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리진교소설(權利盡交疎說)
정민(1961 ~ )
<추사 작.[영영백운(英英白雲) (1844)] “산천이 멀어서 옛적에는 나를 찾아 주지 않더니, 이제는 어떠한가. 아침저녁으로 서로 대하기를 바란다” 는 발문이 오른 쪽에 적혀있다>
적공(翟公)은 도무지 입맛이 썼다. 한때 위세가 쩌렁쩌렁한 정위(廷尉) 벼슬에 있을 때는 손님으로 대문이 미어졌었다. 그러다 막상 그가 실직하자, 그 많던 손님 중에 위로의 말 한마디 건네는 자가 없었다. 발길은 뚝 끊어져 대문엔 참새 그물을 쳤다. 몇 년 뒤 그가 다시 정위 벼슬에 복귀하자, 비굴한 웃음을 띠고 그간의 무심을 사과하려는 자들로 적막하던 문간이 다시 들먹거리기 시작했다. 적공은 며칠 째 입맛이 썼다.
그는 먹을 갈았다. 이튿날, 아침부터 문밖을 서성대던 자들은 대문에 붙은 방문(榜文)을 보았다. 일렀으되, "일사일생(一死一生)에 교정(交情)을 알겠고, 일빈일부(一貧一富)에 교태(交態)를 알겠고, 일귀일천(一貴一賤) 하매 교정(交情)이 드러난다."고 하였다. 아! 박절하다. 그 말이여!
지위를 되찾았기에 적공은 방문이라도 붙여 보았다지만, 그렇지 않고 만약 그가 참새 그물 얽힌 대문에 이 방문을 붙였다면 사람의 비웃음만 더 받았을 것이 아닌가? 세상에는 절치부심의 칼을 갈면서도 그 칼 한 번 옳게 휘둘러 보지 못하고 스러진 자들이 더 많다.
일전 신문을 보다 보니, "정작 그렇게 충동질하고 이용한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가버리고 그만 덩그렇게 홀로 남아 여론과 국민의 질타를 받고 있느냐. 단물을 빨아먹고 지금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버린 사람들은 누구인지 한 번쯤 짚어보고 우리들의 세태에 대해 반성하는 기회를 가져야 한다"고 한 어느 정치인의 말이 실려 있다. 나는 그 말을 읽다가 씁쓸히 웃었다. 그리고는 요즘 세상 돌아가는 생각을 하다가 뜬금없이 그날 방문을 써 붙이던 한나라 적공의 심정이 떠올랐던 것이다.
파리 같은 모리배들의 행태는 예나 지금이나 조금도 달라짐이 없다. 지금 아무도 찾지 않는 집안에 쳐박혀서 혹은 감옥 한 구석에서, 잘 나가던 그 시절 입 속의 혀처럼 교언영색의 아첨을 일삼던 자들에게 분노의 저주를 되뇌이는 이들이 적지 않을 터이다. 권력이란 그렇게 무상한 것인지를 미처 몰랐다고 안타까운 탄식을 토로하는 자가 적지 않을 것이다.
단물을 보고 몰려드는 쉬파리야 본능이 그러한 것을 어찌 탓할 수 있으랴. 다만 내가 음식 간수를 제대로 하지 못해 쉬파리가 그렇게 꼬여 들도록 내버려 둔 것이 애석할 뿐이다. 누가 누구를 원망하는가? 그들의 저주와 그들의 탄식이 자기 자신에게가 아니라, 그저 단물이 빠져 떠난 파리떼를 향해 퍼부어진대서야 바라보는 이의 민망함만 더할 뿐이다. 두고 보자고, 가만 두지 않겠다고 별러 보지만 훗날 설사 그깟 파리 몇 마리 쳐죽인다 한들 마음에 무슨 상쾌함이 있으랴.
