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르주 베르나노스 장편소설 『어느 시골 신부의 일기( Journal d'un curé de campagne )』
프랑스 소설가 조르주 베르나노스(Georges Bernanos, 1888 ~ 1948)가 1936년 발표된, 일기 형식으로 쓰인, 이 작품은, 어느 본당에 부임해 온 한 젊은 신부가 3개월 정도의 짧은 직무 수행 중 겪는 고통과 고뇌의 기록이다. 소설의 주인공 신부는 고통 받는 이들에 대한 거룩한 사랑, 그리고 이 사랑에서 비롯된, 세상 모든 죄악을 용서하는 위대한 믿음으로 결국 “이 모든 것이 은총”임을 깨닫는다. 너무나 나약하지만 쉽게 무너지지 않는 고결한 인간 본성이 아름답게 그려져 있다.
"다른 내게는 힘이 없는 만큼 나는 이제 내 죽음은 작은 것이기를, 가능한 한 작은 죽음이어서 그것이 내가 살아오면서 겪은 사건과 특별히 구분도 안 되는 것이기를 소망한다……."
1930년대 반교권주의와 무신론이 번져 가던 당시 프랑스 사회에서, 사르트르나 카뮈와도 비견되던 날카로운 시각으로 그 시대 교회의 부패와 관료주의 등을 앞장서 비판했던 베르나노스는 『어느 시골 신부의 일기』를 통해, 너무나 나약하지만 쉽게 무너지지 않는 고결한 인간 본성을 어느 누구보다 아름답게 그려냈다. 20세기 프랑스 소설 중 최고 걸작의 하나로 꼽히는 이 작품은 한편으로 20세기 가톨릭 문학의 정수로 평가받는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신을 향한 믿음이 사라져 가던 시대, 프랑스 북부의 어느 작은 시골 마을 칼레의 본당에 부임해 온 한 젊은 신부는 가난과 욕망, 육체적 정신적 나태에 어그러진 마을의 모습을 목격하고 깊은 고뇌에 빠져든다. 그리고 ‘악’과 싸우기 위한 용기와 힘, 의지를 얻기 위해 일기를 써 내려가기 시작한다.
이 일기를 쓰는 젊은 신부는 놀랍도록 순수하면서도 우직하고 열정적이다. 배타적이고 폐쇄적인 마을에 부임해 온 이 신부는, 세상 물정 모르는 순박함과 타협을 모르는 곧은 성격 때문에 사람들과 쉽게 어울리지 못한다. 그의 마음을 몰라주는 마을 사람들은 신부를 모함하고 비난의 눈길을 보내기 일쑤다.
가난한 마을 칼레의 구영주인 백작은 딸의 가정교사와 관계를 맺고 부인은 장남을 잃고부터는 사람을 사랑할 수 없게 되었다. 딸은 그러한 부모를 증오하고 있다. 사제는 부인과 딸을 화해시켜서 부인을 고뇌의 지옥으로부터 구출하나 부인은 영혼의 평온을 찾음과 동시에 심장병의 발작으로 급사한다. 사제도 고독과 병약과 마을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 죽지만 모두가 은총이라고 체념한다.
신부는 일기 쓰기를 통해, 신앙에서 멀어지고 여러 죄악에 빠져 고통 받는 영혼들뿐만 아니라 자신의 고독과 자기 연민까지 깊숙이 들여다본다. 썩어가는 포도주와 딱딱한 빵만으로 이루어진 자기 학대와도 같은 식사, 다른 사람들보다 연약한 신체, 세상과 어울리지 못하는 외로움……. 신부는 더 이상 기도를 하지 못하고 자살의 유혹까지 겪지만 세상 모든 죄악을 용서하는 위대한 믿음으로 결국 “이 모든 것이 은총”임을 깨닫는다.
1930년대 프랑스 시골의 한 본당이지만 여느 본당과 마찬가지이며, 그러기에 이 작품은 종교 문학으로서의 보편성을 갖는다. 프랑스 북쪽 아르트와 지방의 한 촌락인 앙브리쿠르 본당을 휘감은 늦가을의 안개, 끝도 없이 내리는 가랑비에 갇힌 마을 모습은 권태와 타성에 젖어 탈 그리스도교 과정에 접어든 20세기 초반 서구의 보편적 풍경과 다름없다.
