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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朋滿座

인간관계론 사례집 『레이체스터 이야기』

by 언덕에서 2011. 1. 10.

 

인간관계론 사례집 『레이체스터 이야기』

 

 

 

 

 

나는 이 책을 처음 접할 때 영국의 정신의학자가 쓴 인간관계론 사례집이리라고 생각했다. 막상 책을 읽어가면서 저자가 우리나라의 평범한 대기업 직장인인 것을 알게 되었고 그의 다양하고 흥미있는 심리학 지식에 감탄했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저자가 정신과 의사나 전문적인 심리학 학자가 아니라는 관점에서 그렇다는 말이다.

 『레이체스터 이야기』는 서툰 인간관계와 편견으로 상처받은 사람들이 서로 자신의 고민을 이야기하며 스스로 상처를 치유할 힘을 얻는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공감형 테라피 우화’이다. 저자 신인철은 이 책에서 모든 사람은 다른 사람을 치유할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사람과의 관계에서 얻은 상처로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이들이 서로 카운슬링해주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이를 바탕으로 해서 저자는 사람들이 서로를 치유해 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 책은 처세술에 관한 책이라고 하기에는 소설(fiction)답고, 소설이나 우화로 보기에는 너무도 작위적이고 교훈을 강조하고 있어 인간관계론 사례집 정도가 적절해 보인다. 여린 성품 등으로 좌절하거나 현실세계에서 상처받은 사람들, 세상사에 눈뜨기 시작한 중고생이 읽었으면 좋겠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해결 방법을 제시하면, 그 사람은 또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입장에서 해결책을 제시하고, 결과적으로 모든 사람들이 서로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형식의 이야기는 저자의 주장을 분명히 보여주고,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레이체스터 병원이란 가상의 공간 속에서 만난 사람들은 주변 사람과 이야기하면서 진정 자신의 인생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스스로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인생을 대하는 태도를 깨닫고, 오해와 강박에서 벗어나고, 진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면서 결국 모든 문제가 마음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이해한다. 이들의 모습을 통해서 자신이 문제라고 생각했던 모든 것이 그 문제를 풀 수 있는 힌트였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고, 고민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을 발견할 수 있다.

 사람과 부대끼다 생긴 상처 때문에 괴로워하던 브라이언은 레이체스터 병원에서 온 이상한 편지를 받고 호기심이 생겨 그곳에 가기로 결심한다. 병원에 도착한 브라이언은 레이체스터 병원의 유일한 의사인 파인만 박사와 만나고 병원의 독특한 분위기에 반해 간호사로 일하며 돕기로 한다. 브라이언은 병원에 입원한 환자들이 육체적인 괴로움보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비롯된 정신적인 상처로 고통 받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나 파인만 박사는 환자와 상담하거나 직접적인 처방을 해주는 대신 서로 도움이 될 만한 환자들을 연결해주는 역할만 한다. 브라이언은 그런 치료법이 효과적일까 의심한다. 그러나 환자들은 각자 갖고 있는 자신의 경험을 상대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으면서 진심 어린 조언을 들려준다. 그리고 그들의 진심이 담긴 조언은 상대를 변화시킨다. 브라이언이 차츰 파인만 박사의 독특한 상처 치유법에 관심을 갖게 될 즈음 병원에 놀라운 비밀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마음의 병을 제거해야 몸이 치유된다

 성공만을 좇다 가족과 보내는 시간을 외면한 리치먼, 무조건 남의 탓만 하던 굿리치, 은퇴 후 우울증에 빠진 아론, 가식적인 인생을 살아온 막시밀리안, 성형 중독에 빠진 사라, 사랑에 실패한 스테파네뜨, 결혼 문제로 딸과 갈등하는 브라운 등등 레이체스터 병원의 환자들은 육체적인 질병보다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생긴 마음의 상처로 괴로워하고 있다. 그들은 모두 자신이 생각하는 삶의 방식을 고집하다 어느 순간 문제가 커졌다는 것을 알게 된다.

 레이체스터 병원의 파인만 박사는 그들과 비슷한 고민을 갖고 있는 환자들과 어울리도록 유도하고, 그들은 자신의 문제를 솔직히 이야기하면서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방법을 모색한다.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인지, 사람들과 어떻게 어울려야 할지, 인생의 목표는 무엇인지, 인생의 진짜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진정한 사랑의 의미는 무엇인지 그들은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받으며 천천히 자신의 진짜 문제와 해결 방법을 깨닫게 된다. 모든 문제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며, 마음속에 내재된 욕망과 오해, 강박으로부터 벗어나는 길만이 그들을 행복으로 이를 수 있게 한다는 사실에 공감한다.

 

 문제를 해결방법은 자신의 마음속에 있다

 문제는 인생의 목표나 방향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남들이 세운 기준에 따라 열심히 앞만 바라보며 살다가 생긴 경우가 많다. 사실 우리의 상처도 작은 문제들이 쌓이는 것을 간과하다가 도저히 손댈 수 없을 정도로 커진 뒤에야 발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오랫동안 견지해온 삶의 태도나 방법을 쉽게 바꾸기는 어렵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자신의 문제를 바라본다면 의외로 쉽게 풀리는 경우도 분명히 있다.

 저자는 타인의 입장에서 자신의 문제와 상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마음가짐이 해결의 지름길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그리고 내 입장만 고집하면서 살 것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충고나 조언에 귀 기울이라고 당부한다. 그렇게 상대와 허심탄회하게 마음을 열고 진심이 담긴 대화를 나누다 보면 내가 가진 문제의 원인이 무엇이고, 어떻게 해야 해결할 수 있을지 답이 나오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신의 문제를 알고 있으면서도 스스로 감추며 부끄러워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 문제를 밖으로 끄집어내어 당당히 대면한다면 끙끙 앓던 문제가 바로 대답의 힌트였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것은 이 책의 미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