"한손으로 도둑을 꾸짖으면서 한손으로는 도둑의 장물을 훔친다. 그래서 한 도둑이 죽고 나면 또 한 도둑이 생겨난다. 한편으로는 간음한 자를 야단치면서 한편으로는 간부(姦婦)와의 기회를 엿본다. 그래서 한 간부를 처벌하고 나면 또 다른 간부가 간음의 죄를 범한다."
명나라 사람 서학모(徐學謨)가 한 말이다. 도둑이 도둑더러 도둑놈이라고 꾸짖는 세상이다. 간부가 간부를 간음한 놈이라고 처벌하는 세상이다. 그러니 잡힌 도둑이 제 잘못을 뉘우치지 않고 다만 재수 없다고 생각하고, 간음한 죄인이 단지 운이 나빴다고 투덜거린다. 누가 누구를 꾸짖고, 누가 누구를 탓하는가?
이쯤에서 나는 만년의 추사(秋史)를 떠올린다. 제주도 유배시절, 제자 이상적(李尙迪)이 절해고도(絶海孤島)에 유폐되어 낙담의 나날을 보내고 있던 늙은 스승을 위해 멀리 청나라에서 구해 온 신간 서적을 보내 왔다. 쓸쓸하고 적막하던 추사는 자못 감격하였다. 오랜만에 붓을 들어 그를 위해 〈세한도(歲寒圖)〉를 그려 주고, 느낌에 겨워 그 발문에 이렇게 썼다.
"세상의 도도히 흘러감은 오로지 권리(權利) 이것만을 붙좇아 이를 위해 마음을 태우고 애를 쏟는다. 이같은데도 그대는 권세와 이욕으로 돌아가지 아니하고, 바다 밖 초췌하고 파리한 사람에게 돌아오기를 마치 세상 사람들이 권세와 이욕을 향하듯 하는구나. 사마천은 말하기를, `권리로 합쳐진 자는 권리가 다하면 사귐이 성글어진다(以權利合者, 權利盡而交疎)`고 하였거늘, 그대 또한 세상의 도도한 가운데 한 사람으로 초연히 도도한 권리의 밖으로 스스로 벗어남이 있으니 권리를 가지고 나를 보지 않은 것인가? 사마천의 말이 잘못된 것인가?"
아! 세상에는 이런 만남을 다시는 볼 수가 없게 되었다. 나는 이것을 슬퍼한다.
정민. 대학교수. 문학가. 1961년생. 1983년 한양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한 뒤 1985년과 1990년 한양대 대학원(문학 석ㆍ박사)을 거쳐 1995년부터 한양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저서에 <한시미학산책>,<청소년을 위한 정민 손생님이 들려주는 한시 이야기>,<비슷한 것은 가짜다>, <한서이불>, <논어병풍> 등 다수.
전한 7대 황제인 무제(武帝) 때 급암(汲黯)과 정당시(鄭當詩)라는 두 현신(賢臣)이 있었다. 그들은 한때 각기 구경(九卿: 9개 부처의 각 으뜸 벼슬)의 지위에까지 오른 적도 있었지만 둘 다 개성이 강한 탓에 좌천ㆍ면직ㆍ재등용을 되풀이하다가 급암은 회양 태수(淮陽太守)를 끝으로 벼슬을 마쳤다. 이들이 각기 현직에 있을 때에는 방문객이 늘 문전성시를 이루었으나 면직되자 방문객의 발길이 뚝 끊어졌다고 한다.
이어 사마천(司馬遷)은 <사기(史記)> ‘급정열전(汲鄭列傳)’에서 이렇게 덧붙여 쓰고 있다.
“급암과 정당시 정도의 현인이라도 세력이 있으면 빈객(賓客)이 열 배로 늘어나지만 세력이 없으면 당장 모두 떨어져 나간다. 그러나 보통 사람의 경우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또 위의 수필에 등장하는 적공(翟公)의 경우는 이렇다. 적공이 정위(廷尉)가 되자 빈객이 문전성시를 이룰 정도로 붐볐다. 그러나 그가 면직되자 빈객은 금새 발길을 끊었다. 집 안팎이 어찌나 한산한지 ‘문 앞(밖)에 새그물을 쳐 놓을 수 있을 정도(門外可設雀羅)’였다. 얼마 후 적공은 다시 정위가 되었다. 빈객들이 몰려들자 적공은 대문에 이렇게 써 붙였다.
