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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朋滿座

어느 아프리카 소년병의 귀향 이야기 『집으로 가는 길』

by 언덕에서 2010. 5. 17.

 

 

아프리카 소년병의 귀향 이야기 『집으로 가는 길』

 

 

 

저자인 이스마엘 베아(Ishmael Beah)는 국제 인권감시기구인 휴먼 라이츠 워치(Human Rights Watch)의 어린이 인권 분과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미국 외교관계위원회와 해병대 전쟁연구소를 비롯해 여러 NGO에서 전쟁 때문에 고통받는 어린이 인권의 실상을 증언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보이고 있는 이다.

 『집으로 가는 길』은 장기자랑(talent show)에 참가하려고 친구들과 함께 길을 떠난 아프리카 시에라리온의 열두 살 소년 이스마엘의 평범했던 삶이 전쟁 속에서 어떻게 파괴되어가는지, 그 참혹한 변화를 담은 회고의 수기이다. 발간 후 뉴욕타임스 논픽션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하는 등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살육의 현장이 두려워서 필사적으로 도망치던 평범한 어린이가 마을을 습격해 학살을 자행하는 무자비한 소년병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솔직하고 생생하게 고백하고 있다.

 총을 들고 전쟁터에 나간 군인이기 이전에 아직 세상을 알지 못하는 어린이인 '소년병'들, 그들은 현대사회가 만들어낸 최대의 아이러니다.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참상들을 차분하게 묘사하고 있는 이스마엘 베아의 회고록은 지금도 이 지구촌 어느 곳에서 군대와 민병대에 강제로 징집되고 있는 어린이들에 대한 중요한 증언을 담고 있다. 이스마엘과 친구들이 겪은 일은 소박한 민중들이 선량함과 용기만이 아니라 극도의 잔인함을 보여줄 수도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가감없이 보여준다.

 저자는 우리가 모르고 있던 전쟁의 충격적인 참상과 그 속에서 피어나는 인간애에 대한 묘사, 소년에서 어른이 되기까지 겪는 여러 변화를 세밀하게 이야기한다. 이스마엘의 입을 통해『집으로 가는 길』은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아프리카의 가난한 소년과 친구들의 그야말로 기나긴 귀가여행을 담아내고 있다.

 

<이스마엘 베아(Ishmael Beah)>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나는 1980년 시에라리온에서 태어나 가난하지만 랩 음악과 힙합 댄스를 좋아하던 평범한 소년으로 자라났다. 12살 때인 어느 날 친구들과 함께 이웃 마을에서 열리는 장기자랑에 나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가 시에라리온의 전쟁에 휘말리게 된다. 전쟁을 피해 보려고 죽도록 도망치던 소년들은 정부군의 소년병으로 징집되면서 전쟁의 한가운데로 내몰린다.

  총 메고 달리기, 기어가기, 웅크리고 숨기, 1분 만에 밥 먹기, 총 쏘기, 총검으로 바나나 찌르기…. “제일 먼저 배를 쑤시고 다음에는 목, 다음에는 심장을 찌른다. 그리고 심장을 도려내서 그놈에게 보여주고 눈을 파내버리는 거다. 잊지 마라, 너희 부모를 죽인 바로 그놈일지도 모른다.” 훈련을 받는 며칠 동안 정부군은 그들 귀에 못이 박이도록 소리친다. 처음 자동소총을 손에 쥘 때 손을 부들부들 떨던 이스마엘은 첫 전투에서 같은 천막에 있던 어린 소년과 친구가 죽자 분노에 차 방아쇠를 당긴다. 2년 동안 소년은 마을 공터에서 축구를 하는 대신 마리화나를 피우고 화약과 코카인을 섞은 ‘브라운-브라운’을 흡입하면서 초소를 지키는 소년병 생활에 익숙해진다. 마약으로 심신을 마비시켜 “사람을 죽이는 일이 물 한 잔 마시는 것처럼 쉬웠다.”라고.

