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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현대소설

크로닌 장편소설『천국의 열쇠(The Keys of the Kingdom)』

by 언덕에서 2013. 2. 5.

  

크로닌 장편소설『천국의 열쇠(The Keys of the Kingdom)』

 

 

 

스코틀랜드 소설가  A.J. 크로닌(Archbald Joseph Cronin.1896∼1981)의 장편소설로 1942년 발표되었다. 이 작품은 신과 인간에 대한 깊은 사랑을 가지고 인내와 청빈과 용기 있는 삶을 살았던 프란치스 치셤이라는 한 가톨릭 신부의 생애를 통해 참된 인간상을 보여 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국가와 인종이 다르고 종교와 사상, 종파가 다르다고 해서 서로 대립하는 대신 온 인류가 사랑과 평화 가운데 하나되는 화합의 길을 제시하고 있다.

 이 소설은 가톨릭의 신앙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나, 그리스도교인이 아닌 독자들도 주인공의 종파와 사상을 초월한 신앙과, 인간에 대한 뜨거운 사랑의 정신에 깊은 공감과 감동을 느끼게 한다. 재미있고 극적인 스토리의 전개는 읽는 이를 깊은 감동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게 만든다. 이차세계대전이 한창이던 무렵인 1944년 존 M 스탈 감독에 의해 미국에서 영화화되었는데 그레고리 팩이 주연을 맡았다.

 

영화 -천국의 열쇠 The Keys Of The Kingdom- , 1944 제작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이야기는 70살을 바라보는, 형편없이 늙어버린, 치셤 신부를 주교의 비서신부가 은퇴시킬 빌미를 잡으러 방문한 후 치셤의 회상으로 시작된다.

 스코틀랜드 바닷가 마을에서 단란하게 살던 프랜시스 치셤은 9살 되던 해 신구교 간의 분쟁 때 다친 아버지를 엄마가 데려오던 중 익사사고를 당하여 졸지에 고아가 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먼 친척 아주머니 집에서 살게 된 치셤은 아주머니의 뜻대로 신학교에 입학하여 어렵게 신부가 되었다.

 한편 어릴 적 친구이자 신학교 동창인 안셀름은 훤한 외모에 타고난 언변으로 총애를 받으며 또 다른 성직자의 인생을 시작한다.

 치셤 신부가 보좌신부로 처음 부임한 빈민 탄광촌 성당의 주임신부는 이미 패배의식에 꽉 찬 상태였다. 주민을 위해 헌신적인 노력을 하는 치셤을 그는  탐탁지 않게 여긴다.

 자신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성과가 나타나자 자괴감에 빠진 주임 신부의 모략으로  그를 다른 곳으로 전출시키는데, 치셤은 중국 선교사로 영국을 떠나게 된다. 1902년, 황하강변의 내륙 오지, 듣던 것과는 달리 건물도 신자도 없는 폐허 위에 내던져진 치셤은 마음을 다잡고 임시 진료소를 연다. 의학 지식은 없었지만 정성을 다한 끝에 마을 부호의 아들을 고쳐줘 그가 기부한 땅에 성당을 짓게 되었다. 각고의 노력 끝에 성당이 완공되었다. 이미 요직에 앉은 안셀름의 시찰방문이 있기 하루 전날, 폭우로 인해 성당은 완전히 붕괴되고 만다. 그곳을 방문한 안셀름은 친구를 힐책하는 한편, 속으로는 그 결과를 감동적 설교로 승화시켜 자기를 돋보일 문구를 궁리한다.

 세월이 흘러 중국 대륙에 페스트가 창궐하였다. 그때 본국에서 봉사자로 온 의사가 바로 고향의 또 다른 친구 탈록이었는데 그는 무신론자였다. 그들이 힘을 합쳐 수많은 사람들을 구하여 전염병이 잦아들 무렵 탈록이 감염되어 눈을 감는다. 치셤은 임종의 자리에서 그가 신자가 아님에도 천국에 들어가길 빌어준다. 그 후 새로 생긴 개신교 선교관의 목사 부부를 알게 되는데, 그들은 소속이 다름에도 깊은 교감을 나누며  서로를 돕는다.

 20여 년의 세월이 더 흘러 노인이 된 치셤은 목사 부부와 숲길을 가던 중, 군벌잔당들에게 잡혀 포로가 된다. 그들은 과거에 치셤 때문에 전투에서 패한 자들이다. 신부일행은 혹독한 고문 끝에 탈출에 성공하지만 목사는 숨지고 치셤은 얼굴이 일그러지고 다리도 절게 되었다.

 겨우 살아난 치셤에게 안셀름 주교로부터 귀국해서 은퇴하라는 편지 한 장이 날아왔다. 떠나기 전날, 맨 처음 땅을 기부했던 부호가 찾아와서 개종할 뜻을 비친다. 그는 중국 전통사상으로 무장한 사람이었지만, 평생 치셤을 지켜보며 그가 믿는 하느님을 같이 믿기로 다.