한 번 죽고 한 번 삶에 곧 사귐의 정을 알고 (一死一生 卽知交情)
한 번 가난하고 한 번 부함에 곧 사귐의 태도를 알며(一貧一富 卽知交態)
한 번 귀하고 한 번 천함에 곧 사귐의 정은 나타나네(一貴一賤 卽見交情)
한시를 전공한 대학교수 정민은 고등학교 때 처음으로 한시의 매력에 빠져, 한시가 우리 시대와 호흡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늘 고민하고 한시의 깊이와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는 일을 하고 있는 문학가이다.
그는 먼지 쌓인 헌 책 속에서 ‘오래된 미래’를 찾는 작업에 몰두해왔다. 고전도 코드만 바꾸면 힘 있는 말씀으로 바뀌는 힘이 있다. 그는 한시 미학을 쉽게 풀어 소개한 <한시미학산책>과 <청소년을 위한 정민 손생님이 들려주는 한시 이야기>를 펴냈다. 이후 조선 후기 산문에 관심을 두어 박지원의 문장을 꼼꼼히 읽은 <비슷한 것은 가짜다>와 이덕무의 청언 소품을 감상한 <한서이불>과 <논어병풍>등을 간행했다.
그의 이름을 널리 알린 책은 <미쳐야 미친다>는 책이다. 그는 이 책에서 그 시대의 메이저리거들이 아니라 주변 또는 경계를 아슬하게 비껴 갔던 안티 혹은 마이너들에게 주목하였다. 그가 본 것은 남이 손가락질을 하든 말든, 출세에 보탬이 되든 말든 혼자 뚜벅뚜벅 걸어가는 정신, 이리 재고 저리 재지 않고 절망 속에서도 성실과 노력으로 일관한 삶의 태도, 신분과 나이와 성별을 잊고 이름 밖에서 그 사람과 만나고자 했던 진실한 사귐, 사물의 본질을 투시하고 평범한 곳에서 비범한 일깨움을 이끌어내는 통찰력이다. 그러나 세상의 인정을 받기보다는 죄인으로, 역적으로, 서얼로, 혹은 천대받고 멸시받는 기생과 화가로 한세상을 고달프게 건너간 이들의 삶을 통해 본받을 만한 사표(師表)도, 뚜렷한 지향도 없어 모호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방향을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
세상을 살아보니 고래로 흐르는 방향은 변치않고 있음을 알게 된다. 벌써 십 수 년전의 일이다. 적공의 경우 만큼은 아니더라도 내가 다들 알만한 기업의 간부로 근무한다는 소문이 퍼지자 어떻게들 알았는지 학창시절 이름만 겨우 기억하거나 철천지 원수처럼 지내던 동창들이 수없이 찾아왔다. 행여 회사에 누를 끼칠까봐 밤 늦게 골목길을 둘러서 집에 도착해도 그들은 대문 앞에 기다리며 청탁을 준비하고 있었다. 하는 수 없이 동네입구의 포장마차에 앉으면 그들의 입에서는 없었던 추억과 앞으로 변치않을 우정이 노래처럼 흘러나왔다. 그러한 교언영색을 믿지는 않았지만 세월이 흘러 독립을 하기 위해 회사를 그만 두었을 때 밀물처럼 쇄도하던 그들의 방문과 전화는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위의 정민의 수필을 읽노라면 옛사람들의 경구가 왜 하나도 틀린 게 없는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적공이 말했다는 "한번 죽고 삶에 사귐의 정을 알고 한번 가난하고 부유함에 사귐의 태도를 알며 한번 귀하고 천하게 됨에 사귐의 정을 볼 수 있다"는 구절이 온고지신(溫故知新) 으로 다가온다. 읽을수록 좋은 수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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