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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철학서

젊은 니체의 신앙고백 『비극의 탄생(Die Geburt der Tragodie)』

by 언덕에서 2012. 8. 16.

 

 

젊은 니체의 신앙고백 『비극의 탄생(Die Geburt der Tragodie)』

 

독일 철학자 니체(Nietzsche Friedrich Wilhelm.1844∼1900)는 목사인 카알 루드비히 니이체의 장남으로 출생(아버지 31세, 어머니 18세 때)하여, 14세 때 프포르타 공립학교에서 엄격한 고전교육을 받고 1864년 20세 때 본대학에 입학하여 F.리츨 밑에서 고전문헌학에 몰두하였고, 1870년 프로이센ㆍ프랑스 전쟁에 지원, 위생병으로 종군했다가 건강을 해치고 바젤로 돌아온 이후 그는 평생 편두통과 눈병으로 고생하였다.

 그는 쇼펜하우어의 형이상학을 빌려 그리스 비극(悲劇)의 탄생과 완성을 아폴론적, 디오니소스적 이라는 두 가지 원리로 해명하였으며,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1878)에서 과거의 이상을 모두 우상(偶像)이라 하고 새로운 이상으로의 가치전환을 시도했다. 성숙기에 쓰인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였다>(83∼85)에서 신의 죽음으로 지상(地上)의 의의를 설파하였고, 영겁회귀(永劫回歸)에 의해 삶의 긍정(肯定)의 최고 형식을 밝혔으며 초인(超人)의 이상을 가르쳤다.

 1888년 말경부터 정신이상 증세를 나타내기 시작한 그는 다음해 1월 토리노의 광장에서 졸도하였다. 그 이후 정신착란인 채 바이마르에서 사망하였다.

독일 철학자 니체 (Nietzsche Friedrich Wilhelm.1844∼1900)

 

 

 프리드리히 니체는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라고 외치면서 20세기 서양 철학사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니체의 이 외침은 ‘인간의 자유 의지’를 상징한다. 여기서 말하는 자라투스트라는 페르시아의 예언자 조로아스터. 페르시아가 세계 제국이 되었던 기원전 6세기경 조로아스터교를 창시한 인물이다.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가 니체의 철학에 어떻게 영향을 준 것일까. 니체는 왜 조로아스터에 열광한 것일까.

 조로아스터교는 선과 빛의 신 아후라마즈다와 악과 어둠의 신 아리만의 대결로 세상을 보았다. 개인의 삶이 발전하려면 선과 악 사이에서 끊임없이 투쟁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선악 투쟁의 최후는 불이 심판한다. 불의 제단은 그래서 특별한 숭배의 장소이자 페르시아 종교의 중심이었다.

 조로아스터와 페르시아인들은 인간이 선과 악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인간의 '자유 의지'를 중시한 것이다. 스스로의 의지에 따라 아후라마즈다의 편에 서면 최후의 심판 때 천국으로 갈 수 있다고 믿었고 그렇게 되길 기원했다. 세상과 삶을 선악의 투쟁으로 보고 동시에 인간의 '자유 의지'와 도덕성을 존중한 것은 인류의 종교사 지성사에 있어 매우 중요한 사건이었다. 니체가 조로아스터에 열광한 것은 바로 그 '자유 의지' 때문이었다.

 니체는 계몽사상, 합리주의에 반기를 들고, 기독교적, 민주주의적 윤리사상을 ‘약자 노예의 도덕’이라 하여 배척하고 강자의 자율적 도덕인 군주 도덕을 찬미하고 이 도덕을 구현한 사람을 ‘초인’이라 일컫고, 이를 우주의 본체인 권력 의지의 권화로 보았다.

 그는 근대 유럽의 정신적 위기가 일체의 의미와 가치의 근원인 기독교적 신은 죽었다는 사실에 기인한 것으로 단정하여 여기에서 발생한 사상적 공백 상태를 새로운 가치 창조에 의해서 전환시켜 사상적 충실을 기하려 하였다. 신 대신 초인을, 불멸의 영혼 대신 영원 회귀를, 미와 진 대신 권력에의 의지를,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기쁨 대신 심연을 거쳐서 웃는 인간의 내재적 삶을 내세웠다.

 

▲ 줄리오 로마노와 제자들, 디오니소스의 탄생, 1530년(왼쪽) 타란토 국립고고학박물관, 디오니소스의 탄생, 기원전 405-385(오른쪽)

 

 이 책은 독일 철학자 F.W. 니체의 처녀 논문이다. 그가 바셀대학에서 고전문헌학을 강의할 무렵인 1872년 <음악 정신에서의 비극의 탄생>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가 1886년 ‘자기비판 시도’를 머릿글에 넣어 <비극의 탄생 또는 그리스정신과 염세주의>로 제목을 바꾸어 출판되었다.

 그 안에 넘쳐흐르는 처녀작다운 싱싱한 정열은 용의주도한 논증에 결함이 있는 단점을 보충하고도 남음이 있다. 고전문헌학 연구를 토대로 A. 쇼펜하우어의 염세주의 사상을 원용하면서 그리스비극의 성립과 변천을 더듬고, 나아가 소크라테스 이후 에우리피데스 등이 전개한 주지주의의 비판을 통하여 R. 바그너의 음악에서 근대 독일문화의 헬레니즘적 생명부흥을 기대한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종래 고대관의 중심이었던 조화로운 그리스적 청랑(晴朗)함은 아폴론적 가상(假象)에 지나지 않으며 그 배후에 더욱 근원적인 음악 정신, 충동적ㆍ파괴적인 디오니소스적 도취가 존재한다고 생각하여 새로운 역동적 그리스관을 제시하였다. 그런 면에서 일개 문헌학자로서 그리스 비극의 성립이이라고 하는 곤란한 문제를 논하고, 그리스 문화의 본질에 새로운 조명을 부여한 획기적 저작이다. 즉 쇼펜하우어ㆍ바그너에 의해 촉발된 젊은 니체는 고전적 정제(整齊)ㆍ아폴로적 명석(明晳)으로 위치해있던 그리스문화에 디오니소스적 측면으로부터 새로운 빛을 던졌다.

 

 이 책은 학술서라고 하기보다는 오히려 시대 경향에 대한 심한 분노를 서술한 신앙고백이고, 예술작품으로서 향기를 발산하고 있다고 보는 면이 타당하리라는 생각이 든다.

 니체에게 근대는 속물 교양인, 천박한 욕망, 이기주의 등으로 가득 찬 타락의 온상이다. 니체는 여기서 자신을 시대의 일탈자로 규정하며 이러한 감정을 반시대성이라고 명명한다. 그에게 「비극의 탄생」이 내용상 반시대적이라면, 〈반시대적 고찰〉은 시대와의 불화를 반영하며, 이 두 글에서 공통된 주제는 다름 아닌 ‘삶’이다. 그는 근대적 삶에서 상실된 삶과의 역동적, 생산적 관계를 복원하기 위해 그리스 예술 정신을 끌어들이며, 삶을 왜곡하고 경직시키는 현대적 문화를 비판하기 위해 시대의 조류를 거스르는 반시대성을 선택했다. 이러한 반시대성에서 출발하는 현실 인식은 우리에게도 우리의 시대를 제대로 진단하고 미래를 전망할 수 있는 힘을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