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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현대소설

도스토옙스키 중편소설 『백야(白夜, Белые ночи)』

by 언덕에서 2024. 9. 18.

 

 

 

도스토옙스키 중편소설 『백야(白夜, Белые ночи)』

 

러시아 소설가 도스토옙스키(Dostoevski Fedor Mikhailovich.1821∼1881)의 중편소설로 1848년 [조국의 기록] 12월호에 발표되었다.

 몽상적 테마가 서정적이고도 문학적인 형태로 구현된 『백야(白夜)』는 ‘감상 소설(어느 몽상가의 회상에서)’이라는 부제가 말해주듯 어느 몽상가의 이야기를 다룬다. 도스토옙스키의 대표적 중편소설로 손꼽히는『백야』는 그의 문단 데뷔 때 천재성을 입증하는 계기가 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그려보았을 성스럽고 애달프며 순수한 사랑의 이중성을 담고 있다. 또한 사랑의 본질을 어느 몽상가의 눈으로, 자신의 속절없는 꿈을 통해 들려주고 있다.

 중편소설『백야』는 <감상적 로망>과 <어느 몽상가의 회상에서>이라는 두 개의 부제를 달고 있다. 화자는 자신의 몽상가적 성향을 냉철히 분석한다. 몽상가는 ‘인간이 아니라 일종의 중성적인 존재’이며, 자기 삶을 매 순간 마음 내키는 대로 새롭게 창조해 가는 예술가라는 것이다. 또한 거리에 실재하는 사람들로 자신만의 상상의 왕국을 건설하느라 현실의 삶에서는 의미를 찾지 못하는 유형이기도 하다.

 이 몽상가는 자기 삶을 ‘범죄이고 죄악’이라 비판하지만, 실상 그는 아름다운 페테르부르크의 백야에 나스텐카를 만나 사랑에 상처받은 마음을 도닥여준다. 그리고 그 사랑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돕는, 타인에게 진실한 연민을 느끼는 이타적인 인물이다. 나스텐카는 현실적인 여인임에도 몽상적 성향을 지닌다. 그녀는 사랑하는 남자와 재회해 사랑을 이루었음에도 화자와 친구이자 형제가 되겠다는 맹세로 인류애와 형제애를 전한다. 동시에 실현될 수 없는 공상적 사회주의의 꿈을 다시금 환기하는 여성이다.

영화 [백야(1957)]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친구도 하나 없이 쓸쓸하게 사는 ‘나’는 페테르부르크에서 ‘몽상’의 나날을 보낸다. '나'가 하는 몽상은 다름이 아니라 일생에 단 한 번만이라도 좋으니 순수한 마음으로 교감할 수 있는 ‘연인’을 만나는 것이다. 하지만 보잘것없는 자신에 대해 절망스러워하는 ‘나’는 감히 어떤 여인에게도 말 한 번 건네 볼 엄두를 못 낸 채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길거리에서 술 취한 행인에게 봉변당하고 있는 한 여인을 위기에서 구출해 주면서 '나'는 ‘꿈꾸던 사랑’을 현실로 만나게 된다. ‘나스텐카’라고 불리는 그 여인은 1년 만에 다시 만나기로 한 연인이 나타나지 않자 절망에 빠져 있다. ‘나’는 그런 나스텐카를 위해 진심 어린 조언자로서 그녀를 위로해 주고 다시 옛 연인을 만날 수 있도록 돕고자 한다. 하지만 그렇게 그녀를 위해 시간을 보내는 가슴 벅찬 사흘간의 사랑의 날들이 지나도록 나스텐카의 옛 연인은 나타나지 않는다. 절망에 빠진 나스텐카에게 ‘나’는 용기를 내어 사랑을 고백한다. 그녀도 ‘나’의 사랑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하고 함께 청혼하기에 이른다.

 두 사람은 앞으로 다가올 행복의 날들에 대한 기쁨에 취해 페테르부르크 거리를 걷는다. 하지만 그때 갑작스럽게 나스텐카의 옛 연인이 나타난다. 그러자 그녀는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나’를 버리고 돌아선다. ‘나’는 짧았던 사랑을 잃고 슬퍼하지만, 결코 그녀를 원망하거나 저주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에게 지극한 행복을 안겨주었던 그녀에게 축복이 내리기를 기원하며 이렇게 말한다.

 “오, 하느님! 꼬박 일 분간의 지극한 행복! 인간의 삶 전체에 비춰볼 때 과연 적은 것일까요?”

 이후 '나'는 다시 혼자가 된다. 나는 이 짧은 만남을 통해 자신이 잠시나마 사랑을 느끼고 현실과 교감할 수 있었음을 인정하면서도, 결국 다시 혼자만의 세계로 돌아가는 고독한 결말을 맞는다.

