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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100편 감상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 이어령

by 언덕에서 2010. 9. 23.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이어령(1934 ~ )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나는 하나의 공간이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

조그만 이파리 위에 우주의 숨결이 스쳐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나는 왜 내가 혼자인가를 알았다

푸른 나무와 무성한 저 숲이 실은 하나의 이파리라는 것을....

제각기 돋았다 홀로 져야하는 하나의 나뭇잎,

한잎 한잎이 동떨어져 살고 있는 고독의 자리임을 나는 알았다.

그리고 그 잎과 잎 사이를 영원한 세월과 무한한 공간이 가로막고 있음을.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나는 왜 살고 있는가를 알고 싶었다.

왜 이처럼 살고 싶은가를,

왜 사랑해야 하며 왜 싸워야 하는가를 나는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것은 생존의 의미를 향해 흔드는 푸른 행커치프....

태양과 구름과 소나기와 바람의 증인....

잎이 흔들릴 때,

이 세상은 좀더 살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의 욕망에 눈을 떴다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를 들었다.

다시 대지를 향해서 나뭇잎은 떨어져야 한다.

어둡고 거칠고 색채가 죽어버린 흙 속으로 떨어지는 나뭇잎을 본다.

피가 뜨거워도 죽는 이유를 나뭇잎들은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

생명의 아픔과 생명의 흔들림이, 망각의 땅을 향해 묻히는 그 이유를....

그것들은 말한다. 거부하지 말라,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대지는 더 무거워진다.

눈에 보이지 않는 끈끈한 인력이 나뭇잎을 유혹한다.

언어가 아니라 나뭇잎은 이 땅의 리듬에서 눈을 뜨고 눈을 감는다.

별들의 운행과 파동은 같은 질서에서 움직이고 있음을 우리는 안다.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우리들의 마음도 흔들린다.

온 우주의 공간이 흔들린다.

 

 


 

이어령 : 문학평론가, 교육자, 소설가, 수필가, 희곡작가, 사회기관단체인, 정치인, 정치 경력으로는 1990년 1월 3일부터 1991년 12월 19일까지 문화부 장관을 지냈다.  저서로  이상론 李箱論》 《우상의 파괴》 《비유법론고 譬喩法論攷》 《해학의 미적 범주》 《사회참가의 문학》 《현대소설 60년》《저항의 문학》 《전후문학의 새물결》 《한국작가전기연구》《마호가니의 계절》 《장군의 수염》 《의상과 나신》《흙속에 저 바람속에》 《신한국인》 《축소지향의 일본인》 《디지로그》선언편 《지성의 오솔길》 《지성에서 영성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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