 본국으로 돌아온 치셤은 어릴 적 친구였으나 지금은 자신의 상사인 교구장 안셀름 주교의 홀대를 무릅쓰고 작은 성당에 자리를 얻는다. 치셤은 거기서 고아소년을 한 명 돌보는데 그에게 유교의 공자사상을 가르친다. 꼬투리를 잡으러 온 주교비서가 그것을 보고 보고서를 작성하지만, 며칠 머무는 동안 마음이 바뀌어 찢어버린 후 떠난다.

 

영화 -천국의 열쇠 The Keys Of The Kingdom- , 1944 제작

 

 

 

 가톨릭 교회 그러니까 성당에 가면 본당마다 '성물판매소'라는 곳이 있다. 내가 이 책을 처음 만난 곳은 고교 시절 다니던 성당의 성물판매소에서였는데 그때부터 이 책을 읽어야겠다고 작심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읽게 된 것은 20대 중반인 군제대 후로 기억한다. 내가 믿는 종교가 내게 중요한 것처럼 타인의 종교도 중요한 만큼 그들의 신앙도 존중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만든 계기가 된 작품이다.

 이 소설은 한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란 프랜시스 치셤과 안셀름 밀리라는, 서로 다른 두 사람의 이야기가 대칭 구조로 전개된다. 하느님과 교회를 사랑하면서도 정작 인간은 사랑하지 않는 안셀름 밀리는 사도의 책임보다는 사도의 권세에 더 관심을 기울이는, 천국의 열쇠와는 인연이 없는 사람이다.

 반면 보잘것없는 외모에 어눌한 말투의 소유자이지만 프랜시스 치셤은 성직자이면서도 천국에 들어가는 문이 하나뿐이 아니라고 믿는다.‘그대가 하느님을 믿지 않아도, 네 행위를 보아 하느님께서 너를 믿을 것이다’, ‘주님, 이번만은 주님 뜻대로 마시고 제 뜻대로 이루어지게 하소서’ ……  이런 말을 서슴지 않는 치셤은, 교회보다는 인간을, 천국보다는 이승에서의 참다운 삶을 더 귀하게 섬긴다. 밀리와는 반대로 사도의 권세보다는 사도의 책임에 더 관심을 기울이는, 천국의 열쇠를 이미 손안에 넣은 사람처럼 보인다.

 

 

 대조적인 두 사람과 달리 정의로운 무신론자인 윌리 탈록은 종교적 가르침에 얽매이지 않은 채 자신의 온 삶을 던져 이웃을 사랑하고 봉사하면서 의롭게 죽어 간다. 의사가 되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일하다, 후일 친구인 프랜시스 치셤 신부가 선교사로 일하는 중국의 벽지 파이탄에서 페스트와 싸우다 목숨을 잃는다. 그는 서구의 전통적인 사상이나 그 시대 유럽 사람들이 공유하던 신학에 굴복하지 않고 자기 존재를 던져 이웃사랑을 검증한다.

 이 소설은 그리스도교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지만 치셤 신부의 삶이 보여 주듯이 인간을 위한 인간의 얼굴을 한 믿음이 아니라면 천국은 땅 위에서든 하늘에서든 그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종교 간 반목과 인종 및 민족 갈등, 그리고 갈수록 심화되는 빈부격차로 몸살을 앓고 있는 이 시대에 진정으로 필요한 참 인간과 믿음, 종교의 모습이기에 읽는 이로 하여금 끝없는 감동을 선사하는 명작이다.

 

 

 

 

 


크로닌(Archbald Joseph Cronin.1896.7.19∼1981.1.6)은 스코틀랜드덤바턴 셔 카드로스 출생으로 글래스고대학교에서 의학을 전공하고 제1차 세계대전 중에는 군의(軍醫)로서 종군하였다. 그 후 남(南) 웨일스의 탄광지방에서 의업에 종사하였고, 또 런던에서 개업하여 전문분야의 업적을 인정받게 되었다.

 그러나 과로를 못 이겨 의업을 버리고 요양 중에 소년시절부터의 꿈이었던 작가수업에 몰두함으로써, 남자의 허영과 아내의 인내, 사랑과 미움의 갈등 등을 그린 첫 작품 《모자 장수의 성(城) Hatter’s Castle》(1931)을 발표하였다. 이 작품은 출판과 동시에 경이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켜, 각색상연과 영화화, 21개 국어로 번역되는 등 큰 성공을 거두었다.

 뛰어난 구상력을 갖춘 대하소설로서 독자를 사로잡았고, 사회소설로서의 대중성을 특징으로 한 작품을 많이 남겼다. 그 밖의 대표작으로는 《성채(城砦) The Citadel》(1937), 《천국의 열쇠 The Keys of the Kingdom》(1942)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