영화 [백야(1957)]

 

 중편소설 『백야(白夜)』를 통해 작가가 궁극적으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타인에 대한 사랑’이다. 도스토옙스키는 창작 초기부터 가난하고 평범한 보편적 민중들의 삶에 깊은 관심을 표명했다. 하지만 19세기의 시대 흐름은 그의 문학적 관심과 이상의 영역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성이 중시되었으며 과학만능주의가 팽배했다. ‘타인에 대한 무관심’과 ‘인간성 상실’이 새로운 시대적 분위기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백야(白夜)』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각각 평범한 19세기 러시아 민중을 대표하는 사람들이다. 주인공들이 등장하는 페테르부르크는 이야기를 담아내는 물리적 배경이라는 의미를 넘어서 ‘과학과 이성 만능주의’가 횡행하는 황량한 시대를 대변하는 장소이다. 그리고 그 차갑고 매몰찬 ‘현실적’ 공간 안에 존재하는 두 주인공은 모두 ‘꿈과 환상’이라는 의식을 통해서 ‘진리’에 접근하는 사람들이다. 여기서 말하는 진리란 바로 ‘사랑’이다. 그것도 현실적 요건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사랑이 아닌 절대불변의 ‘영원성’이 내재한 사랑이다. 그러므로 ‘꿈과 환상’이라는 배경을 통하지 않고는 도저히 담아낼 수 없다.

 하지만 도스토옙스키는 삶의 본질이라고 믿는 부분을 단지 ‘꿈’의 영역에 내버려 두지 않고 현실로 끌어내린다. 현실적으로 무기력한 한 개인으로서의 주인공들이 ‘꿈’의 영역을 넘나들다 돌아온 페테르부르크는 여전히 차갑고 메마른 공간으로 남아 있다. 한 가지 변화된 것이 있다면 그들 스스로가 ‘적극적’으로 타인을 사랑할 수 있는 ‘꿈꾸는 존재’로 거듭난다는 점이다. 그들의 꿈은 이제 실현 불가능한 몽상으로서의 꿈이 아니라 현실을 긍정적으로 바꾸어나가기 위해 노력하는 자의 ‘현실적 꿈’이다.

 도스토옙스키는 세상이 현실적으로 ‘변화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인간성 상실’의 현실을 사회적 조류나 타인의 탓으로만 돌릴 것이 아니라 개개인이 ‘인간에 대한 사랑’을 회복해갈 때 결국 모든 것은 아주 다르게 변화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가 “그런데 그게 그렇게도 어렵단 말인가!”라고 외치는 것은 너무나 쉽고 가까운 진리를 외면하는 현실에 대한 절규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그건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다”라는 긍정과 희망의 전언이기도 하다.

 

 

 중편소설『백야(白夜)』는 음울한 인생의 내면만을 주요 소재로 다뤄 온 도스토옙스키에게 있어 특이하고 주목할 만한 문학사적 의의가 있는 작품이다. 비평가 대부분이 이 작품을 독특한 영역으로 보는 이유는, 작가에 대한 압도적인 선입관 탓도 있겠지만 실제로 그의 대부분 작품, 그보다 그의 첫 작품인 <가난한 사람들>에서 보여 준 강렬하고 음울한 그림자에서 많은 변화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도스토옙스키가 이 작품에 ‘감상적 로망’ 및 ‘어느 몽상가의 추억에서’라는 부제를 붙인 것만 봐도 이것이 ‘검은 실존의 그림자’만을 추구해 마지않던 그의 정신사에서 자못 낭만적인 일면을 보여 준 작품임을 스스로 인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백야』는 딱딱한 설교자이자 광적인 초인주의자인 도스토옙스키에게서 로맨틱하고 섬세한 감정이나 정서를 엿볼 수 있는 유일한 작품이다.

 장편소설 <가난한 사람들>에 찬사를 퍼부었던 비평가 벨린스키는『백야(白夜)』에 드러난 주인공의 이상심리와 그 이상심리에 병적인 관심을 보이는 작자 자신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사실주의에서의 일탈을 혹독하게 평가했다. 그러나 적어도 이 비판점들이 <가난한 사람들>에서의 단순한 후퇴나 퇴보가 아니라 후기 작품에서 보여줄 위대한 인간 혼의 발원지가 되고 있다는 점에서, 도스토옙스키 문학사 가운데 충분히 하나의 신기원적 위치를 점하고 있다. 또한 이 작품 전편에 깔린 서정적 감상주의는 저자의 내부에 흐르는 감미로운 낭만의 향기를 여실히 드러낸다. 이 작품은 도스토옙스키가 작가로 탄생하게 된 데뷔작이며 도스토옙스키 작품 경향을 아는 이에게는 의외의 면모를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작자의 일생과 내면에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 그것이 작품으로는 어떻게 표현됐는지 보다 잘 알 수 있는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