"지옥이란 더 이상 사랑하지 않게 되는 바로 그것입니다. 살아 있는 동안 우리는 환상을 가질 수도 있어서 우리 자신의 힘으로 사랑하느니 하느님 밖에서 사랑하느니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우리는 물속에 비친 달의 그림자를 향해 두 팔을 내미는 미치광이 격입니다."
신이 사라진 시대에 신을 믿는 자들의 믿음이란 때때로 정당화하기 힘들고 그들마저도 그것을 알기 때문에 신을 향해 가는 한 발 한 발이 고통스러운 것이다. 믿음이란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믿음을 지닌 자로서 살아가는 것 또한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거리에 네온사인 십자가가 늘어날수록 도시가 피폐해지고 황량해지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들은 신을 믿는다고 말만 할 뿐,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대로 살지는 않는다.
♣
이 젊은 신부는 자신의 본당(가톨릭교회의 행정구분의 제일 작은 단위) 마을에서 자신의 고독과 우울을 써나간다. 하지만 신을 믿는 자의 행동이란 이방인의 것이고 끊임없는 오해만을 불러일으킬 뿐이다. 하지만 그 오해 속에서도, 자신의 몸이 죽어가고 있는 속에서도, 자신의 싸움을 멈추지 않는다.
"권태, 그것은 일종의 먼지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이 먼지를 우리 모두는 오가면서 들이마시는데 하도 입자가 고운지라 이에 걸려도 바드득거리지 않는다. 그러나 1초라도 오가는 걸음을 멈추면 이 먼지는 얼굴과 양손을 포함해 우리를 완전히 덮어 버린다. 이런 재의 비를 털어 내려면 끊임없이 움직여야 한다. 그래서 세상은 마냥 설쳐대는 것이다."
베르나노스는 특히 반교권주의와 무신론이 번져 가던 당시 프랑스 정신계의 상흔을 날카로운 시각으로 작품 속에 담아냈다. 종교가 소설의 배경이나 배면이 되던 여타 소설들과는 달리, 베르나노스는 종교를 소설의 중심으로 잡았으며, 이를 통해 종교문학의 진경을 개척했다.
☞베르나노스(Georges Bernanos.1888.2.20∼1948.7.5) : 파리 출생으로 신비주의(神秘主義)ㆍ근대적 악마주의(惡魔主義)가 제기하는 문제를 날카로운 심리 분석과 강인한 사실력(寫實力)을 무기로 끊임없이 추구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남미(南美)로 도피해서 프랑스의 양심을 고취했다. 한적하고 목가적인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가톨릭과 왕당주의(王黨主義)의 전통적 교육을 받았으며 주로 발자크ㆍ졸라ㆍ도스토예프스키ㆍ레옹 블루아 등의 작품을 탐독했다.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자원입대했다. 종전 후 본격적으로 집필에 몰입하여 그의 첫 작품 <사탄의 태양 아래서>(1926)를 발표했고 이를 계기로 작가적 명성을 쌓아갔다. 1929년에 발표한 <환희>는 평론가와 독자들 모두에게서 큰 호응을 얻었고 그해 '페미나 문학상'을 수상했다. 1935년 이후 2년 간 경제적 상황의 악화로 스페인령 마주르카 섬으로 이주했고 이곳에서 그의 명성을 재확인케 하는 <어느 시골 신부의 일기>(1937)를 집필했다. 이즈음 스페인 내전이 발발하자, 프랑코 정권의 잔학하고 독재적인 행동을 격렬히 비난하는 <달빛 어린 공동묘지>(1938)를 출간하면서 정치평론가로서 날카로운 글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1937년에 파리로 일시 귀국했다가 당시 유럽을 휩쓸고 있던 파시즘과 정치적 야합 등에 환멸을 느끼고 다시 남미의 파라과이로 떠났다. 그 후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로 옮겨가 그의 마지막 소설인 <윈 씨>(1938)를 탈고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드골의 레지스탕스를 지지하는 논객으로 참여하여 나치스에 대항하여 자유 옹호를 외친 <로봇에 대결하는 프랑스>(1944)를 비롯한 다수의 정치평론서를 발표하는 등 활발한 정치 활동을 펼쳤다. 1945년 종전과 함께 파리로 돌아왔고 1948년 파리 근교에서 생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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