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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를 읽다

진달래 / 이영도

by 언덕에서 2009. 8. 31.

 

 

 

 

 

진달래

 

                                                                                                       이영도

 

눈이 부시네 저기

난만히 멧등마다,

그 날 스러져 간

젊음 같은 꽃사태가,

맺혔던 한이 터지듯

여울여울 붉었네.

 

그렇듯 너희는 지고

욕처럼 남은 목숨,

지친 가슴 위엔

하늘이 무거운데,

연연히 꿈도 설워라,

물이 드는 이 산하(山河).

 

 

- 시조집 <석류> (1968 이호우와 공동시집)

 

 

 


중학교 3학년인 딸아이의 국어책을 우연히 볼 기회가 있었다. 이영도 시인(1916~1976)의 '진달래'가 실려 있어서 감회가 깊었다. 이 시는 우리나라 민주화 운동의 큰 획을 그은 시점이자 시발점이라고도 할 수 있는 4.19 때 꽃다운 젊음을 바쳐 민주화를 위해 산화(散花)한 젊은이들을 기리는 노래로 기억된다.

 이 시를 읽자니 시인의 시에 곡을 부친 노래가 하나 생각날 법도 하다. 산에 들에 점점이 붉은 빛을 태우며 곳곳에 피어있는 진달래의 모습을 젊은 학생들의 넋으로 비유한 이 진달래라는 노래는 이영도 시인의 4.19 추도시의 노랫말에 한태근 목사가 곡을 붙인 노래이다. 한태근 목사는 <꼬부랑 할머니>라는 동요를 작곡하신 분이고 또 수많은 찬송가를 작곡하신 분으로도 유명하다.

 대학생 시절, 이 노래는 진달래를 찬양한 노래이다…… 그러니까 이것은 북한의 국화(國花)인 <진달래>를 찬양한 노래니까 사상이 의심스럽고 이적혐의가 있는 게 아니냐는 풍문이 돌았던 웃지 못 할 사회적 분위기가 있었다. 작고한 이영도 시인이 그 말을 들었으면 무덤에서라도 뛰쳐나올 지경이었겠지만 아무튼 괜히 이 노래를 부르면 무슨 꼬투리를 잡힐까 두려웠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 세월은 흘러 이 시가 중학교 국어책에 실리게 됐으니 '상전벽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을까. 당시 젊은이들이 그렇게 목숨을 걸고 기원하던 민주화의 시대가 오고 통일을 향한 토대가 조금씩 마련 되가는 것 같긴 하지만 4.19 세대들이 그렇게 퇴색해갔듯이 오늘날 4.19 정신은 많이 퇴색된 것이 아닌가 하는 염려가 생긴다. 오늘날의 젊은이들의 가슴 속에는 이 노래가 또 어떻게 각인되고 있을까 하는 궁금스런 생각도 든다. 우리가 젊은 시절 학생들 사이에 구전되던 이 노래는 1994년 <노래를 찾는 사람들 4집>에서 이정석의 편곡과 김은희의 노래로 취입되어 음반으로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이 시조는 산에 난만히 피어있는 진달래로부터 4.19 혁명 때 희생당한 젊은이들의 넋을 떠올리며 그들에 대한 추모와 자기 회한의 심경을 읊은 작품이다. 두 수가 한 편인 연시조로서 구별. 배행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첫째 수에서는 화자가 진달래에서 발견한 바를 제시하고, 둘째 수에서는 첫째 수와 연결하여 자신의 심리상태를 담담하게 표현하였다. 또한, 이 시의 제재인 '진달래'를 통해 그것이 담고 있는 전통적인 정서와 현실의 상징적인 의미를 적절하게 결합하고 있다. '사랑과 이별의 한'이라는 정서를 표현하는 것으로 인식되어 온 진달래꽃을 4.19 혁명에 참여한 학생들의 피 흘림에 대한 슬픔의 정서를 새롭게 형상화함으로써 창조적 상징의 효과를 만들어 낸 주옥같은 시이다.

 황진이 이후 최고의 여류시인이라는 칭송을 받았던 시조시인 이영도는 같은 시조 시인 이호우(李鎬雨.1970년 작고)의 누이동생으로서 20대 초반 결혼하여 딸을 하나 얻은 후 남편과 사별했다. 그러다가 한때 유명 시인 유치환과의 플라토닉 러브를 펼치기도 했다. 그런데 유치환이 뜻하지 않은 죽음(1967년)을 맞이하면서 영원한 이별을 하게 되자 이영도 시인은 그로부터 받은 여러 통의 편지를 묶어 <사랑하였으므로 행복하였네라>는 서간집을 펴냄으로써 세상에 둘 사이의 순수한 교류를 공개하게 된다. 이 책은 유치환 명의로 발행되었다.당시 이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 책에 대한 이야기는 유치환 시인의 시를 소개할 기회에 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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