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도(孝道)에
마광수(1951 ~ 2017)
어머니, 전 효도라는 말이 싫어요
제가 태어나고 싶어서 나왔나요? 어머니가
저를 낳으시고 싶어서 낳으셨나요?
또 기르시고 싶어서 기르셨나요?
`낳아주신 은혜' `길러주신 은혜'
이런 이야기를 전 듣고 싶지 않아요.
어머니와 전 어쩌다가 만나게 된 거지요.
그저 무슨 인연으로, 이상한 관계에서
우린 함께 살게 된 거지요. 이건
제가 어머니를 싫어한다는 말이 아니예요.
제 생을 저주하여 당신에게 핑계대겠다는 말이 아니예요.
전 재미있게도, 또 슬프게도 살 수 있어요
다만 제 스스로의 운명으로 하여, 제 목숨 때문으로 하여
전 죽을 수도, 살 수도 있어요.
전 당신에게 빚은 없어요 은혜도 없어요.
우린 서로가 어쩌다 얽혀 들어간 사이일 뿐,
한쪽이 한쪽을 얽은 건 아니니까요.
아, 어머니, 섭섭히 생각하지 말아주세요.
`난 널 기르느라 이렇게 늙었다, 고생했다'
이런 말씀일랑 말아주세요.
어차피 저도 또 늙어 자식을 낳아
서로가 서로에 얽혀 살아가게 마련일테니까요
그러나 어머니, 전 어머니를 사랑해요.
모든 동정으로, 연민으로
이 세상 모든 살아가는 생명들에 대한 애정으로
진정 어머닐 사랑해요, 사랑해요.
어차피 우린
참 야릇한 인연으로 만났잖아요?
- 시집 <가자, 장미여관으로> (자유문학사 1989)
시인ㆍ소설가. 서울 출생. 1968년 대광고등학교 졸업, 1972년 연세대 국문과, 1974년 동대학원 졸업. 1983년 문학박사(연세대학교). 1977년 [현대문학]에 <배꼽에>, <망나니의 노래>, <고구려>, <당세풍의 결혼>, <겁>, <장자사> 등 여섯 편의 시가 박두진 시인에 의해 추천되어 문단에 데뷔. 1989년 [문학사상]에 장편소설 <권태>를 연재하면서 소설가로도 등단. 홍익대 국어교육과 교수를 거쳐 연세대 국문과 교수. 이상은 마광수 시인(1951 ~ )의 주된 이력이다.
주된 이력 외에 추가적으로 보태지는 '구속', '수감', 항소심' 등이 말이 등장하는 다른 이력은, 마치 무슨 민주화 운동가의 이력을 보는 듯할 만큼 극적이다. 그는 화제를 몰고 다니는 저자 중의 하나이다. 위의 긴 약력이 보여주는 것은 마광수의 글들이 얼마나 큰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으며 동시에 얼마나 많은 관심을 모았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마광수가 정작 자신은 자신을 '무슨 운동가'로 규정하지 않는다는데 있다. 물론 마광수가 자신을 규정하는 사회적 주류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소설가 이문열은 마광수의 소설 <즐거운 사라>를 읽고서, "마광수의 보잘 것 없는 상품이 쓰고 있는 낯 두꺼운 지성과 문화의 탈"과 "이미 자신의 생산에서 교육적인 효과는 포기한 듯함에도 불구하고 대학교수라는 신분을 애써 유지하는 점"을 못마땅하게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나 마광수의 논리는 아주 단순하다. 자신은 자신의 하고 싶은 말, 옳다고 생각한 말을 했을 뿐이고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한 자신은 처벌받을 일을 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마광수는 무슨무슨 운동과는 거리가 먼 전형적인 자유주의자로서의 면모를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광수의 글과 생각은 그것이 발표될 때마다 사회적인 거부감과 동시에 일종의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그 성격은 이문열이 일으키는 파장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이문열의 파장은 보수주의자로서의 '문화권력'에 기인한다면 마광수는 '전형적인 자유주의자'로서의 소극적 자기표현에 불과하다는 점이 차이점이다.
