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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철학서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라고 하세요!" 『마리 앙투아네트 베르사유의 장미(MarieAntoinette)』

by 언덕에서 2012. 4. 18.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라고 하세요!" 『마리 앙투아네트 베르사유의 장미(MarieAntoinette)』

 

 

마리 앙투아네트에 대한 수많은 이야기가 있다. 이 책의 저자 슈테판 츠바이크(Stefan Zweig, 1881~1942)는 사실에 입각하여 그녀의 일생을 서술한다. 그는 마리 앙투아네트를 아름다움의 입상(立像)으로, 역사의 희생양으로 미화시키지 않는다. 또한 그녀를 욕망의 화신으로, 낭비가 심한 사치스럽고 생각 없는 여인으로 깎아내리지 않는다. 그는 단지 평범한 여인 “마리 앙투아네트”가 역사의 커다란 비극 앞에서 어떻게 변화해 가는지, 보통 사람인 그녀가 역사의 수레바퀴 밑에서 어떻게 대처해 나아가는지를 보여준다. 그래서 이 소설은 역사소설이라기보다는 마리 앙투아네트라는 여인을 주인공으로 삼은 심리소설 쪽에 가깝다.

 이 책은 프랑스에서 희대의 악마, 악녀로 평가 받고 있는 마리 앙투아네트에 대한 이야기다. 흔히들 알고 있기로는 프랑스 왕비 마리 앙뚜아네트는 매일 방탕한 생활을 즐겼고 시민들의 세금을 낭비하는데 일조했다. 이후 19년 만에 38세의 나이로 프랑스를 망하게 한 죄를 받으며 머리를 빡빡 깎인 채 끌려나와 단두대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나라와 국민을 등한시하고 사치를 일삼았던 마리 앙투아네트는 프랑스 최고의 악녀로 비난 받았다.

 

 

 

 

 

 그러나 이 책은 이와 같은 평가를 뒤집는다. 그녀의 악마 이미지는 프랑스 대혁명 혁명군들에 의해 고의적으로 조작, 왜곡됐다는 것이었다.

 가장 많이 언급되는 부분은 마리 앙투아네트의 방탕한 생활이다. 그녀는 나라를 망치게 할 만큼 호화로운 생활을 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그녀가 왕비 자리에 있으면서 사용한 돈은 예전 왕비들이 사용한 것에 비해 턱없이 적었다는 것이다. 프랑스 예산 책정기록에 따르면 당시 전체 예산의 3%가 왕실 관련 예산으로 왕이나 왕비가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었던 자금이다. 하지만 화려한 베르사유 궁전을 짓기 위해 천문학적인 돈을 투자한 태양왕 루이14세에 비해 루이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는 19년간 단 한번도 왕실 예산 3%를 초과한 적이 없었고 오히려 왕실 예산 중 겨우 1/10 정도만 사용했을 정도였다.

 또 화려한 궁전이라 알려진 쁘티 크리아뇽은 수수한 별장일 뿐이었고 호화로운 파티를 열었다는 것도 단지 전원생활을 즐겼던 것이다. 이는 전속 재단사를 해고하고 도박용 탁자를 없앤 마리 앙투아네트의 행동으로 알 수 있다.

 저자에 의하면 마리 앙투아네트는 백성을 사랑했던 왕비였다. 루이16세 대관식 직후 쓴 마리 앙투아네트 일기를 보면 '자신의 불행에도 우리를 매우 잘 대해주는 사람들을 보면 우리가 그 어느 때보다 그들의 행복을 위해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사실이 분명해 진다'는 말이 쓰여 있다. 그녀는 빠른 길로 가겠다며 농민들의 밭을 밟고 지나간 여느 프랑스 왕궁 마차와 다르게 옥수수 밭을 망치지 않겠다고 다른 길로 돌아갔고 사냥을 나간 루이16세 오발로 농부가 부상을 입자 농부를 궁에 직접 데려와 간호하기도 했다.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는 국민의 손에 의해서 단두대 앞으로 끌려 나가 목숨을 잃었는데 그녀는 왕권주의의 위대한 성녀도 아니었고, 혁명의 “매춘부”도 아니었으며, 특별히 선을 베풀 힘도 악을 행할 의지도 없는 그저 평범한 여인일 뿐이었다. 어찌 보면 비극의 주인공이 되기에는 적당하지 않은 인물이었다. 하지만 때로는 평범한 혹은 아주 나약한 인물이 엄청난 운명의 수렁에 빠져들었을 때, 또한 무시무시한 개인적 책임을 져야만 할 때에도 비극은 발생한다. 화려한 삶의 주인공에서 감옥으로 곤두박질치는 평범한 여인 마리 앙투아네트의 비극이야말로 역사라는 위대한 창조주가 보여준 한 편의 드라마에 다름 아니다.

