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수필 100편 감상

정미소 풍경 / 구활

by 언덕에서 2011. 4. 5.

 

 

정미소 풍경

 

                                                                     구활 (1942 ~ ) 

 

 

 

 

 

 

폐허의 성처럼 버티고 서 있는 낡은 정미소. 유령이 나올 것만 같은 정미소 앞을 지나칠 때면 마음 한구석이 찡해 온다. 헛간을 덮고 있던 지붕 한쪽은 날아가 비바람이 그냥 들어오고, 다른 한쪽 지붕은 임시방편으로 색깔 다른 함석으로 덧땜질해 두었지만 미풍에도 소리를 내는 박자가 제멋대로인 타악기로 변한지 오래다.

 두고 떠나온 고향이 못내 그리워 시골 여행을 할 때마다 정미소 풍경이 눈에 들어오면 차를 세워 이곳저곳을 살펴보지만 윙윙거리며 돌아가는 생동감 있는 기계음은 들리지 않는다. 낱알을 주워 먹던 참새 떼도, 나락 가마니 속을 들락거리던 쥐들도 더 이상 먹을 게 없어 이사를 갔는지 사위(四圍)는 적요롭기 그지없다.

 그래도 햇볕만은 떨어져 나간 천장의 빈 공간을 타고 들어와 그늘이 범접할 수 없는 사각의 성을 이뤄 조을 듯 놀고 있다. 몇 마리의 거미가 떠나 버린 주인으로부터 사글세라도 얻었는지 여기저기에 그물을 쳐놓고 쌀겨 속에서 깨어나는 나방이 걸리기를 기다리지만 그 세월 또한 지루하기 짝이 없다.

 싣고 간 나락이 쌀이 되어 나올 때까지 지루하게 기다리던 기억이 너무나 선명한 정미소 앞마당은 생기라곤 전혀 없는 마른 풀들만 어지럽다. 콜타르 칠한 송판때기에 가위 그림을 곁들인 '소변 금지'란 팻말은 빛바랜 잉크 글씨처럼 희미하다. 모두 흘러간 세월 탓이다. 반쯤 쏟아진 기름병, 삭은 고무호스, 넘어져 뒹굴고 있는 드럼통, 빗물이 고여 있는 리어카 타이어, 녹슨 캐비닛과 수화기가 날아간 자석식 전화기 등은 고향을 잃어버린 빈 가슴에 그리움이 되어 다시 안긴다.

 그리움이 사무치면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법, 다시 한 바퀴 돌아본다. 먼 데서 보면 지붕의 녹슨 함석은 뻘건 페인트칠한 것같이 보기에는 멀쩡한데 뚫린 구멍 사이로 햇빛이 별이 되어 쏟아진다. 연극 무대의 조명발 같은 그 빛 때문에 눈이 부시다. 그리운 사람이 그리운 만큼 눈이 부시다. 황토를 바른 흙벽은 속살이 떨어져 얼기설기 나무 꼬챙이들이 장기판 같고, 쇠사슬로 감아 큰 자물쇠를 채웠던 대문은 돌쩌귀가 빠져 더 이상 문이 아니다. 동네 개들도 오줌을 질금거리면 서서 들어간다.

 이런 풍경은 추억을 건져 올리는 두레박이다. 아무리 퍼내도 마르지 않는 우물 속의 양철 두레박. 그래서 나는 이런 풍경을 사랑한다. 폐허의 성에는 성주가 없다. 성을 지키는 병사도 없다. 교대 시간을 알리는 나팔 소리도 없다. 나는 개의치 않는다. 낡은 정미소 앞에 서면 나도 모르는 새 과거로 옛날로 달리는 고물 트럭을 타고 고향 마을에 빨리 내리고 싶어 안달하는 귀향객이 된다.

 고향 사람들은 다리 옆 정미소를 '서태근 방앗간'이라 불렀다. 그러나 어머니는 '현자네 집'이라고 불렀다. 그 말뜻 속엔 다분히 친근과 존경이 서려 있었다. 그 방앗간은 대한청년단 고향 마을 책임자였던 서씨가 빨갱이들에게 처형당해 시신마저 불태워진 후 미망인인 현자 엄마가 딸 다섯을 데리고 힘겹게 정미소를 돌리고 있었다. 현자 엄마는 어린 눈으로 봐도 얼굴엔 품위가, 말씀과 몸가짐에는 항상 고상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어머니에게 있어서 현자네 집은 단순한 정미소가 아니었다. 우리 다섯 남매의 월사금을 빌리는 최후의 보루였다. 당시 어머니는 가난에서 하루 빨리 탈출하는 방법은 자녀들을 교육시켜 초등학교 교사로 만드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하신 모양이다. 어머니는 나보다 열 살 위인 큰 누님부터 둘째, 셋째 누님까지 사범학교에 넣어 스무 살이 되기 전에 모두 초등학교 선생님을 만들었다.

 어머니의 판단은 너무나 정확했다. 그러나 논 몇 마지기뿐인 우리집 형편으론 월사금이 항상 문제였다. 이웃, 일가친척, 금융조합 등에서 빌릴 수 있는 한도를 초과하면 현자네 집으로 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그 정미소는 방앗간이 아니라 마이너스 통장으로 현금을 인출하는 마을금고였던 셈이다.

 현자네 집에 다녀오는 날은 어머니 얼굴이 항상 밝았다. 카드깡이 아닌 가을 농사를 담보로 빌려 온 현금이지만 다섯 아이들이 선생님에게 더 이상 졸리지 않게 되었으니 그게 좋으신 모양이었다. 한번은 현자네 집에 다녀오신 어머니가 크게 상심하여 혼자 우셨다. 알고 보니 맏딸인 현자 누님이 수녀원으로 들어간 후 그렇지 않아도 적적하던 참인데 현희라는 둘째가 농약 묻은 사과를 먹고 손쓸 겨를도 없이 숨졌다는 것이다. 어머니가 울길래 나도 따라 울었다. 혹시 월사금 빌릴 길이 막혀 학교에 영영 가지 못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우선 그게 걱정이었다. 그래서 더 서럽게 울었다.

 상처는 사람의 손으로 어루만지면 빨리 치유된다고 한다. 그러나 고향을 그리워할 때마다 가슴이 아려오는 나의 상처는 덧나기만 할 뿐 나을 가망이 전혀 없다. 내 상처의 깊이도 모르면서 다른 목적지로 빨리 떠났으면 하고 은근하게 바라는 아내만 아니라면 이 정미소 앞마당의 마른 풀 위에 엎디어 소리 내어 울고 싶다. 동구 밖 길가에 내팽개치듯 버려져 있는 낡은 정미소. 각설이타령같이 누더기로 해진 정미소 풍경 한 조각이 두고 떠나온 고향을 이토록 그립게 할 줄이야.

 

 


 

 

구활. 수필가. 경북대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언론계에 입문하여 매일신문 문화부장과 논설위원을 지냈다. 1999년 제 17회 현대수필문학상, 2002년 제 20회 대구문학상, 2003년 제 17회 금복문화예술상 등을 수상했다. 수필집에 <그리운 날의 추억제><아름다운 사람들><시간이 머문 풍경><<고향집 앞에서> 등이 있으며, 매일신문에 <구활의 스케치 기행>을 100회 연재하기도 했다. 

'수필 100편 감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버지의 추억 / 은희경  (0) 2011.04.14
백주(白晝)에 소를 타고 / 변영로  (0) 2011.04.07
작품애 / 이태준  (0) 2011.03.31
묵언의 바다 / 곽재구  (0) 2011.03.29
겨울 나무 / 황동규  (0) 2011.0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