그것은 마광수의 생각이 가지는 일종의 '솔직함'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마광수는 자신의 사회적 지위나 체면에 관계없이 과감하게 발언한다. 이것의 그가 대중에게 호소력을 발휘하는 부분이기도 하고, 동시에는 많은 사람들에게서는 혹독한 지탄을 받는 부분이기도 하다. 많은 작가들이 자신의 글로 인해서 옥고를 겪거나 고통을 받았지만 마광수는 유난히 많은 문제를 겪었다. 재직하던 학교에서 해직되어서 시간 강사로 일하기도 했으며 재판정에 나가야만 하기도 했다. 박노해가 진보주의자라면 이문열은 보수주의자이다. 그리고 마광수는 자유주의자이다.
그러나 그러한 사상적인 분류와는 관계없이 마광수가 이름을 알린 것은 분명히 성에 대한 자유분방한 상상력과 거침없는 발언들 때문이다. 그의 불행의 시발점은 대한민국 사회에서 너무 앞서 나간 자유분방함을 가진 점이 아닐까 한다. 대개 음습한 곳에서만 이야기되던 개인의 성적 취향을 사회의 토론장으로 끌어들였다는 것이 마광수에 대한 비판의 주된 근거들이었기 때문이다. 최근에 들어서 마광수는 자신만의 주제와 글쓰기 스타일에 머무르는 경향을 보이고 있지만 그것은 주요한 논제가 아닐 것이다. 마광수는 아직도 자신의 생각을 수정할 생각이 없으며, 동시에 한국 사회 또한 마광수에 대한 비판을 멈출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위의 시는 과다한 성적 묘사로 지탄을 받았던 문제의 서적 <가자, 장미여관으로>에 실려 있는 시로써, 성이 소재가 되지 않은 몇 개의 시중의 하나이다. 이 시에서도 자유주의자의 모습이 여과 없이 드러난다.
위 시의 내용을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 어머니는 효도라는 명목으로 자식을 속박하지 말아 달라. 인간의 태어남에는 선택의 자유가 없었다. 운명적인 게 아니냐. 나도 자식에게 효도를 강요하지 않겠다. 그렇지만 어머니를 사랑한다. 그것도 효도의 의무로서가 아니고 동정과 연민으로 사랑한다. 우리는 야릇한 인연으로 만났지 않느냐.'
전형적인 후레자식의 불효스런 상소리로 치부할 수 있었던 내용이 끝부분의 2연에서 반전을 일으킨다. 자유주의자로서 제도와 관습의 틀에 속박 받고 싶지 않지만 '모든 살아가는 생명들에 대한 애정으로' 어머니와 자식관계를 다시 살펴보겠다는 이야기이다. 썩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존중해주고 싶은 생각을 시를 잘 옮긴 수작이라고 할 것이다.
끝으로 사적인 이야기를 하나 보태고자 한다. 직장 후배 중에서 Y대 영문과를 나온 친구가 있었다. 교양과목으로 마광수 교수의 수업을 들었던 적이 있다고 했다. 수업을 진행하는 분위기라던 지 학생들에게 전달하는 교수로서의 철학 같은 것이 궁금했다. 후배는 '핫하' 웃으며 대답했다.
"다른 특별한 기억보다는……. 시험지에 답안을 적을 때 성적인 표현을 노골적으로 곁들여서 저 나름대로 '아주 야하게' 작성을 했어요. 그래서 그런지 학점이 A플러스가 나오더라고요."
하하, 인간의 본질상 취향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시(詩)를 읽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장만옥 / 박정대 (0) | 2009.08.08 |
---|---|
엄마야 누나야 / 김소월 (0) | 2009.08.07 |
인생아 / 박찬 (0) | 2009.08.05 |
정님이 / 이시영 (0) | 2009.08.04 |
마지막 섹스의 추억 / 최영미 (0) | 2009.08.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