 그녀는 화려한 궁정에서 햇빛도 들지 않는 감옥으로, 왕좌에서 단두대로, 화려한 의장마차에서 초라한 박피공의 수레로 그녀는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최고의 것과 최하의 것을 모두 겪어야 했다.

 

 그녀는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라고 하세요!" 이런 말을 하지 않았다

 마리 앙투아네트가 했다는 이 말은 그녀가 세상물정에 얼마나 어둡고 국민들이 처한 상황에 무지하며 무관심했는지 보여주는 사례로 회자되곤 한다. 프랑스 국민들이 먹을 빵이 없어 굶주림에 고통 받는다는 말을 듣자 마리 앙투아네트가 그와 같이 말했다는 것은 상식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루이 14세의 아내였던 스페인 왕가 출신 마리 테레즈 왕비의 말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마리 테레즈가 “빵이 없다면 파이의 딱딱한 껍질을 먹게 하라” 말했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이는 혁명군들이 정치적 선전을 위해 고의적으로 퍼트린 말이었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프랑스 왕실에서 유일하게 소작인의 밭으로 마차를 몰아 밭을 망치는 짓을 거부했으며, 가난한 사람들의 삶에 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프랑스에 불행을 몰고 오리라는 악의적인 선전에 시달려야 했고, 혼외정사를 하며 정부를 갈아치우는 음탕한 여자라는 소문, 동성연애를 한다는 소문, 그녀가 낳은 왕자가 루이 16세의 소생이 아니라는 소문 등 갖가지 나쁜 소문에 시달렸다. 라 모트 백작부인을 비롯한 일당이 추기경과 보석상을 속이고 왕비를 사칭하여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편취한 일명 ‘목걸이 사건’은 마리 앙투아네트의 평판에 결정적인 악영향을 미쳤다. 사건 연루자들은 재판에서 마리 앙투아네트의 소행임을 주장했고, 프랑스 국민들은 그들의 말을 믿으려 했다. 목걸이 사건은 프랑스 대혁명 도화선이 됐고 마리 앙투아네트는 오명 속에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던 그녀의 무죄는 극악무도한 결과를 낳았다.

 

 

 

 마리 앙투아네트의 삶은 화려함으로 시작해서 초라함으로 끝을 맺는다. 어쩌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지워진 불운한 왕비로서 역사에 기록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죽은 후에야 그 어느 때보다 프랑스의 왕비로서 사람들의 인정을 받았다. 그 비극의 역사가 평범했던 여인을 위대한 왕비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혁명군들이 혁명 명분을 만들기 위해 고의적으로 마리 앙투아네트의 행동을 확대하고 재생산했다고 주장했다. 마리 앙투아네트 이미지를 악녀로 고착화 시키는데 일조했고 그녀가 사람들의 미움을 받게 된 것에는 태생적인 이유도 있다. 오랜 영토 전쟁으로 사이가 안 좋았던 오스트리아와 프랑스인데 마리 앙투아네트가 오스트리아 황궁의 여자라는 것이다.

 마리 앙투아네트에 관한 다른 책 '안토니아 프레이저'의 저서 <마리 앙투아네트>에서는 저자는 무심한 듯 담담하게 마리 앙투아네트의 삶을 서술하지만 바로 그 점이 그녀의 삶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저자는 “격한 감정을 일으키지 않으면서 그녀의 삶이라는 특이한 여정을 살펴볼 때, 그녀의 결점들이 명백하기는 하지만 그녀의 불행과 저울질해볼 때 하찮은 것이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고 적었다. 진실과는 관계없이 억울하게 역사에 남은 사람이 어찌 그녀 한 명 뿐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