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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를 읽다

수수께끼 / 허수경

by 언덕에서 2009. 11. 13.

 

수수께끼 

                                                                     허수경

 

 

극장을 나와 우리는 밥집으로 갔네

고개를 숙이고 메이는 목으로 밥을 넘겼네

밥집을 나와 우리는 걸었네

서점은 다 문을 닫았고 맥줏집은 사람들로 가득해서 들어갈 수 없었네

 

안녕, 이제 우리 헤어져

바람처럼 그렇게 없어지자

먼 곳에서 누군가가 북극곰을 도살하고 있는 것 같아.

 

차비 있어?

차비는 없었지

이별 있어?

이별만 있었지

 

나는 그 후로 우리 가운데 하나를 다시 만나지 못했네

사랑했던 순간들의 영화와 밥은 기억나는데

그 얼굴은 봄 무우순이 잊어버린 눈물처럼

기억나지 않았네

 

얼음의 벽 속으로 들어와 기억이 집을 짓기 전에 얼른 지워버렸지

뒷모습이 기억나면 얼른 눈 위로 떨어지던 빛처럼 잠을 청했지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당신이 만년 동안 내 얼굴에 흐르는 눈물을 들여다보고 있었네

내가 만년 동안 당신 얼굴에 흐르는 눈물을 붙들고 있었네

먼 여행 도중에 죽을 수도 있을 거야

나와 당신은 어린 꽃을 단 눈먼 동백처럼 중얼거렸네

 

노점에 나와 있던 강아지들이 낑낑거리는 세월이었네

폐지를 팔던 노인이 리어카를 끌고 지하도를 건너가고 있는 세월이었네

왜 그때 헤어졌지, 라고 우리는 만년 동안 물었던 것 같네

아직 실감나지 않는 이별이었으나

이별은 이미 만년 전이었어

 

그때마다 별을 생각했네

그때마다 아침에 나가서 돌아오지 않았던

다리 밑에 사는 거지를 생각했네

수수께끼였어,

당신이라는 수수께끼, 그 살[肉] 밑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잊혀진 대륙들은

회빛 산맥을 어린 안개처럼 안고 잠을 잤을까?

 

-<현대문학> 2009년 3월호

 

 

 

 

 

 

 

 

 

 

 

 

허수경 시인(1964 ~ )은 경남 진주 출생이다. 경상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했다. 1987년《실천문학》으로 등단했으며 시집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 <혼자 가는 먼 집>, <내 영혼은 오래되었으나>, <청동의 시간 감자의 시간> 등이 있다. 현재 독일에 거주하며 뮌스터 대학에서 고대동방고고학을 공부중이다.

 

 젊은이들은 나 같은 중년층을 보면 궁금해 할 것이다. 저런 사람들도 연애를 해보았을까 라고. 답은 아주 간단하다. 지나간 시절 눈물 없는 연애를 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으랴. 삼십대 초반의 5월의 푸른 초록이 눈부신 오전이었다. 용인시에 위치한 회사 연수원에서 일주일 동안의 일정으로 교육을 받고 있었다. 오십대 후반의 남루한 옷차림의 노신사가 강사로 초빙되어 강의를 하기 시작했다. 이름을 대면 다 알만 한 분. 가나안 농군학교의 교장선생님이었다.

 

 "여러분, 내가 나이가 많이 먹어 보이지?"

 그 질문에 모두들 아이처럼 해맑게 웃으며 "예!"하고 대답했다.

 "해마다 봄이 되면 햇복숭아가 열려요. 여러분도 서른 개 정도만 먹어봐, 나처럼 되니까."

 

 돌아보면, 우리 인생의 지나온 뒤 페이지의 기억 속에는 숨어있고 말 못하는 사랑들이 빛바랜 일기장처럼 남아있을 것이다. 가슴 아릿하게 저민 사랑을 유적(流謫)인 듯 남몰래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이 시를 읽으면서 줄곧 그런 생각을 했다. 이런 시를 쓸 정도인 선연한 기억이라면 얼마나 마음이 아팠겠는가. 프랑스 시인 폴 랭보가 이야기했다. '상처 없는 영혼이 어디 있으랴'라고. 젊은 시절의 사랑은 가슴 찢어질 듯 고통스럽게 만들지만, 깊은 몸살을 앓고 난 다음날의 어지러움처럼 고통이 상당기간 가지만 아주 많은 시간이 흐르면 자신이 무척 성숙해져 있음을 느끼게 만든다.

 앞에 이야기했던 햇복숭아를 십수 개를 먹어야 하는 것이다. 인생을 살다보면 만나서 그 순간 행복했으나 수수께끼처럼 어긋나야 할 사람들이 있었던 것 같다. 빗나간 인연으로 새겨지는 일인 것이다. 우리가 사는 일이란 서로가 인연이거나 인연이 아니거나 ……. 그것도 아니면 다만 그저 스쳐 지나가는 것이 아닌가 자문(自問)을 해본다. 사이가 뜸하게 되고 먼저 연락을 몇 번 해도 연결이 되지 않으면 영원히 만나지 못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불혹(不惑)을 지나고 지천명(知天命)하고 이순(耳順)해지면 모든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의 생이란 옷깃이 한번 스칠 때마다 그 인연에 의해 우리가 서로를 들고나며 그 인연을 건너가는 다리와 같은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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