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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전상국 중편소설『우상의 눈물』

by 언덕에서 2013. 7. 4.

 

 

 

전상국 중편소설 『우상의 눈물

 

 

 

 

전상국(全商國.1940∼ )의 중편소설로 1980년 [세계의 문학] 여름호에 발표되었다. 이 작품은 윌리엄 골딩의 <파리대왕(1954)>이나 황석영의 <아우를 위하여(1972),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1987)>에서 보여주는 소년들의 권력과 힘에 대한 욕망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 관점은 소년들의 세계에서 어른들이 끼어드는 질서와 사랑의 본 모습이 무엇이냐 하는 점에서 구분된다.

 이 작품은 교육 현장을 무대로 사랑과 전체주의적 질서의 문제를 깊이 있게 파헤친 작품이다. 이 작품의 중심내용은 문제아의 순치과정이다. 낙제하여 2학년에 유급된 한 문제아가 같은 무리들의 우두머리가 되어 학생들을 괴롭힌다. 담임선생과 반장이 앞서서 ‘악’에 물든 그를 사랑으로 구원하고자 한다. 그의 무리들에게 폭행 당해 병원에 입원할 지경이 되었는데도 그 사실을 발설하지 않으며 오히려 가난한 그를 돕는 운동을 벌인다. 그러나 그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다. 그의 편에 서서 그의 처지를 이해하려는 것이 아니라 다른 목적을 위해 내세워진 수단으로서의 사랑이기 때문이다. 다른 목적이란 같은 반이라는 공동의 배를 타고 순항하여 한 명의 낙오자도 없이 1년의 항해를 마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학급의 질서를 벗어나는 이방인이 없어야 한다. 질서 밖으로 벗어난 이방인을 순치시켜 질서 안으로 끌어들이는 수단이 사랑이었던 것이다. 구성원 전체를 일사분란하게 복속시키는 그 질서는 무서운 전체주의적 폭력이다. 전체주의적 폭력은 어떤 경우이든 본래의 정체를 숨기고 그럴듯한 이데올로기로 미화하는 속성을 지니고 있는데 이 작품의 경우 ‘사랑’이 바로 그 이데올로기이다. 이렇게 본다면 이 작품은 전체주의적 질서의 폭력성을 탐구한 정치적 알레고리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호랑이를 토끼 모양의 틀에 끼워 토끼로 만들 수 있을까. 억지로 모양을 바꾸어 토끼처럼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심성마저 토끼로 바뀌지는 않는다. 호랑이는 호랑이대로 살아야 행복하고, 토끼는 토끼대로 살아야 행복을 느낄 것이다. <우상의 눈물>은 포악한 호랑이를 토끼로 만드는 이야기며, 포악한 호랑이 같은 사람보다 음흉한 사람이 있음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이 소설은 1982년 임권택에 의하여 영화화되었다.

 

 

임권택 작. 영화 <우상의 눈물> 1981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어느 고등학교 2학년 교실. 유대(소설 속의 나)는 기표를 우두머리로 하는 재수파에게 린치를 당한다. 재수파라는 이름은 그들이 낙제를 해서 한 학년 더 다니게 되었기 때문에 붙여졌다. 그들은 담뱃불로 유대의 허벅지를 지졌다. 그렇게 한 까닭은 유대가 임시 반장으로 메스껍게 굴었기 때문이라는 거였다. 반 아이들을 자기 마음대로 주무르고 마음에 안 들면 데려다가 린치를 가하기도 하는 기표는 도무지 무서운 게 없는 것처럼 행동하는 ‘문제아’다.

 기표의 담임은 자기 반을 일사분란하게 움직여 가기 위해 자율이란 이름으로 학생들을 조종한다. 우수하고 통솔력 있는 반장 형우를 앞세워 인정받는 반, 모범적인 반으로 만들어 가려고 애쓴다. 자연히 기표는 담임이 ‘다스려야 할’ 위험인물일 수밖에 없다.

 담임은 기표에게 운동복을 사 주기도 하고, 형우를 부추겨 기표가 커닝을 하여 좋은 성적을 얻게 하려고도 한다. 이런 일들은 기표의 성질만 건드릴 뿐 제대로 되지 않는다. 그러나 반장 형우가 재수파들에게 끌려가 린치를 당한 뒤 상황은 달라진다. 기표를 제외한 재수파들은 범인을 끝내 밝히지 않는 형우를 찾아와 사과한다. 기표가 점점 힘을 잃어 가기 시작한 것이다. 게다가 비참한 기표 집안 사정이 알려지면서 기표는 완전히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되고 만다. 기표 집안은 입에 풀칠하기도 힘든 가난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 동안 피를 뽑아 가면서 기표에게 돈을 바쳐야 했던 재수파들의 행동은 눈물어린 우정으로 미화되었고, 기표 반 아이들은 기표를 위한 모금 운동을 벌인다. 기표의 이야기가 영화화되는 계획도 세워진다. 울부짖는 호랑이 한 마리를 토끼로 바꾸는 데 성공한 것처럼 보였다. 기표 자신도 포악을 부리지 못했다.

