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추기경 김수환(金壽煥.1922.5.8∼ 2009. 2. 16) )
제12대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추기경. 1922년 대구에서 독실한 가톨릭 집안의 막내로 출생하여 1941년 서울 동성상업학교를 졸업하였다. 같은 해 도쿄 조치대학(上智大學) 철학과에 입학하였으나 제2차세계대전으로 1944년에 귀국하였다. 1951년 가톨릭대학(전 서울 성신대학) 철학과를 졸업하고, 1964년 독일 뮌스터대학에서 신학사회학을 연구하였으며, 1974년 서강대학에서 명예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51년 사제 서품을 받고 대구 대교구 안동천주교회 주임신부가 되었으며, 1955년 대구 대교구 김천시 황금동 천주교회 주임신부 겸 김천시 성의중고등학교장을 지냈다. 1964년 주간 가톨릭시보 사장, 1966년 마산 교구가 설정됨과 동시에 마산교구장으로 임명되었으며, 5월 29일 주교가 되었다.
1968년 5월 29일 제12대 서울 대교구장으로 승품되어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교회 쇄신의 기류 속에서 노기남(盧基南) 대주교의 뒤를 이었다.
서울대교구장취임의 자리에서 그는 "교회의 높은 담을 헐고 사회 속에 교회를 심어야 한다"라고 말함으로써 교회쇄신과 현실참여의 원칙을 분명히 했다. 또한 교회는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위해 종교적인 양심으로 그들의 입장을 대변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으며, 교회는 정치적·사회적인 권력보다 인간 존엄성의 가치를 근본적인 신념으로 삼아 사회와 인류 안에서 빛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종교적 현실 참여를 강조했다. 따라서 교회는 절대로 불의와 부정과 타협하는 교회 공동체가 아닌 인간 모두가 순수한 양심에 따라 내면의 회심으로써 사회정의를 실현해야 할 것을 주장했다. 이러한 그의 입장은 과도기의 혼란한 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즉 물질만능주의의 현대 사회를 염려하여 모든 사람들이 마음을 비워 서로 밥이 되어주는 길이 인간회복의 길이며 민주화의 길임을 호소하여 사회인사들을 각성시켰고 소외계층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었다. 또한 아시아 주교회의와 세계 주교회의에 참석하여 세계 속에 한국의 위상을 정립하여 국위선양에 이바지했다.
1969년 4월 25일 교황 요한 바오로 6세에 의해 당시 전세계 추기경 가운데 최연소 추기경ㆍ우리나라 최초의 추기경이 되었다. 1970년~75년까지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으로 1차 부임했다. 1970년에서 3년간 아시아 천주교 주교회의 구성 준비위원장으로 재임했고, 1981~87년까지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으로 2차 부임했다.
1984년 5월 6일에는 100만 신도가 운집하고 교황 요한네스 파울루스 2세가 집전한 가운데 한국천주교200주년기념성회를 개최, 세계 최초로 교황청 밖의 시성식을 열어 한국의 순교자 103위를 성인의 반열에 올렸으며, 1989년 10월 9일에는 교황과 세계의 가톨릭 지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그리스도 우리의 평화'라는 주제로 가톨릭의 올림픽이라 불리는 세계적 행사인 제44차 세계성체대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는 또한 헌혈, 안구·장기(臟器) 등의 기증으로 인간의 생명을 존중하는 근본적인 나눔의 실천운동을 전개했으며, 이 운동은 지속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그는 국가의 민주화와 민족의 발전을 위해 많은 사목교서를 발표했다. 1998년에 서울대교구장에서 은퇴하였다.
1974년 2월 서강대학교에서 명예문학박사, 1977년 5월 미국 노틀담대학교에서 명예법학박사, 1988년 11월 일본 조치대학교에서 명예신학박사, 1990년 5월 고려대학교에서 명예철학박사, 1990년 10월 미국 시튼홀대학교에서 명예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국민훈장 무궁화장, 광고대상 모델 특별상, 심산상(성균관대), 인제인성대상, 독일 대십자공로훈장, 칠레 베르나르도 오히긴스 십자훈장 수상.
