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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지우3

꽃잎 되어서 날아가 버린다 꽃잎 되어서 날아가 버린다 3년 만에 복학한 나는 한동안 정신적인 공황 상태를 겪어야만 했다. 많은 이유를 필설(筆舌)로 다 할 수 없을 만치 사고(思考)가 정체되어 도무지 앞길이 보이지 않는 패닉 상태 같은 것이었으리라. 그해 전두환 정부의 간선제에 반대하는 학생 시위는 날로 격해져 갔고 4층 이상의 캠퍼스 건물에는 연일 '군사정권'을 반대하는 삐라가 날아 다녔다. 삐라가 날릴 때마다 숨어있던 사복 경찰들이 그곳을 향해 뛰어갔다. 봄날 하늘을 날아다니는 하얀 전단지들을 보며 그 모습이 흡사 떨어지는 하얀 꽃잎 같다고 생각했다. 그해 봄, 서울대의 김세진·이재호 두 학생이 분신자살을 했다. '땅 그림자 한 모서리에 꽃나무 하나 심어 놓으려니 그 나무 자라서 꽃 피우면 우리가 얻은 모든 괴로움이 꽃잎 되어.. 2014. 2. 28.
황지우 첫 시집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황지우 첫 시집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시인 황지우의 제1시집으로 1983년 [문학과 지성사]에서 간행되었다. 기존의 정통적인 시 관념을 과감하게 부수면서, 언어와 작업에서 대담한 실험과 전위적 수법을 만들어내고 있는 저자의 첫 번째 시집이다. 형태 파괴적 작업을 통해 날카로운 풍자와 강렬한 부정의 정신, 그리고 그것들의 안에 도사린 슬픔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시인이 말하길 새들마저 뜨고 싶은 세상이란, ‘정의 사회 구현’의 구호 아래 숙정과 통폐합 바람이 부는 가운데 컬러 텔레비전에서 연일 ‘팔육 팔팔’을 떠들던 80년대초 ‘국운 상승기’였다. 그런 이 땅을 떠나자는 이 불경스러운 시집은 80년대 시의 한 상징으로 남았고, 현재까지 발행 부수는 9만 6천부나 된다. 이 시집은 시적으로도 불순.. 2013. 7. 15.
연혁(沿革) / 황지우 연혁(沿革) 황지우 섣달 스무 아흐레 어머니는 시루떡을 던져 앞바다의 흩어진 물결들을 달래었습니다. 이튿날내내 청태(靑苔)밭 가득히 찬비가 몰려왔습니다. 저희는 우기(雨期)의 처마 밑을 바라볼 뿐 가난은 저희의 어떤 관례와도 같았습니다. 만조(滿潮)를 이룬 저의 가슴이 무장무장 숨가빠하면서 무명옷이 젖은 저희 일가(一家)의 심한 살냄새를 맡았습니다. 빠른 물살들이 토방문(土房門)을 빠져나가는 소리를 들으며 저희는 낮은 연안(沿岸)에 남아 있었습니다. 모든 근경(近景)에서 이름 없이 섬들이 멀어지고 늦게 떠난 목선(木船)들이 그 사이에 오락가락했습니다. 저는 바다로 가는 대신 뒤안 장독의 작게 부서지는 파도 소리를 들었습니다. 빈 항아리마다 저의 아버님이 떠나신 솔섬 새울음이 그치질 않았습니다. 물 건너 .. 2009. 8.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