  “우리 분대가 내 가족이었고, 내 총이 나를 먹여 살리고 지켜주었다. 내가 따라야 할 규칙은 죽이지 않으면 죽는다는 것뿐이었다. … 우리는 2년간 전투를 했고, 매일같이 반복되는 일과는 살인이었다. 나는 누구에게도 동정심을 느끼지 않았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어린 시절은 끝나버렸고, 내 심장은 차갑게 얼어붙었다, … 그래도 나는 내 삶이 정상이라고 생각했다.”

  유니세프(UNICEF)의 도움으로 전쟁터를 빠져나온 이스마엘은 열일곱살이 되던 1998년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에 있는 유엔(UN) 국제학교에서 고교 과정을 마쳤고, 2004년 오벌린 대학 정치학과를 졸업한 후 유니세프에서 주관하는 소년병 근절을 위한 국제회의에도 여러 차례 연사로 참석하는 등 활발하게 어린이 인권과 관련된 활동을 보이고 있다.

 

 

 이 책은 2007년 2월 미국에서 출간되자마자 아마존, 뉴욕타임스, 퍼블리셔스 위클리 등 주요 베스트셀러 리스트 상위에 빠른 속도로 랭크되며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원제는 『 A Long Way Gone』이다.

 모든 전쟁이 그렇듯 이스마엘과 친구들의 삶에 갑작스럽게 끼어든 전쟁은 이제 그들의 삶을 송두리째 극한의 변화 속으로 몰고 간다. 서아프리카의 작은 나라 시에라리온에서 내전은 1991년부터 11년 동안 이어졌다. 내전 기간 정부군과 반군 병력의 절반이 8~14살 소년병이었다고 한다

 

 

 

 소년들에게 각인된 전쟁의 첫 번째 이미지는 어리둥절함이었다. 이스마엘과 친구들은 사방에서 빗발치듯 날아드는 총알을 피해 죽기살기로 달리고 또 달려야 했다. 이제 소년들 앞에 놓인 것은 춥고 배고프고 외롭고 슬픈 날들뿐이었다.

 소년들에게 정부군이나 반군, 전쟁을 일으킨 어른들의 명분 등은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았다. 이념과 명분을 걷어내고 어린이의 눈으로 마주한 전쟁의 실상은 한마디로 광기와 파괴 그 자체이며 그런 전쟁을 만들어낸 어른들의 세상은 ‘미친 세상’일 뿐이었다.

 명분도 영문도 알 수 없는 어른들의 전쟁 속에 부모와 형제를 모두 잃은 이스마엘은 어느새 자기도 모르게 총을 들고 전쟁터를 누비는 소년병이 되어 있었다. 그날로 이스마엘과 그의 친구들은 세상과 인간을 향한 따뜻한 애정과 공감을 배워야 할 어린 시절을 피비린내 진동하는 광기의 현장에 모조리 빼앗겨버리고 만다.

 그 광기의 세상에서 벗어나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정말 멀고 험했다. 유니세프를 비롯한 국제 구호 단체의 도움으로 몸은 비록 전쟁터를 빠져나올 수 있었지만, 전쟁의 기억과 전쟁의 냄새를 떨쳐버리기란 너무나 고통스러운 과정이었다.

 이미 세계적으로 수많은 기자들이 소년병 문제를 고발해왔고, 이 어린이들의 삶을 문학의 이름으로 전하기 위해 애쓰는 소설가들도 여럿 있다. 하지만 이 지옥 같은 현장을 온몸으로 견디면서 살아남은 누군가가 1인칭으로 직접 기록한 증언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시에라리론 위치

 

 