【학력】
1941년 동성상업학교졸
1951년 서울가톨릭대 신학부졸
1963년 독일 뮌스터대 대학원 사회학 전공
1974년 명예 문학박사(서강대)
1977년 명예 법학박사(미국 노틀담대)
1988년 명예 신학박사(일본 上智大)
1990년 명예 철학박사(고려대)
1990년 명예 법학박사(미국 시튼홀대)
1994년 명예 신학박사(연세대) 95년 명예 철학박사(대만 Fu Jen가톨릭대)
1997년 명예 인문학박사(필리핀 Ateneo대)
1999년 명예 철학박사(서울대)
【경력】
1951년 사제서품
1951년 안동천주교회 주임신부
1953년 대구대주교 비서신부
1955년 김천시 황금동천주교회 주임신부 겸 성의중․고 교장(∼1956)
1964년 주간 [가톨릭시보] 사장
1966년 천주교 주교ㆍ마산교구장
1968년 대주교
1968년 서울대교구장(∼1998)
1968년 천주교중앙협의회 의장
1968년 군종단 총재
1969년 추기경
1970년 천주교주교회의 의장(∼1975)
1970년 아시아천주교주교회의 구성 준비위원장(∼1973)
1974년 세계주교회의(SYNODE) 위원(현)
1975년 평양교구장 서리(∼1998)
1981년 천주교주교회의 의장(∼1987)
1985년 서강대 재단이사장
1988년 평화신문 발행인
1998년 아시아주교회의 공동의장
1998년 통일고문(현)
1999년 ‘자녀 안심하고 학교 보내기 운동’ 초대이사장(현)
2001년 사이언스북스타트운동 상임대표(현)
2001년 (사)과학사랑나라사랑 상임대표(현)
2003년 생명21운동 홍보대사
【저서】<하느님은 사랑이시다>(분도출판사,1981), <평화를 위한 기도>(1981), <이 땅에 평화를>(햇빛출판사,1988) <참으로 사람답게 살기 위하여> <김수환추기경의 신앙과 사랑> <우리가 사랑한다는 것>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 <김수환 추기경 전집>(18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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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의 전체 흐름이 반미 친북으로 가 걱정"> - [중앙일보](2004. 1. 30)
김수환 추기경(얼굴)은 29일 ‘요즘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을 두고 관권 선거를 하고 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며 ‘행정수도 이전도 정말 합리적인지 아니면 표를 얻기 위해 나온 말인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김추기경은 이날 취임 인사차 방문한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 일행에게 이같이 말하고 ‘솔직히 우리 나라가 어디로 갈 건지 걱정된다’고 우려했다.
이와 관련, 김추기경은 盧대통령이 이날 대전에서 시ㆍ도지사 등과 함께 '지방화와 균형발전 시대 선포식'을 연 것에 대해 “대통령은 '권능'이 있는 자리니까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행정수도 이전에 대해 "통일과 미래를 내다봐야 한다"며 "왜 옮겨야 하는지에 대해 아무도 납득시키고 있지 않다"고 비판했다.
金추기경은 이어 최근 盧대통령의 팬클럽인 노사모와 국민의 힘 등이 결성한 '국민참여 0415'에 대해 "선거법 테두리 내에서 공명선거를 위해 나온다고 하겠지만 반대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총선에 대해서는 "설령 열린우리당이 표를 많이 얻지 못하더라도 공명 선거를 해야 한다"며 "여러 가지 이유를 붙여 행정적인 수단을 동원한다는 의심을 받는다면 (선거 후에도) 갈등이 계속 남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金추기경은 정동영 의장 일행이 "이번 선거는 반드시 돈 안 드는 선거로 치르겠다"고 하자 "돈은 '돼지저금통'을 통해서라도 어떻게든 모일 것"이라며 각별한 주의를 당부했다.
金추기경은 또 "요즘 미국을 주적(主敵)으로 생각하는 젊은이가 늘고 있다"며 "나라의 전체적 흐름이 반미 친북 쪽으로 가는 것은 대단히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군 장성에게서 사병들 가운데도 반미 친북 성향을 가진 사람이 많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이런 계층이 현 정부를 적극 지지하고는 있지만 나라를 이렇게만 끌어가면 미래가 어떻게 되겠느냐"고 염려했다. 이어 "화해ㆍ협력에는 동의하지만 (북한이) 국민을 굶겨죽이는데도 저들에게 끌려다니기만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金추기경은 가톨릭 신자인 鄭의장에게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도 가톨릭 신자고, 盧대통령도 세례는 받았다"며 "여야가 신앙을 통해 여러 가지 문제를 잘 풀어달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어떤 분에게는 세례를 받았다는 것이 별 의미가 없는 것 같다"고 했다.