 모든 것이 잘 되어 가는 듯 보이던 날, 기표는 내리 사흘을 결석했다. 가출을 한 것이다. 일사분란한 항해를 한다고 자부하던 담임은 기표가 그 항해를 망쳤다고 생각하며 욕설을 퍼붓는다.

 기표가 자기 여동생에게 보낸 편지 맨 앞줄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무섭다. 나는 무서워서 살 수가 없다.”

 

 

임권택 작. 영화 <우상의 눈물> 1981

 

 

 이 소설에서 우리는 네 명의 등장인물을 눈여겨보게 된다. 모범적인 교육자로 보이는 담임선생과 문제아 기표, 그리고 유능한 반장, 이들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유대(나)가 그 넷이다. 기표는 가난한 가정 형편으로 비뚤어진 아이다. 그는 난폭한 행동으로 자기 현실의 고통을 감추고 이겨나간다고 볼 수 있다. 담임선생은 치밀한 계산 아래 아이들을 자기가 정한 방향으로 이끌어가려는 교사다. 진실보다는 자기가 정한 목표를, 아이들의 개성보다는 전체의 조화를 중요시한다.

 형우는 담임선생의 목표를 이루는 데 실제적인 역할을 하고 있지만, 담임의 꼭두각시는 아니다. 기표의 행동을 비판하며, 그를 길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담임선생이 위선과 자기 과시욕을 바탕으로 기표를 길들이려는 데 비해 형우는 나름대로 의협심과 자기 주관을 갖고 기표를 다스려 간다.

 

 

 유대는 이 소설의 화자로, 이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을 객관적으로 관찰하면서 더 큰 진실을 발견한다. 그것은 작가가 이 작품을 통해 우리에게 전해 주려는 것이기도 하다.

 이들이 만들어 내는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단순히 오늘의 학교 현실을 바라보는 것만은 아니다. 위선으로 가득 찬 우리 사회를 바라보게 된다. 이 소설에서 기표의 행동은 두렵고 악한 것이다. 그러나 자율이라는 이름으로 치장한 담임선생의 치밀한 계산, 기표의 약점을 철저히 이용하여 그를 굴복시키는 책략은 더 두렵고 무섭다.

 기표는 이 소설의 마지막에서 무섭다고 했다. 대체 무엇이 무섭다는 것일까? 기표야말로 아이들이 복종하던 우두머리가 아니었던가? 기표가 가진 힘이 두려워 자기가 죄를 뒤집어쓰고 자퇴한 아이가 있을 정도로 기표는 무서운 아이였다. 그러나 이런 기표를 알게 모르게 옭아매어 우리 속에 가둔 더 무서운 힘이 있었다.

 이 소설에서 그 무서운 힘은 담임선생을 통해 나타난다. 아이들 하나하나의 삶을 외면하고, 난폭함 속에 감춰진 고통이 무엇인지를 외면하고, 똑같은 틀에 가두려는 잘못된 교육 제도가 바로 그 무서운 것의 실상이다. 이 소설은 아이들의 개성과 독특한 자질과 차이를 무시하고 하나의 틀에 넣으려는 권위주의적 교육 체제를 비판하고 있다. 나아가 반장을 대리자로 내세워 그 뒤에서 이를 치밀하게 조종하면서, 자신의 이름을 날리기 위해 온갖 연극을 연출한 교사의 허위의식을 날카롭게 고발하고 있다.

 

 

 

 

 

 

 

전상국(全商國.1940.3.24∼ ) 소설가. 강원도 홍천 출생. 아명(兒名) 전일랑. 1960년 춘천고등학교 졸업, 1963년 경희대학교 국문학과 졸업. 1985년 경희대학교 대학원 졸업. 196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동행>이 당선되어 등단. 강원대 국문과 교수 역임. 1977년 <사형>으로 현대문학상, <아베의 가족>으로 한국문학 작가상, 1980년 <우리들의 날개>로 동인문학상(1980), <투석>으로 윤동주문학상, <싸이코 시대>로 김유정문학상, 대한민국문학상1980)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