소할 만한 진실 이외에 동정할 만한 진실이 있음을 보여준다.

 이 소설은 정확하게 시대를 설정한 풍속 소설로 읽을 수도 있다. 이야기 첫머리에 1819년이라는 시대가 명시되고, 잔과 쥘리앵이 신혼여행을 코르시카로 건너갈 때에는 기선이 다니기 시작하고 있었는데, 잔이 아들을 찾아 파로 나갈 때는 "6년 전부터 화제가 되어 있던 철도가 파리와 르 아브르 사이를 왕래하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모파상은 인간 마음의 날카로운 탐구자였다. 인간의 세계가 숨기고 있는 뜻밖의 진실, 특히 인간 감정을 초월하는 환멸적 작용의 탐구에 몰두하는 태도가 이 작품에 현저하게 나타나 있다. 하녀 로잘리가 하는 작품의 마지막 대사는 지당하다 하더라도, 잔은 이 말로 치료받을 수 없는 고독감에 사로잡혀 있고, 인생에 대해 옳고 그른 판단을 내리지 못할 만큼 타격을 받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