<오마이뉴스, 김수환추기경 발언 비난> - [중앙일보](2004. 2. 1)
인터넷매체 오마이뉴스가 1일 칼럼을 통해 김수환 추기경의 최근 발언을 반박, 파문이 일고 있다. 오마이뉴스가 게재한 손석춘(한겨레 논설위원)씨의 '추기경의 근심, 백성의 걱정'이란 제목의 칼럼은 "추기경의 정치적 발언이 현실을 호도할 뿐만 아니라 민족의 내일에 심각한 걸림돌로 불거졌다"고 주장했다.
金추기경은 지난달 29일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 일행을 접견한 자리에서 "요즘 미국을 주적(主敵)으로 생각하는 젊은이가 늘고 있다. 나라의 흐름이 반미 친북쪽으로 가는 것은 대단히 걱정스럽다""행정수도 이전도 정말 합리적인지, 아니면 표를 얻기 위해 나온 말인지 묻고 싶다"고 밝혔었다.
손씨는 칼럼에서 "金추기경은 원로가 드문 한국사회에서 노상 '원로'로 꼽혀왔다.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명동성당이 지닌 상징성과 추기경이라는 '권위'가 이어졌기에 더욱 그랬다"고 말했다. 이어 "실제 민주화운동에서 金추기경의 모습이 과대 평가된 대목이 많다는 사실을 알 사람은 다 알면서도 침묵해왔다"며 "하지만 가톨릭 추기경의 말에 이제 더 이상 침묵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같은 글을 전재한 다른 인터넷 사이트에선 '오마이 뉴스의 무례함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 金추기경이 오죽 했으면 그런 말을 했겠는가' '이젠 자신과 의견이 다르다고 나라의 정신적 지주까지 맹비난하는 폭거가 자행되고 있다"고 칼럼을 비판하는 내용이 다수였다.
<"원로 추기경 苦言 매도해도 되나", 네티즌 등 비판> - [한국경제](2004. 2. 2)
지난달 29일 김수환 추기경이 열린 우리당 지도부를 향해 한 "쓴소리"를 오마이뉴스가 손석춘(한겨레 논설위원)씨의 칼럼을 통해 "역사의 걸림돌"이라고 비판한 데 대해 카톨릭계는 물론 네티즌 사이에서도 비판이 일고있다.
가톨릭 서울대교구 홍보실장인 정웅모 신부는 2일 "나라를 걱정하는 김 추기경의 진솔한 마음이 왜곡되는 것이 안타깝다"며 "원로의 고언을 귀담아 듣고 한 마음으로 나아가도 어려운 상황인데 이렇게 하면 누구에게 득이 될까 아쉬운 마음뿐"이라고 말했다.
가톨릭 주교회의 한 관계자는 "추기경이 최근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 일행의 예방을 받고 평온한 정치를 당부한 이야기를 (손씨가) 확대 해석한 것은 유감"이라며 "추기경의 말씀을 쟁점화해 정치적 입장을 드러내려는 전략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고 지적했다. 가톨릭 교계의 한 언론인은 "사회 원로의 발언을 이렇게 심하게 매도할 수는 없다"며 "(김 추기경이) 군사독재 시절 제 목소리를 내 올곧은 방향을 제시했던 것까지 과대 포장됐다고 하면 어떡하느냐"고 말했다.
이날 인터넷 매체들에도 "진보의 범주에 들어가는 사람은 보수에 대해 상당히 편협한 시각을 갖고 있다", "충고를 받아들이는 게 열린 자세 아닌가","이성을 찾고 추기경님께 예우는 지키자"등의 비판적인 글들이 눈에 띄었다. 또 "그야말로 행동하는 양심, 김수환 추기경님까지 보수반동으로 매도하는 세상 을 정말로 우려한다. 오호통재라! 오호애재라!", "성직을 수행하시며 평생을 사신 분이 그 정도의 말 도 못한다는 건가? 기어코 하나하나 토를 달아 국민이라는 허명을 씌워 명예에 분칠을 해야할 만큼 여유도 없고 비판도 못 받아들인단 말인가?" 등 오마이뉴스의 칼럼에 대해 비난하는 의견이 많았다.
