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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朋滿座

생활의 중심에서 적당한 거리를 두고 살아가는 『생활여행자』

by 언덕에서 2012. 10. 4.

 

 

생활의 중심에서 적당한 거리를 두고 살아가는 『생활여행자』

 

 

 

 

추석 연휴를 앞두고 서점에서 네댓 권의 책을 샀었다.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마종기 시집』, 존 러스킨의 『나중에 온 사람에게도』, 『멋지게 나이 드는 기술』 등등.  책 읽는 동안의 시간은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나만의 시간이다. 게 중에서 『여행생활자』 라는 책이 있었음을 이미 밝혔다. 『여행생활자』를 1/4 가량 읽으면서 이상함을 느꼈다. 아, 책이 재미가 없네...  퍼뜩 드는 생각이 있어 책장을 뒤져보니 금년 5월에 이미 구입하여 읽었던 책을 또 사서 읽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 아침에 집을 나설 때마다 나는 손에 휴대폰을 쥔 채 온 집안을 돌며 휴대폰을 찾던 적도 더러 있다.

 책장(冊欌)을 뒤지는 중에 금년 5월에 다른 책『생활여행자』란 책을 사서 줄을 그으면 읽었던 것도 알게 되었다. 항상 책을 읽은 후에는 독후감을 쓰듯 서평을 만드는데……. 세월 앞에서 장사(壯士)가 없다는 말이 이런 경우가 아닐까 한다.

 

 

 


 연휴가 끝나면 소개하겠다고 했던 『여행생활자』 포스팅은 블로그에 이미 올려진 상태였다. 그래서 오늘은 『생활여행자』란 책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 책은 유성용이 한 사람의 생활인으로서 그러나 일상을 여행할 수밖에 없었던 자신의 기록을 담은 책이다. 2008년 10월 출간되었다. 2007년 6월에 출간된 『여행생활자』가 생경한 공간을 빌어 자신이 겪어온 시간들을 거슬러 여행한 흔적이라면, 『생활여행자』는 일상 속의 시간들을 빌어 이미 떠나온 공간과 그 속에서 닿았던 사람들 사이를 여행한 기록이다.

 자신이 뭘 하는지도 모르는 채 시간을 보내고, 같은 일을 반복하고, 늙고, 죽어가는 이들로 가득한 세상의 시간들을 여행하며 저자는 경계를 아는 자만이 깨달을 수 있는 생의 비릿한 진실들을 보여준다. 그리하여 우리가 애써 잠재우고 있었던 아프고 슬픈 기억들, 심지어 자신이 경험한 감정의 특이함을 몰라 그저 ‘슬픈’줄로만 알았던 어떤 느낌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파고들어, 불편하지만 '살아있음을 확인하게 하는'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여행은 생활의 반작용이 아니라, 생활 속에 스며들어 있다”는 말을 실천하듯, 생활의 중심에서 적당한 거리를 두고 살고자 하는 그는 언제든 집을 나서면서 자신의 이름자가 박힌 문패를 보고 짧은 인사를 건넨다. 그러니까 마치 자신을 두고 여행을 떠나오는 기분으로 매일을 살아가는 사람이다.

『여행생활자』가 생경한 공간을 빌어 자신이 겪어온 시간들을 거슬러 여행한 흔적이라면,『생활여행자』는 일상 속의 시간들을 빌어 이미 떠나온 공간과 그 속에서 닿았던 사람들 사이를 여행한 기록이다. 여기 하나의 놀이가 있다. 모인 사람의 숫자보다 한 개가 모자란 의자들 주위를 아이들이 노래에 맞춰 빙빙 돌다가 노래가 멈추면 의자로 달려가 앉는 놀이다. 가장 느리고, 가장 덜 난폭하고, 어쩌면 가장 재수 없는 아이 한 명만이 홀로 남게 된다. 안착하지 못했다함은 이런 상태를 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를 둘러싼 나머지 것들은 시스템 속에서 착착 잘 굴러가는데, 오직 ‘나’만이 안주할 곳을 찾지 못한 상태. 유성용은 시종일관 세상이 굴러가는 법칙과는 아무 상관없다는 듯, 그에게는 원래부터 ‘집’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은 것처럼 무심하게 일상 속을 떠돌지만, 그를 통해 우리가 보게 되는 것은, 악착같이 의자를 누리려 했으나 결국 그 밖으로 밀려나고 마는, 혹은 요행히 의자를 차지했으나 다음 게임이 시작되기를 기다리며 끊임없이 불안해하는 우리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저자는 가난하게 산다는 것은 신세진 것 없이 충고를 들어야 하는 일이기에 ‘교양적인 충고’들 앞에서는 일단 딴청 부리는 기술이 필요함을 말하며 무리하게 세상과 싸우기보다는 우선 자신의 능력을 포기할 줄 알아야 한다는 실로 진지한 고백을 한다.

 그는 철원 평강고원에서 냉면을 먹으며 통일을 생각하고, 남당항에서 국화빵을 먹으며 “하루 살면, 하루 고통이지”라는 국화빵 장수의 말에 자신의 삶을 가늠해본다. Eva Cassidy의 「Autumn leaves」를 듣고 유서를 써달라는 기이한 청탁 전화에 자살에 관한 짤막한 유서와 가난한 몇몇 살림살이에 대한 소유 관계를 적어두기도 한다.

 그러나 그에게도 익살과 냉소로만으로 지울 수 없는 아득한 풍경이 있다. 이른바 생활여행자로 살아가는 그에게서 발견되는 ‘불편한 진실’이다. 그와 그의 아이들은 고수부지에서 연을 날리며 엄마를 기다리다, 벤치에 앉아 엄마가 출장길에 사온 귤을 먹는다. 그는 이혼을 한 걸로 보인다. 바람이 없는 날 연을 날리느라 아이들의 얼굴엔 땀이 흐르고 그러다 문득 이어지는 글은 오래된 노래 「메기의 추억」의 원문이다. “당신만을 사랑한다고 처음 고백했을 때 메기, 당신도 나만을 사랑한다고 말했지요.” 그의 눈에서는 눈물이 핑 돌았다고 썼다.

 한때 누군가를 사랑하여 그 부질없음을 경험한 이들이라면 안다. 시간은 흐르고 맹세는 소용없다는 것을. 특별한 사건이 없는 이 글의 행간을 이동하며 가슴이 저미어오는 것은, 이제는 당연하다는 듯 받아들이는 우리 생의 남루함 때문일 수도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놓아버리지 못하는 변치 않는 것들에 대한 미련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유성용은 우리가 애써 잠재우고 있었던 아프고 슬픈 기억들, 심지어 자신이 경험한 감정의 특이함을 몰라 그저 ‘슬픈’줄로만 알았던 어떤 느낌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쑤시고 파고들어 불편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그의 글을 읽고는 항상 좋았으니 나의 서평은 이 즈음에서 그치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