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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야기

할리우드 최대의 서사시 <벤허>

by 언덕에서 2011. 5. 4.

 

 

 

 

 

 할리우드 최대의 서사시 <벤허>

 

 

 

 



이 영화는 1959년 윌리엄 와일러 감독이 당시 1500만 달러의 제작비를 들여 만든 초호화 스펙터클 대작이다. 찰턴 헤스턴, 스티븐 보이드, 잭 호킨스, 휴 그리피스가 주연을 맡았다. 이 영화의 원작은 1880년 발행된 미국의 작가 L.월리스의 역사소설 <벤허>인데 부제(副題)는 ‘그리스도의 이야기’이다. 이 소설은 출판과 동시에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여러 차례 연극화ㆍ영화화되어 인기를 끌었다.

 

 

 


 고대 로마 시대에 한 유태 청년의 파란만장한 삶을 통해 신의 섭리를 그린 무성 영화 시대 할리우드의 최대의 서사시인 <벤허>는 월리엄 와일러에 의해 유성에 칼라 영화화된 작품으로 당시로서는 천문학적인 제작비를 투입, 10년의 제작 기간과 10만 명의 출연 인원, 1년여 촬영 기간 동안 지구를 한 바퀴 돌고도 남을 정도로 필름을 소모했다.

 대사를 한마디 이상하는 인물만도 496명, 하이라이트인 15분간의 전차 경주 신을 위해 1만 5천명이 4개월간 연습했다는 전설적인 기록을 남겼다.

 

 

 

 아카데미에서 11개 부분을 수상했으며, 바다에서의 격전과 전차 추적 신이 영화사에 빛나는 명장면 중 하나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벤허 집안은 많은 노예를 거느린 예루살렘의 부호이며 벤허는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시대의 유대인이다. 로마 지배하의 예루살렘에 신임 총독 클레이투스가 로마군의 호위를 받으며 도착한다. 사령관 메살라(스테판 보이드)는 어렸을 때 친구인 벤허(찰턴 헤스톤)와 기쁘게 만난다. 신임 총독 취임식 날, 화려한 행진을 구경하던 누이 티르자의 발밑에서 기와 한 장이 떨어져 나가 공교롭게도 신임 총독의 머리에 맞았다. 뜻하지 않은 사건으로 벤허 일가는 총독에게 위해를 가하려 했다는 반역죄로 몰려, 어머니 미리암(마사 스코트)과 누이는 로마군에게 끌려가고 벤허는 노예가 되어 갤리선의 노를 젓는 중노동을 하게 된다.

 메살라는 벤허 일가의 억울한 사정을 알고 있었으나 권력에 도취되어 옛 친구의 일가가 몰락하는 것을 보고만 있었다. 한편 벤허는 자신이 타고 있는 선단이 습격을 받아, 사령관인 아리우스(잭 호킨스)가 바다에 떨어져 위기에 처했을 때 구해 준 일이 인연이 되어 자유인이 되고 그의 양자로 입적된다. 이후 로마 군인으로서 훈련을 받고 로마 제일의 검투사가 되어 어머니와 누이를 만난다는 희망을 안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어머니와 누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재회의 기대는 사라지고 에스터를 만나 옛사랑을 확인한다. 이때 메살라는 벤허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 감옥에서 문둥병을 앓고 있는 모녀를 문둥병 마을 골짜기에 버리라고 지시한다.

 벤허는 그때 마침 예루살렘에서 열리는 전차 경주에 출전하여 메살라와 경쟁하게 된다. 메살라는 벤허의 전차를 전복시켜 그를 죽이려는 음모를 꾸민다. 그러나 대경주에서 전복된 것은 메살라의 전차였다. 그는 숨이 끊어지기 직전에 벤허의 가족이 문둥병 마을 골짜기에 있다고 알려준다. 그의 말을 듣고 달려간 벤허는 몰라보게 변한 어머니와 누이를 보고 슬픔에 잠긴다.

 한편 나사렛에서 예수의 설교를 듣고 감동을 받은 에스터는 기적을 일으킨다는 예수에게 어머니와 누이를 데리고 가자고 권한다. 벤허는 가족들을 데리고 예루살렘의 예수에게로 간다. 그날은 예수가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처형되는 날이었다. 목말라하는 예수에게 물을 주다 채찍으로 맞기도 한다. 예수는 십자가에 매달려 숨을 거둔다. 바로 그때 어머니와 누이에게 기적이 일어나 문둥병이 씻은 듯이 낫는다. 벤허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갖게 된다.

 

 

 

 


 영화 속의 전차경주 장면은 훌륭한 연출과 편집으로 강력한 박진감을 보여준다. 미국영화를 대표하는 그리스도교적 영화이다.

 이 영화는 1959년 아카데미 작품상을 비롯하여 감독상, 주연남우상, 조연남우상, 촬영상, 음악상, 미술상, 의상디자인상, 음향상, 편집상, 특수효과상 등 11개 부문을 석권한 미국영화상 경이적인 작품으로, 예술성·종교성·오락성을 고루 갖추고 있다고 평가된다. 연극으로도 만들어졌으며 1922년 골드윈에 의해 처음 무성영화로 제작되었다. 1959년에 다시 만든 이 작품의 촬영은 이탈리아의 치네치타 촬영소가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