손씨는 자신의 칼럼이 언론에 보도되며 파문을 일으키자 이날 오후 반론성격 의 후속 칼럼을 오마이뉴스에 실었다. 손씨는 "분명히 말하거니와 이는 사실 왜곡이다. 나는 문제가 된 칼럼은 물론 지금까지 어느 글에서도 김 추기경이 민족의 걸림돌이라고 쓴 바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김 추기경이 한 말 가운데 "정치적 발언"에 한해, 그것이 현실을 호 도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 결과 여론을 오도할 수 있기 때문에 "민족의 내일에 심각한 걸림돌로 불거졌다"고 보았다"고 덧붙였다.
<천주교 주교회의와 배치되는 추기경의 '반미' 우려> - [오마이뉴스](2004. 2. 3)
추기경 "햇볕정책으로 남남갈등", 주교회의는 "공동선언 변화 징표"
최근 '반미 친북'을 우려하며 열린우리당 지도부를 비판한 김수환 추기경과 달리,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는 2000년도 'SOFA 개정 미국 주교회의 협조요청 공문, 2003년도 평화촉구 성명서' 등을 통해 평화와 통일을 주장해온 것으로 나타났다.
천주교 주교회의는 평화촉구 성명서에서 "미국이 공언하는 이라크 공격의 도덕적 정당성을 이해할 수 없다"며 '테러와의 전쟁'에 대한 반대 입장을 명확히 했다. 또한 SOFA(한미주둔군지위협정)에 대해서도 개정 찬성 입장을 보이며 미국 주교회의에 협조 공문을 보내기도 했다.
남북관계에 대해서도 매년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담화문을 내 "냉전 체제하의 편향된 교육으로 형성된 북한 동포에 대한 편견을 뛰어넘어야 한다"며 북한에 대한 이해와 포용을 강조했다. 6.15 남북공동선언에 대해서도 "획기적인 변화의 징표"라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는 사실상 김수환 추기경이 우려한 '반미 친북' 경향과 일치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김 추기경은 인터넷신문 업코리아 창간 리셉션 자리에서 "햇볕정책이 북한을 변화시키기는커녕 오히려 남남 갈등만 야기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라크 침략에 대해서도 추기경은 교황과는 달리 '파병 찬성" 입장을 보였다.
천주교 주교회의는 '특정 국가나 지역의 목자들이 해당 지역의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어떤 사목 임무를 공동으로 수행하는 조직'(교회법 제 447조)이다. 주교회의의 결정은 영역에 따라 구속력이 없을 때도 있지만 반대하는 주교들에게까지 윤리적인 권위를 가진다.
주교회의 "미국의 이라크 전쟁, 정당성 인정할 수 없다"천주교 주교회의는 SOFA 개정운동이 활발했던 2000년 12월, 2001년 4월 두 차례에 걸쳐 미국 주교회의 의장 조셉 피오렌자 주교에게 협조공문을 보냈다. "SOFA의 전면 개정에 힘을 보태달라"는 내용이었다.
이에 대해 피오렌자 주교는 2001년 8월 "가까운 미래에 이 협정의 전반적인 개정은 어려워 보이지만, 한국 주교회의에서 문제 제기한 일부 사안에 관해서는 양국 정부가 다시 논의하기를 바란다"는 답신을 보냈다.
미국 주교회의 국제정책위원회 위원장 버나드 로 추기경(보스턴 대교구장)은 같은 달 미국 국방부 도널드 럼스펠드 장관에게 한국 주교회의의 자료를 보내며 일부 사안에 대하여 재심의를 요청하기도 했다.
미국 이라크 침략이 일어나기 한 달 전인 2003년 2월 14일에는 "우리는 전쟁이 아닌 평화를 기원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부시 미 대통령과 토마스 허바드 주미대사에 보냈다.
성명서는 "'테러와의 전쟁' 이라는 미명 아래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을 희생시켜서는 안 된다, 우리는 미국이 공언하는 이라크 공격의 도덕적 정당성을 이해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주교회의는 같은 성명서에서 북한 핵무기 개발 문제를 언급하며 "위험한 시도는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 대화와 타협을 통한 평화적 해결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대북 전쟁 용납될 수 없어... 냉전 편견 벗어나야"천주교 주교회의는 또한 한국전쟁이 발발한 6월 25일을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로 설정해 매년 담화문을 발표하며 평화와 통일을 강조해 온 것으로 나타났다.
