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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수필) 할머니의 선물

by 언덕에서 2009. 11. 11.

 

 

 

주) 이 글은 2007년 8월호 월간 샘터지에 게재된 수필입니다.

글쓴이는 당시 고등학교 2학년이었지만 지금은 대학생으로 아버지의 모교에 재학 중입니다.

그리고 ... 두어달 있으면 대한민국의 아들로서 군입대할 예정이지요. ㅠㅠ

누구에게나 자식은 다 그러하겠지만 '저의 자랑'이기도 합니다.  - 블로그 주인

 

 

 

 

 

 

할머니의 선물

 

 

 

 

 

 작년 1월 13일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너무 슬퍼서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아버지가 눈물 흘리시는 것도 처음 보았다. 할머니의 영정을 보았다. 몇 달 전 할머니가 사진이 잘 나왔느냐고 물으셨는데 나는 왜 이런 걸 찍었느냐며 화를 냈었다. 그때 보았던 사진을 영정으로 보게 되니 ‘할머니가 정말 돌아가셨구나’ 실감이 났다.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영정 앞에서 절을 했고, 어떤 이는 할머니의 영정을 보고 오열을 했다. ‘저 사람들도 나처럼 할머니께 많은 사랑을 받은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는 30여 년 이상 당뇨병을 앓으신 관계로 1급 시각장애인 판정을 받으셨고 앞을 잘 보지 못하셨다. 할머니와의 추억을 떠올리면 항상 그 배경은 병원이다. 병원을 감도는 무어라 표현하기 어려운 공기와 환자들의 모습 그리고 할머니의 손을 잡고 대기실에서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할머니의 차례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렸던 일들이 떠오른다. 앞을 보지 못하는 할머니의 길잡이가 되어드리는 것은 어린 나에게는 조금 고된 일이었다. 할머니는 초등학생인 손자를 번거롭게 한다고 얼마나 미안해하셨는지 모른다.

 

  내가 세 살 때 일이다. 나무의자에 앉아 있었는데 의자다리가 부러져 창문에 머리를 부딪히고 말았다. 유리창이 와장창 깨지고 나는 피투성이가 되었다. 놀란 할머니는 잘보이지 않는 눈으로 박힌 유리 조각을 빼내려다 내 머리에 되려 10cm 이상의 큰 상처를 내시고 말았다. 의식을 잃은 나는 병원에서 큰 수술을 받았고, 머리엔 큰 흉터가 남았다. 그리고 무슨 연유인지 그 일이 있은 후 또래 친구들에 비해 키가 잘 자라질 않았다. 할머니는 모든 일이 자신의 탓이라며 자책하셨고, 틈만 나면 나를 부둥켜안고 “할매가 미안하데이, 미안하데이” 하셨다.

  할머니는 성당에 다니셨는데, 잠자리에서 일어나셨을 때, 진지 드시기 전, 주무시기 전, 그 밖에 혼자 계시는 시간이면 성모상 앞에 앉아 묵주를 들고 항상 기도하셨다. 내가 소풍이나 운동회날 조금 다치기라도 하면 “할매가 기도했는데…” 하며 안타까워하셨다. 늘 가족들을 위해 기도하시는 할머니를 보면서 나는 할머니가 가족들보다는 자신의 병을 고쳐달라고 기도하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초등학교 6학년 때까지도 할머니와 같은 방을 썼는데 집이 좁아 이사를 하게 되었다. 하지만 할머니는 아버지의 부탁에도 불구하고 돌아가신 할아버지와 힘들게 정착한 집을 떠날 수 없다며 홀로 그곳에 남으셨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사 간 집이 할머니 댁과 멀지 않다는 것이었다. 할머니는 내가 보고 싶어 안 보이는 눈으로도 자주 우리 집에 오셨다. 내가 가면 될 것을 할머니가 아픈 몸을 이끌고 찾아오시게 한 것이다.

  시간이 흘러 나는 중학교 3학년이 되었다. 그사이 키가 많이 자라 또래 친구들과 비슷해졌다. 내 키가 크면 클수록 할머니는 점점 작아만 보였고, 그렇게 크고 넓었던 할머니의 품에 더 이상 안길 수가 없었다. 그래도 할머니에게 나는 여전히 어린아이로 보였나 보다. 짐을 들고 할머니와 어디를 갈 때면, 할머니는 이런 무거운 짐을 들기엔 아직 내가 어리고 힘이 없다며 만류하시곤 했다. 짐을 들고 있는 손 반대편에 있는 할머니의 손…. 크고 따뜻했던 그 손은 이제 작아만 보였고, 검고 쭈글쭈글한 할머니의 손이 왠지 안타까웠다.

 해가 바뀌어 나는 고등학생이 되었다. 할머니는 내게 선물을 하나 해주고 싶어하셨다. 생일도 아닌데 무슨 선물이냐고 했더니, 할머니는 자신이 세상을 떠나도 계속 기억할 수 있는 것을 선물하고 싶다고 하셨다. 천천히 어떤 선물을 받고 싶은지 생각해보라고 하셨는데, 며칠 후 할머니는 건강이 악화되어 병원에 입원하셨다. 병문안을 갔더니 ‘환자들 때문에 공기가 안 좋은데 왜 왔냐’고 나를 나무라셨지만, 굉장히 기뻐하시는 것 같았다. 그날 할머니는 다시 한 번 꼭 병문안을 와달라고 하셨다. 평소에는 오지 말라고 하셨던 할머니가 그러시는 것이 좀 의아했다. 그러나 그것이 할머니와의 마지막 대화였다.

  할머니의 장례를 치르는 동안 내내 할머니가 선물을 주겠다고 하셨던 게 생각났다. 하지만 나는 이미 선물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돌아가시는 그 순간까지 할머니의 끝없는 사랑을 받았다.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셔서 직접 그 사랑에 보답할 수는 없지만 이렇게 글을 써서 감사드릴 수 있을 것 같다. 할머니, 사랑합니다.

 

 

 < 할머니와 손자. 1993년 11월에 찍은 낡은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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