 이스마엘과 친구들이 반군의 습격을 피해 달아나던 길에 만난 어느 노인이 들려주었던 말은 그런 점에서 이스마엘이 왜 이 책을 쓸 수밖에 없었는지를 설명해준다. 살아서 전쟁의 끝을 보고 겪은 이스마엘은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전쟁의 숨은 얼굴에 대해 들려줄 무언의 사명을 품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어떤 사냥꾼이 있었는데 원숭이를 잡으러 숲으로 갔단다. 사냥꾼은 이윽고 나뭇가지에 앉은 원숭이를 발견했지. 그런데 이놈의 원숭이는 사냥꾼이 다가오면서 마른 낙엽을 밟아 발자국 소리가 들리는데도 도망갈 생각도 안 하고 있지 않겠니. 그래서 사냥꾼은 원숭이가 잘 보이는 나무 뒤까지 바짝 다가가 총을 딱 들고 겨누었지. 사냥꾼이 막 방아쇠를 당기려는데,아 글쎄 원숭이가 이런 소리를 하지 않겠나... '네가 나를 쏘면 네 어머니가 죽게 될 거야, 쏘지 않으면 아버지가 죽을 것이고' 그러고는 다시 원래대로 척 앉아가지고 나뭇잎을 씹어 먹으면서 가끔가다 한 번씩 머리나 뱃가죽을 슬슬 긁고 잇는게야. 자, 너희들이 사냥꾼이라면 어쩔테냐?  (중략) 일곱살 때 나는 이 문제에 대해 나름대로 답을 찾았다. 하지만 엄마 마음을 상하게 할까 봐 아무에게도 얘기하지는 않았다. 내가 만약 사냥꾼이라면, 나는 그 원숭이를 쏘겠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래야 다른 사냥꾼들이 다시는 똑같은 곤경에 처하는 일이 없을 테니까.' 

 이스마엘이 집으로 돌아가는 기나긴 여정에 대한 기록을 마무리하며 소개하는 원숭이와 사냥꾼 이야기는 어린이를 보호하고 지켜주어야 할 어른들이 작디작은 손에 자동소총을 쥐여주고 살인을 하라고 명령하는 오늘의 슬픈 현실에 대한 비극적 알레고리로, 평화를 꿈꾸는 우리들이 내릴 수 있는 작은 선택에 대한 진지한 물음을 던져준다.

 

 


☞주) 시에라리온 내전 :

시에라리온은 1787년 영국에서 해방된 노예들이 만든 국가로 1961년 영국의 식민지에서 독립한 뒤 군사 쿠데타와 반(反) 쿠데타가 반복됐다. 시에라리온은 세계 최빈국의 하나로 꼽히지만 다이아몬드와 보크사이트, 철광석 등 천연자원매장량이 많아 잠재력은 풍부한 나라이다. 그러나 광물 수출에 따른 부(富)가 몇몇 정부 관료들에 의해 독점되는 등 부패가 극심해 이러한 잠재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빈부격차가 심화하면서 국민의 불만이 누적됐었다. 독립 이후 40년이 채 안 되는 세월 동안 5차례의 군사 쿠데타를 겪으면서도 이러한 부정부패의 고리가 끊기지 않자 1991년 군 장교 출신인 포다이 산코가 이웃 라이베리아의 지원 아래 부정부패 일소를 주장하며 혁명연합전선(RUF)을 결성하고 정권 축출을 시도하면서 내전이 시작됐다. 그 후 1996년 평화협정을 체결, 처음으로 직접선거에 의한 민간정부가 탄생했으나 1997년 RUF 반군과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켜 카바 대통령 정부를 전복시켰다. 그러나 이어 이웃 나이지리아 주도의 서아프리카 평화군(ECOMOG)이 무력개입, 카바 정권을 복귀시킨 뒤 내전이 재개됐다. 수많은 사상자를 낸 후 1999년 7월 RUF반군의 잔혹 행위에 대한 사면과 반군 지도자들의 입각을 조건으로 평화협상이 체결됐으나 무장해제를 둘러싸고 충돌이 계속돼 평화협정은 사실상 문서상으로 그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