담화문은 해마다 남북간의 주요 사안을 언급하며 천주교 주교회의의 입장을 전달하고 있다. 6ㆍ15 남북공동선언이 있었던 2000년도에는 "남북 정상의 만남과 합의는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향한 큰 일보 전진이요, 획기적인 변화의 징표"라며 기대를 아끼지 않았다. 천주교주교회의는 "합의가 지속적인 실천 단계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북한에 대한 우리들의 의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냉전 체제하의 편향된 교육으로 형성된 북한 동포에 대한 편견을 뛰어넘어야 한다"고 호소했다.
그 뒤의 담화문에는 공동선언 이후에도 크게 진전하지 못한 남북관계에 대한 아쉬움이 공통적으로 담겨있다. 특히 2003년 담화문에는 "지금 북한은 한편으로는 핵무기 개발을 통해 우리를 볼모로 하여 미국으로부터 생존을 보장받고자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스스로의 변화를 시도하면서 국제 사회의 일원으로서 참여하고자 노력하고 있다"며 "북한이 잘못된 판단으로 돌출 행동을 하지 않도록 그들의 변화 노력을 도와주자"고 강조했다.
또한 "인권을 되찾아 주고 진정한 평화를 쟁취한다는 명분 하에 무고한 사람들을 살상하는 전쟁은 용납될 수 없다"며 "북한 주민들의 인권을 위해서는 전쟁도 불사해야 한다"는 수구적 주장에 대한 반대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다음은 2003년 4월 1일 천주교 주교회의 회보 제 124호에 실린 <평화촉구 성명서 소식>평화 촉구 성명서한국 천주교 주교회의는 2003년 2월 14일 "우리는 전쟁이 아닌 평화를 바랍니다!"라는 제목으로 미국의 이라크 공격을 반대하며 세계 평화를 기원하는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그리고 2003년 2월 20일, 주교회의 의장 최창무 대주교의 명의로 이 성명서(영문 제목 "We Want Peace, Not War!")를 미국의 조지 부시 대통령과 토마스 허바드 주한 미국대사에게 보내며 모든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촉구하였다.
우리는 전쟁이 아닌 평화를 바랍니다! 참 평화를 이룩하는 것이야말로 언제나 온 인류가 추구하여야 할 크나큰 과업입니다. 그러나 세계는 지금 전쟁의 불안에 휩싸여 있습니다. 이라크에 대한 미국의 공격 위협이 시시각각으로 그 강도를 더해 가는 이 때,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성하께서는 전쟁의 어두운 그림자를 염려하시면서 전세계 모든 나라에 평화를 위한 노력을 촉구하시고 온 인류에게 평화의 실현을 위하여 기도하자고 호소하십니다. 평화는 결코 무력 균형이나 국제 협약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군비 증강이 또 다른 군비 증강을 초래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합니다(<지상의 평화>, 110항 참조). 강대국들이 무기 산업에 쏟아 붓는 비용의 백분의 일만 들여도 전세계의 기근과 빈곤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러할 때에 세계의 정의와 평화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미명 아래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을 희생시켜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미국이 공언하는 이라크 공격의 도덕적 정당성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한 공격은 또 다른 폭력의 악순환을 불러올 뿐입니다. 교황님과 더불어, 미국과 중동의 형제 주교들과 함께 우리 한국 가톨릭 교회의 주교들은 전쟁을 반대합니다. 우리는 평화를 위협하는 모든 세력을 명명백백히 단죄합니다. 역사적으로 더 많은 전쟁을 일으켜 왔고 핵무기 등 대량 살상 무기를 더 많이 가지고 있는 강대국들이 먼저 관용을 보여야 합니다. 전쟁의 위기에 놓인 당사국들은 모든 갈등을 평화적으로 해결하여야 합니다. 국제연합(UN)을 비롯한 국제 공동체의 대화가 전쟁을 방지하는 단호한 행동으로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우리 민족의 앞날을 위협하는 북한의 핵무기 개발 문제 또한 개탄하며 반대합니다. 7천만 겨레의 생명을 담보로 한반도 전체를 전쟁의 위기로 몰고 가며 국제 관계를 첨예한 긴장으로 악화시키는 북한 당국의 위험한 시도는 즉각 중단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온갖 힘의 논리를 배격하며, 대화와 타협을 통한 평화적 해결을 지지합니다. 모든 사람이 마음을 열고 대화하며 모든 국가가 더욱더 긴밀한 형제 관계를 이루고 '평화'라는 인류의 공동선을 향하여 공존 공생하는 길을 모색하여야 합니다. 폭력의 문화, 죽음의 문화를 척결하고 이 땅에 평화의 문화, 생명의 문화가 피어날 수 있도록 우리 모두 노력하여야 합니다.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모든 신자들은 평화의 임금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르쳐 주신 평화가 우리 민족 가운데에, 나아가 세계 공동체 안에 확고하게 자리잡을 수 있도록 끊임없이 기도하며, 평화의 모후이신 동정 마리아와 그 배필이신 성 요셉의 전구를 간청합시다. 교황님께서는 특별히 세계 평화를 위하여 묵주기도를 바치자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선의를 지닌 모든 사람과 더불어 온 누리의 평화를 위하여 간절히 기도합니다. 2003년 2월 14일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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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사랑하세요" 김수환 추기경 어제 선종(善終) > [조선일보] 2009. 2. 17
"나는 그동안 사랑을 너무 많이 받았습니다. 여러분도 사랑하면서 사세요."
