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머싯 몸 단편소설 『샘(The Pool)』

영국 소설가 서머싯 몸(W. Somerset Maugham, 1874~1965)의 단편소설로 1923년 단편집 <The Casuarina Tree>에 수록되어 발표되었는데 원제는 ‘The Pool’이다. 단편집 <The Casuarina Tree>는 작가가 1920년대 초, 말레이시아 및 남태평양 지역을 여행하며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쓴 작품들을 수록하고 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영국인 은행원 로슨은 사모아 섬의 신비로운 샘에서 혼혈 여인 애설을 만나 사랑에 빠진 후 결혼한다. 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의 외모가 영국인보다는 원주민에 가깝다는 사실에 실망한 로슨은 아이의 장래를 위하여 영국으로 돌아간다. 로슨은 아들이 사모아의 영국인 사회에서 차별받는 원주민 부류로 살아가기보다는 영국 본토에서 평범한 혼혈인으로 사는 게 아들에게 유리하다고 판단한다. 그런데 아내 애설이 영국의 도시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여 그들 가족은 사모아로 되돌아온다. 이후 남편 로슨은 아내 애설을 처음 만난 샘에서 자살한다는 내용이다.
로슨이 애설을 처음 만난 곳은 사모아 섬 숲 속의 샘이다. 여기서 '샘'은 문명사회의 규범을 넘어서는 원초적 충동의 발현이다. 이후 영국으로 건너간 애설 역시 스코틀랜드 산속의 샘에서 멱을 감으며 문명에 적응하지 못하는 내면을 드러낸다. 결국 그들 가족은 사모아로 돌아오고, 로슨은 처음 사랑을 발견했던 샘에서 생을 마감한다. 이 작품에서 샘(The Pool)은 인간 욕망과 운명의 되풀이를 상징하며 자연과 문명 사이에서 방황하는 인간 존재의 비극을 응축해 보여준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배경은 20세기 초 사모아령의 아피아 섬이다. 노르웨이 남자와 사모아 여자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 여성 애설은 영국에서 살다 3년 전 고향 아피아섬으로 돌아왔다. 남편 로슨은 전직 은행지점장이자 알코올 중독자로, 처음 아피아 섬에 왔을 때 숲 속의 샘에서 애설을 만나 그녀의 미모에 반해 결혼한다. 백인 남성이 혼혈 여성과 결혼하는 일은 드물었고 주위의 우려도 있었지만 로슨은 이를 무시했다.
결혼 이후 로슨은 아피아 섬의 혼혈인 공동체 내에서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이게 되고, 아내의 가족들에겐 경제적 의존 대상으로 여겨진다. 아들을 얻은 후, 로슨은 아이의 검은 피부색과 사모아 원주민에 가까운 외모를 보며 절망한다. 아들의 외모에서 백인으로서의 정체성과 기대가 무너진 그는 아들이 사모아에서 백인의 삶을 살 수 없으리라 판단한다. 로슨은 가족을 데리고 스코틀랜드로 돌아간다. 그러나 사모아 여인 애설은 영국의 문명사회에 적응하지 못한다. 그녀는 남편 몰래 스코틀랜드 깊은 산속의 샘으로 가서 혼자서 멱을 감곤 한다. 결국, 우울증이 깊어진 애설은 로슨에게 ‘아들과 함께 고향으로 간다’는 전보를 보낸 후 아피아 섬으로 떠난다.
로슨은 아내와 아들을 찾아 다시 사모아에 도착하지만 애설과의 관계는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그는 그녀를 사랑했으나 놓아줄 수 없었고, 그 집착과 현실의 괴리감은 점점 커져간다. 마지막 장면에서, 누군가의 시체를 사모아의 샘물에서 끌어올리는 장면이 묘사된다. 물에 빠진 이는 로슨으로 외투 안쪽엔 돌덩이를 넣고 두 발은 묶인 채였다. 그는 결국 비극적 선택으로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이 작품은 20세기 초 남태평양 사모아 제도를 배경으로 인종과 문명 간의 갈등과 괴리를 깊게 탐구한 작품이다. 이야기의 한쪽에는 영국 사회의 가치관을 안고 식민지 세계에 들어간 백인 남자 로슨이 있다. 또 다른 한쪽에는 원주민과 노르웨이인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 여성 애설이 있다. 이 두 사람이 결혼하여 발생한 비극적 결혼생활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처음 로슨은 혼혈인 특유의 이국적인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애설과 결혼하지만 백인 사회의 편견과 자기 내면에 잠재된 인종적 우월의식은 곧 그를 갈등으로 몰아넣는다.
로슨은 아들의 원주민적 외모를 견디지 못하고, 더 나은 미래를 고려하여 애설과 아들을 데리고 영국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문명사회는 애설을 포용하지 않는다. 애설은 적응 실패로 우울증에 빠져 사모아로 돌아가기를 원한다. 로슨은 어쩔 수 없이 이를 받아들이지만, 점점 그녀를 소유하려는 집착에 사로잡힌다.
♣
이 소설은 로슨이 애설을 사랑한다고 믿으면서도 사실은 문명의 기준에 의해 그녀를 판단하고 통제하려 했음을 여실히 드러낸다. 로슨이 샘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장면은 그의 내면이 끝내 문명과 자연 그리고 이상과 현실 및 사랑과 소유 사이의 모순을 극복하지 못했음을 상징한다. 차갑고 어두운 샘물은 로슨이 빠져나올 수 없었던 자기모순과 절망의 심연을 은유한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문명화된 인간이 식민지 현실과 맞닥뜨릴 때 얼마나 쉽게 무너지는지를 예리하게 포착한다. 거꾸로, 문명사회에 대한 환상과 서구적 가치에 대한 맹목적 신념이 어떻게 개인을 파멸로 몰아가는지를 조용하고 비극적으로 서술한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작가의 대표적인 식민지 소재 단편 중 하나로 손꼽힐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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