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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5월의 미각

by 언덕에서 2014. 5. 13.

 

 

 

5월의 미각

 

 

 

오늘은 오랜만에 최근에 먹은 맛난 음식 타령을 해보고자 한다. 그 동안 너무 축 처져 있었던 탓인지 , 아니면 계속된 우울함 탓인지 몸이 이곳저곳 아파오기 시작했다.

 지난 5월 첫주 연휴 때 ‘정남진’이라고 불리는 전라남도 장흥에 갔었다. ‘정남진 시장’이라고도 불리는 ‘장흥 토요 시장’을 구경하기 위해서였는데 운전 시간도 길었지만 연휴인 관계로 그야말로 구름 같은 인파를 만날 수 있었다. 동행한 아내는 ‘오늘 같은 날에는 대한민국 어디를 가더라도 이런 인파를 만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한우와 키조개와 표고버섯을 함께 불판에 구워먹는 이른바 ‘장흥 삼합’이라는 것이 있는 모양인데 이 시장의 절반은 ‘장흥 삼합’ 파는 식당으로 이루어진 느낌이었다. ‘장흥 삼합’은 전에도 한 번 먹어봤는데 그런대로 먹을 만했지만 극찬을 하고 싶은 정도는 아니었다. 우리 문화수준이 높아진 탓인지 아니면 입맛이 고급화된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젠 웬만하게 유명한 음식을 먹어도 시큰둥해진다.

 

 

 

 

 

 시장 모서리를 돌다가 곰탕집을 만났다. 유명 드라마를 촬영한 곳인 모양인데 내가 자리에 앉자 말자 손님들이 밀려오는 바람에 나머지 손님들은 줄을 서는 진풍경이 이루어졌다.

 

 

 

 

 

 

 

 

 

 

 

 

 

  곰탕의 짙은 국물 맛이 일품이었지만 작년 가을에 담은 것으로 보이는 삭힌 김치 맛이 아주 별미였다. 은근한 비린내와 감칠맛을 풍기는 묵은 지는 젓갈 대신 붕장어(아나고)를 넣고 삭힌 것 같았다. 고소한 곰탕 국물과 묵은 김치가 입 속에서 오묘한 조화를 이룰 수 있음을 느낀 날이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보성에 들러 유명 차밭에서 ‘발효녹차'를 마셨다. 주인장 내외가 가꾸어 놓은 녹차 밭이나 발효차 맛보다는, 부부가 수제차를 만드는 작업실로 쓰고 있는 별채가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나는 멀지 않은 시기를 정하고 귀촌을 준비 중인데 새로 집을 짓는 것보다 서까래가 튼튼한 오래된 기와집을 현대식으로 개조해서 사용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오래 전부터 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식으로 개량한 부엌과 화장실을 포함하여 방이 6개인 일자 기와집이 내 마음을 온통 사로잡았다. 어쨌든 오랜만에 나들이를 해서인지 약간의 리프레쉬가 된 듯하다. 

 

 

 

 

 

 

 

 

 

 연휴 이틀째 날에는 웅어를 먹을 수 있었다. 한방차를 만들기 위한 한약재를 구입하기 위해 대형 재래시장에 들렀다가 어물전의 생선회 가게에서 귀한 음식을 발견하게 되었다. 웅어는 예전 임금님이 드시던 귀한 물고기로 조선 말기에는 행주에 사옹원(司饔院) 소속의 ‘위어소(葦漁所)’를 두어 이것을 잡아 왕가에 진상하던 것이 상례였다고 전해진다. 웅어는 낮은 물에 잘 자라는 갈대 속에서 많이 자라서 갈대 ‘위(葦)’자를 써서 위어(葦魚, 갈대고기)라고도 한다. 강경에서는 ‘우여’, 의주에서는 ‘웅에’, 해주에서는 ‘차나리’, 충청도 등지에서는 ‘우어’라고 불린다고 한다. 부산 지방에서 만나는 웅어는 낙동강 하구인 하단에서 잡히는 것들이다. 우리 지방에서는 그냥 '웅어'라고 부르고 있다.

 

 

 

 

 웅어는 성질이 급하여 그물에 걸리면 금세 죽어버리기 때문에 상하는 것을 막기 위하여 즉시 내장이나 머리를 떼어내고 얼음에 쟁여 놓는다. 그렇게 되어 있는 것을 지나가던 내가 발견하게 되었다.

 주인 아주머니에게 ‘이게 웅어 아니냐’ 고 여쭈었더니 ‘어떤 이는 웅어를 먹기 위해 1년을 기다리는 경우도 있다’며 응답을 해주었다.

 웅어는 회로 먹으면 살이 연하면서도 씹는 맛이 독특하고 지방질이 풍부하여 고소하나, 익혀 먹으면 아무런 맛이 나지 않는다. 가을 진미 전어와 비교되는 봄의 진미인데 6~8월에도 잡히지만, 뼈가 억세 지고 살이 빠져 제 맛이 나지 않아, 제철인 4 ~ 5월에 뼈째로 먹는 걸로 알려져 있다. 먹어보니 달디 달고 고소한 맛이 과연 별미 중의 별미였다. 이런 맛을 무엇에다 비유해야 할까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으니 말이다.  

 이열치열, 이한치한 이란 말이 있다. 이 말은 우리네 민족성에서 나온 말로 추정된다. 더운 여름에는 시원한 음식보다는 오히려 펄펄 끓는 음식을, 추운 겨울에는 따뜻한 음식보다는 소름이 돋을 정도의 냉기 나는 음식을 즐겨 먹으라는 의미일 게다.

 우리네 인생에도 그러한 묘미가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단맛을 아무리 내도 더 이상 단맛이 나지 않을 때와, 짠맛을 아무리 내도 더 이상 짠맛이 나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럴 때 어떻게 해야 할까?"

 "단맛을 더 내고 싶을 때는 설탕을 더 넣는 것이 아니라 간장을 조금 넣습니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단맛이 더 강해집니다. 짠맛을 더 내고 싶을 때도 간장을 더 넣는 것이 아니라 설탕을 아주 조금 넣어보면 짠맛이 짙어진 걸 느낄 수 있습니다."                     

 -김미라 / 나를 격려하는 하루(나무 생각 2006)  p189 

 

 하하, 어쨌든 맛에는 정의가 없을 것 같다. 미각의 주체인 개인마다 느끼는 것이 다르기 때문이다. 내가 주장하는 보편적인 맛은 가장 일반적인 대중의 미각에 근거하고 있다고 나름대로 생각하고 있다. 어쨌든 이리저리 건강이 좋지 않았는데 섭생으로 인해 좀 나아지기를 기대해 본다. 단맛을 더 내려면 짠맛이 필요한 것처럼, 밝음을 위해선 어둠이 필요하다. 내 인생의 그늘, 내 인생의 짠 맛. 그것이 내 인생의 밝음과 단맛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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