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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철학서

찰스 길리스피 『객관성의 칼날』

by 언덕에서 2010. 2. 8.

 

 

 

찰스 길리스피 객관성의 칼날

 

 

 

 

 

미국 과학역사학자 ☞칼리 길리스피(Charles Coulston Gillispie, 1918~2015)의 과학사상 및 역사에 관한 에세이로 2005년 출간되었다. 우리는 흔히 자신의 견해가 타당한 것으로 포장할 때 '객관적으로 볼 때...'라는 식의 표현을 하면서 이야기의 서두를 꺼낸다. '객관성'이란 무엇일까? 기호와 수식으로 차있는 텍스트와 실험실에서 몸으로 때우는 작업에 익숙해 있는 과학도나 공학도가 문자 중심의 인문학에 접근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들이 그나마 인문학 쪽으로 왕래할 수 있도록 교량 역할을 하는 것은 역사라는 인문학적 틀을 빌려 과학기술을 바라보려는 과학기술사다. '과학사상의 역사에 관한 에세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서양과학의 전개 과정을 각 시대사조 속에서 독창적인 인간들이 벌이는 활동으로 조명한다.

 갈릴레이에서 아인슈타인에 이르기까지 서양 과학의 흐름을 다루고 있는 이 책은 ‘과학적 사상의 역사에 관한 에세이’라는 부제를 지니고 있다. ‘칼날’이라고 번역된 ‘에지(edge)’라는 단어는 칼날의 의미 외에 ‘경계’ ‘가장자리’라는 뜻도 지닌다. 저자는 아마도 이 모든 의미를 함께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갈릴레이에서 근대과학이 태동한 이래 서양 과학의 발전 과정 전체를 ‘객관성’이라는 도구를 통해 자연세계가 설명, 이해되고 그 경계가 규정되어 가는 과정으로 본 것이다.

 갈릴레이의 천문학과 역학에 대한 논의로 시작한 책은 하비의 피 순환이론, 베이컨과 실험과학, 데카르트와 기계적 철학, 뉴턴에 의한 종합, 계몽사조와 과학, 라부아지에의 연소이론과 근대화학, 자연사, 진화이론, 열역학, 전자기학, 상대성이론을 다루면서 이어진다. 물론 그 과정에서 수많은 과학자, 사상가가 등장하고 수많은 과학 텍스트가 분석된다.

 

 

 이 한 권의 책을 통해 서양 과학의 역사상 수많은 과학자와 그들 저서의 내용 및 핵심 구절을 직접 대할 수 있다. 이 책은 학부 과정 학생을 대상으로 한 강의 내용을 정리한 책으로서는 놀랍게도 아주 높은 수준에서 깊이 있는 해석을 제공하고 있다. 갈릴레이의 낙하법칙이 얻어지는 과정을 갈릴레이가 남긴 텍스트를 분석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첫 부분에서부터, 저자는 직접 텍스트의 분석을 바탕으로 갈릴레이의 사고과정을 재구성한다. 그리고 그 같은 과정이 천재적 영리함과 성공만이 아니라 오해와 좌절, 실패가 포함되는 긴 우회의 과정임을 보여준다.

 결국은 운동에 대한 이해가 갈릴레이 같은 사람이 빼어든 ‘객관성의 칼날’을 통해 근대과학의 영역으로 들어오게 되었지만 그것이 객관성이 승리하는 단순하고 논리적인 ‘당연한 과정’이 아니라 갈릴레이 개인의 상황이나 당시 과학자와 그들이 살던 사회의 여러 여건이 결합되어 진행된 복잡한 과정이었다.

 그 이후의 장에서도 근대과학의 발전 과정에서 중요했던 변화가 진행된 실제 과정이 어떠했는가에 대한 길리스피의 논의가 이어진다. 당연히 직접 그 발전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과학자가 남긴 텍스트가 분석되는데 그들이 단순히 책이나 사람의 이름으로 거론되는 것이 아니라 서양 근대과학의 핵심적 이론이나 변화가 이루어지는 순간에 그 주역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보여준다. 또한 당시의 사회적, 사상적 배경이 설명된다. 서양 근대과학의 역사상 중요한 변화가 어떻게 진행되었던 것일까에 대한, 그리고 그 과정에 참여했던 과학자가 어떤 개인적, 사회적 상황 속에서 어떤 생각을 했던 것일까에 대한 저자의 깊이 있는 사색이 개진된다. 독자는 저자와 함께 그 같은 사색을 해보는 경험을 하게 된다. 딱딱한 과학 텍스트에 담긴 과학자의 생각의 흐름과 그것이 당시의 역사적 상황 속에서 지니는 의미를 저자 특유의 섬세하고 유려한 필치로 조망하는 이 책을 통해 독자는 근대과학 역사상의 중요한 변화가 그 어느 하나도 단순한 요인에 의해 한 가지 방향으로만 진행되지 않았다는 이해를 얻을 수 있게 될 것이다.

 

 

 

 과학역사에 대해서 관심이 있으신 이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자연의 법칙들을 발견해 나가는 과학자들의 모습을 볼 수 있고, 과학자들이 어떠한 철학과 성격의 부분으로 과학을 탐구하는지에 대해서도 알 수 있다. 과학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을 요구하고 글의 내용을 이해하는 데는 인문학적 생각들이 필요하기 때문에 교양서적으로 좋은 책이다. 공부하는 학생들에게도 이 책을 읽으면 어떠한 태도를 배워야 하는지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각각의 장에서 모두 다른 배경과 분야, 인물들이 등장하고 있어서 머리속으로 과학사를 정리하는데 도움이 된다. 특히 주목할만한 점은 이론을 배우면서 공부할 때 과학자들은 모두 천재성을 갖고 있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책을 읽으면 그들이 얼마나 자신의 인생에 순수하게 헌신했는지를 알 수 있다.

 

 

 


☞ Charles Coulston Gillispie(1918–2015)는 미국의 과학사 교수로 Princeton University의 명예교수이자 Dayton-Stockton 과학사 교수였다. Raymond Livingston Gillispie와 Virginia Coulston의 아들인 Gillispie는 펜실베니아 베들레헴에서 자랐다. 그는 Wesleyan University에 다녔고 1940년에 화학 전공으로 졸업했으며 1949년에 Harvard University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또한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미군에서 복무했다. Gillispie는 Princeton University의 역사학과에 합류하여 1960년대에 Princeton 과학사 프로그램을 설립했다. 그는 1963년에 American Academy of Arts and Sciences의 회원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1965~66년 과학사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1972년에 그는 American Philosophical Society에 선출되었다. Dictionary of Scientific Biography의 편집 위원을 맡아 1981년 [Dartmouth 메달]을 받았다. Gillispie는 1981년 [Pfizer Award]도 받았다. 그는 1984년 History of Science Society에서 [George Sarton 메달]과 [Balzan Prize]를 받았다. 2015년 10월 6일 9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