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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朋滿座

조선의 하류인생 이야기 『조선의 뒷골목 풍경』

by 언덕에서 2011. 2. 15.

 

조선의 하류인생 이야기 『조선의 뒷골목 풍경』 

 

한문학자 강명관(姜明官, 1958~ )의 역사교양서로 2003년 발간되었다. 이 책 『조선의 뒷골목 풍경』은 역사의 뒷골목에서 처박혀 있던 <하류인생>들에 관한 한문학자의 구체적이고 노골적인 이야기다. 역사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왕과 양반처럼 고귀한 사람들 아니면, 홍경래나 임꺽정처럼 무언가 큰 사고를 낸 사람들뿐이라는 것이 저자의 의견이다. 그렇지 않으면 역사는 기억하지 않는다. 장구한 시간 우리 역사를 만들어간 대다수의 상놈, 종놈, 새끈한(?) 여성의 목소리는 누가 들어준단 말인가. 역사라는 거대하고 엄숙한 담론에 가려진 잊혀진 사람들의 삶, 그들 삶의 리얼리티는 이런 작고 시시한 이야기들 속에 담겨 있다. 저자는 존재했으되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역사, 너무 일상적이고 사소해서 묻혀버린 역사, 지배 중심의 역사에 의해 철저히 무시당한 서민들의 삶과 문화를 생생하게 되살리고 있다.

 예를 들어 조선조 초기 남녀상열지사로 세상을 시끄럽게 했던 세종 때의 ‘유감동’ 사건과 성종 때의 ‘어우동’ 사건이 그것이다. 그녀들은 바람을 피웠다는 죄로 사형에 처해지나 그녀들과 상대했던 무수한 사내들은 가벼운 경범죄 처벌만 받고 일상으로 복귀했다.  남성위주의 이기적인 역사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영화 '어우동'의 한  장면>

 

 민중을 위해 봉사했던 참된 의사 민중의 조광일, 백광현, 피재길. 백범의 탈옥공작 벌인 불한당의 괴수 김 진사, 최고의 대리시험 전문가 류광억, 반촌 사람 교화에 나선 안광수, 최고의 판소리꾼 모흥갑, 유흥계 누빈 거문고의 명인 이원영, 조직폭력배 검계를 일망타진한 포도대장 장중익, 검계의 일원이었던 집주름(부동산 중개업자) 표철주... 이 책을 통해 이름 석자와 함께 자신들의 삶을 세상에 알린 이들이다. 

 금사 이원영의 전을 쓴 김윤식은 이렇게 말했다.

 "노인께서는 이제 늙으셨습니다. 세상에 다시 이름을 떨칠 수가 없으니, 내가 노인장을 위해 글을 써서 영원히 전해지게 해보지요."

 하지만 하찮은 일개 금사의 한평생이 영원히 전해질 수 있을까? 이 책의 저자가 그 글을 보고 이렇게 전하고 있으니 김윤식의 의도가 과히 어긋나지는 않은 셈이라 해야 할까?

 

한문학자 강명관( 姜明官, 1958~ )

 

 이 책에 인용된 자료들은 조선시대 개인 문집을 비롯하여 <백범일지> <조선왕조실록>까지 매우 광범위하다. 저자는 하나의 주제를 꼬투리 삼아 그와 관련된 자료들을 광범하게 섭렵하며 궁금증을 풀어나간다. 그 과정에서 옛날의 기록들은 생생한 현장보고서로 다시 태어난다. 역사서나 국문학 관계 서적 속에서 두꺼운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을 법한 자료들과 기록들도 당시 사회상을 보여주는 생생한 자료로 거듭난다. 스스로의 궁금증 때문에 이 '한심한(?)' 주제들과 관련된 자료들을 갈무리해 둔 저자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 책은 상투 틀고 도포 잎은 조선시대 사람들 또한 현대인들처럼 부동산 투기니 원조교제니 사채놀이니 등을 일삼는 지극히 평범한 무뢰배들이었다는 상식 아닌 상식을 일러준다.

 『조선의 뒷골목 풍경』은 『조선 사람들, 혜원의 그림 밖으로 걸어나오다』를 통해 “꼼꼼한 고증을 바탕으로 풍속사의 새로운 전형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은 바 있는 강명관 교수의 ‘조선풍속기행’ 두 번째 이야기다. 전작이 ‘혜원의 그림’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조선시대 사람들의 인간적인 면모를 고증했다면, 『조선의 뒷골목 풍경』은 도박꾼, 탕자, 폭력조직, 벼락출세한 졸부, 도적 등의 조선의 뒷골목을 누빈 무명씨들의 떠들썩한 일상을 통해 조선시대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려낸다.

<이 책에는 기둥서방, 깡패, 도박 꾼들이 수없이 등장한다>

 

 

“나는 이런 방면의 시시한 주제는 누구나 다 아는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쑥스러워 물어볼 수가 없었다. 뭔가 거창하고 큰 이야기를 논하는 근엄한 역사가들에게 깡패며 기생이며 도박 술집 따위에 대해 물어볼 엄두가 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얼마 전부터 쑥스러움을 무릅쓰고 이곳 저곳에 물어보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어인 일인가. 뜻밖에도 내가 묻는 한심한 주제에 대해 아는 분들이 별로 없었다. 목마른 자 우물을 판다고 했다. 나는 스스로의 궁금증 때문에 문헌을 보다가 필요한 자료가 있으면 눈여겨보고 챙겨두곤 하였다. 지난해 병으로 얻은 휴가 아닌 휴가에 한 편의 글이 될 만한 것들을 수습하여 엮은 결과가 이 책이다.”

 저자의 시시하고 자질구레한 것들에 대한 이 같은 애정 어린 호기심은 누구도 관심 갖지 않았던 조선시대의 뒷골목 혹은 거대담론에 가려진 일상의 리얼리티에 대한 놀랍도록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한다.

 술과 도박에 쩔어 살던 탕자, 요즘이나 조선시대 당시나 제일 못난 사내임이 분명한 유흥가의 기둥서방 짓을 하던 왈자, 보란 듯이 제대로 살 줄 모르는 것은 이제나 저제나 매한가지인 투전판의 도박꾼 등 어디 감히 책에 제 목소리를 내랴 싶었던 비주류 인생들이 이 책에서는 너도 나도 주인공 역할로 등장한다.

 반면에 근엄과 엄숙으로 헛기침하던 양반과 주류사회에 대한 칼대기는 냉정하기 그지없다. 가짜들에 대한 허상은 낱낱이 파헤쳐지고,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은 부조리와 위선은 아찔할 만큼 거하게 드러난다. 그 과정에서 길게는 500년 전, 짧게는 100년 전 민초들의 삶이 역사라는 허울 좋은 미명을 걷어내고 오늘의 현실을 다시 짚어보는 반성의 무대로 걸어 나오는 것이다. 이 책의 목차는 아래와 같다.

 

1. 수만 백성 살린 이름없는 명의들/민중의

2. 모이면 도적이 되고 흩어지면 백성이 된다/군도와 땡추

3. 투전 노름에 날새는 줄 몰랐다/도박

4. 마셨다 하면 취하고, 취했다 하면 술주정/금주령과 술집

5. 타락과 부정으로 얼룩진 양반들의 잔치/과거

6. 누가 이 여인들에게 돌을 던지는가/감동과 어우동

7. 서울의 게토, 도살면허 독점한 치외법권 지대/반촌

8. 조용한 아침의 나라를 뒤흔든 무뢰배들/검계와 왈자

9. 조선 후기 유행 주도한 오렌지족/별감

10. 은요강에 소변 보고 최음제 춘화 가득하니/탕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