천주교 김수환(金壽煥·87·사진) 추기경이 16일 오후 6시12분 서울 강남성모병원에서 선종(善終)했다. 지난해 7월 노환으로 입원한 김 추기경은 10월 초 한때 호흡곤란으로 위독했다가 의식을 회복했지만 가슴에 꽂은 링거주사로 영양을 공급받아 왔다. 의료진에게 "하느님의 뜻을 따르겠으니 무리하게 생명을 연장하지 말라"고 당부했던 김 추기경은 전날 갑자기 폐렴 증세를 보였고 이날 오후 병세가 급격히 악화됐다. 그는 선종 2~3일 전부터 주위 사람들에게 "정말로 고맙다"고 말했다.
"주여, 당신이 보고 싶습니다. /당신과 만나고 싶습니다. /당신과 함께 살고 싶습니다. /목숨 다하는 그날까지/ 당신과 함께 영원을 향하여 걷고 싶습니다. /형제들을 위한 봉사 속에 /형제들을 위한 가난 속에/ 그들과 함께 모든 것을 나누면서 /사랑으로 몸과 마음 다 바치고 싶습니다." ('나의 기도'·1979)
그러나 김수환 추기경이 단순한 종교지도자를 넘어 온 국민이 존경하는 인물이 된 것은 천주교 신자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형제'로 삼아 그들을 사랑하고 봉사하고 나누는데 몸과 마음을 바쳤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 격동이 몰아쳤던 지난 40년간 그는 우리 사회가 중심을 잡는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1970~1980년대 민주주의와 인권이 억압받던 군사정권 시절에는 국민의 민주화 열망을 대변했다.
1990년대 이후에는 우리 사회에 반미친북(反美親北) 경향이 강해지는 점을 우려하고 북한의 인권 개선과 체제 변화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파와 이념의 갈등과 대립 속에서 혼돈을 겪던 국민은 언제나 김 추기경을 바라보았다.
김수환 추기경은 지난해 6월, 86회 생일을 맞아 "빨리 사라져야 하는데 아직도 사라지지 못하고 하느님 앞에서 머뭇거리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하며 차분하게 마지막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였다. 입원 후에는 문병 온 사람들과 매일 병실에서 미사를 올리며 모든 사람을 위해 기도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대변인 허영엽 신부는 "선종하시던 날은 말씀이 거의 없으셨고, 특별히 남긴 유언은 없다"며 "선종 10분 전까지 의식이 뚜렷했고 고통스럽지 않으냐는 질문에 괜찮다며 고개를 저었다"고 전했다.
김수환 추기경은 1989년 세계성체대회 때 장기기증을 약속했으며, 선종 직후인 이날 오후 7시20분 강남성모병원에서 안구 적출 수술을 마쳤다. 김 추기경이 남긴 눈은 두 사람에게 시술할 예정이다. 김 추기경의 유해는 이날 밤 명동성당으로 옮겨져 본당에 마련된 유리관 안에 안치됐다. 천주교 서울대교구는 조문객을 위해 명동성당을 오전 6시부터 자정까지 개방할 예정이다.
김수환 추기경의 장례는 5일장으로 치러진다. 20일 오전 10시 명동성당에서 정진석 추기경 주재로 장례미사가 열리며 장지는 용인 천주교 서울대교구 성직자 묘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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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의에 단호하되 주변엔 다정했던 ‘혜화동 할아버지’ > [동아일보] 2009. 2. 17
“좋은것 나쁜것, 오물까지 담을수 있어” 아호를 ‘옹기’로
임신부 위독 소식에 “살려달라고 하느님께 떼쓰듯 기도”
회고록선 “처자식과 오순도순 사는 삶 부러울때도 있어”
김수환 추기경은 민주주의를 억압하는 독재와 강자의 불의에는 단호하게 맞섰지만 겸손하고 청빈한 삶과 따뜻한 인간미로 사랑과 존경을 받아 왔다.
‘옹기장학회’에 얽힌 사연이 대표적이다. 김 추기경은 2002년 세례명을 딴 ‘스테파노 장학회’ 설립을 제안받자 대신 옹기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당시 김 추기경은 “옹기는 천주교 박해시대 때 신앙 선조들이 산 속에서 구워 내다팔면서 생계를 잇고 복음을 전파한 수단이자 좋은 것과 나쁜 것, 심지어 오물까지 담을 수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옹기가 김 추기경의 아호라는 것은 최근 알려졌다.
1969년 이탈리아 로마에서 추기경으로 임명되는 서임 행사가 열렸다. 김 추기경은 로마에 가면 대중 교통수단을 이용하지 않고 벤츠를 타는 것이 당시 관례였다. 김 추기경은 처음에는 벤츠를 탔지만 이용자가 택시비의 2배를 내야 하는 것을 알고 이후 택시만 탔다고 한다.
김 추기경은 1984년 5월 한국 교회 창립 200주년을 기념하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방한을 앞두고 평소 두 갑까지 즐기던 담배를 2개월 전부터 끊었다. 하지만 당시 전례를 맡은 관계자가 방한하던 날 담배를 권하자 “오늘같이 기쁜 날 안 피우면 언제 피우겠느냐”며 담배를 물기도 했다. 그해 9월 책상에 담배와 라이터를 둔 채 담배를 끊었다.
1998년 76세로 서울대교구장직에서 물러날 때는 여기저기에 ‘영원한 젊은 오빠, 사랑해요’라는 팻말이 나타났다.
“팻말이 보이는데 가슴이 울컥 하더군요. 하지만 30년 교구장직 점수는 이것저것 평균을 내면 60점 정도죠. 더 후하게 줄 자신이 없습니다.”
그는 운전면허증을 따서 방방곡곡을 자유롭게 돌아다닌다는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김 추기경이 아니라 김삿갓이 되겠다는 것. 노령인 자신의 건강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 수 있어 운전면허는 포기했다.
김 추기경은 30년 가깝게 자신의 ‘발’이 돼 준 운전기사 김형태 씨(요한)가 성실하고 운전 잘하고 마음씨가 곱다며 가장 가깝게 지낸다고 말하기도 했다.
2007년 공개된 일화는 ‘혜화동할아버지’로도 불려 온 고인의 인간적인 체취를 더욱 짙게 느끼게 한다. 어느 날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져 배 속 아기와 자신의 생명 중 택일을 해야 한다는 유치원 교사의 쪽지를 받았다.
“미사를 봉헌하면서 두 생명을 모두 구해 달라고 한참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기도 말미에 ‘하느님, 그 자매님과는 일면식도 없는 사이지만 제 체면을 봐서라도 꼭 들어주십시오. 사람들은 추기경이 기도해 주면 뭔가 다를 거라고 믿습니다’라며 하느님께 ‘떼’를 썼습니다.”
김 추기경은 또 2004년 출간된 회고록 등을 통해 “결혼해 처자식과 오순도순 살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며 “어린 시절 장사하는 것과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되고 싶기도 했다”고 밝혀 신선한 충격을 주기도 했다.
고인은 한국 교회의 가장 큰어른이었지만 신앙과 스스로에 대해서는 언제나 겸손하고 낮은 자세로 임했다.
‘사랑해’ ‘등대’가 ‘18번’이라고 밝힌 고인은 윤동주의 ‘서시’를 몹시 좋아하지만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운 게 많아 감히 읊어볼 생각을 못했다”고 말했다.
김 추기경은 언제부터인가 병세가 위독한 선후배 신부들을 병문안할 때 귀에 바싹 대고 “하느님한테 맡기세요. 하느님한테 모든 걸 다 맡기세요”라고 말했다. 물론 스스로에게도 하는 말이었다.
“주님은 나의 목자, 나는 아쉬울 것 없노라.”(시편 23장 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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