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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수경4

스며드는 저녁 스며드는 저녁 잎들은 와르르 빛 아래 저녁 빛 아래 물방울은 동그르 꽃 밑에 꽃 연한 살 밑에 먼 곳에서 벗들은 술자리에 앉아 고기를 굽고 저녁 스며드네 한때 저녁이 오는 소리를 들으면 세상의 모든 주막이 일제히 문을 열어 마치 곡식을 거두어들이는 것처럼 저녁을 거두어들이는 듯했는데, 지금 우리는 술자리에 앉아 고기를 굽네 양념장 밑에 잦아든 살은 순하고 씹히는 풋고추는 섬덕섬덕하고 저녁 스며드네 마음 어느 동그라미 하나 아주 어진 안개처럼 슬근슬근 저를 풀어놓는 것처럼 이제 우리를 풀어 스며드는 저녁을 그렇게 동그랗게 안아주는데, 어느 벗은 아들을 잃고 어느 벗은 집을 잃고 어느 벗은 다 잃고도 살아남아 고기를 굽네 불 옆에 앉아 젓가락으로 살점을 집어 불 위로 땀을 흘리며 올리네 잎들은 와르르 빛 아.. 2014. 11. 21.
허수경 시집 『혼자 가는 먼 집』 허수경 시집 『혼자 가는 먼 집』 시인 허수경(許秀卿, 1964 ~)은 경남 진주에서 태어나 경상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했고, 1992년 독일로 가서 현재 뮌스터대학에서 고대동방문헌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1987 『실천문학』에 「땡볕」을 발표하면서 작품활동 시작했으며, 방송국에서「FM밤의 디스크쇼」 스크립터도 활동했다. 작품으로 시집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혼자 가는 먼 집』,『내 영혼은 오래 되었으나』,『청동의 시간 감자의 시간』, 장편소설 『모래도시》, 수필집 『길모퉁이의 중국식당』,『모래도시를 찾아서』가 있으며, 옮긴 책으로 『끝없는 이야기』, 『슬픈 란돌린』 등이 있다. 앞으로의 소망이 있다면 젊은 시인들과 젊은 노점상들과 젊은 노동자들에게 아부하는 사회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혼자 가.. 2013. 4. 1.
저녁 스며드네 / 허수경 저녁 스며드네 허수경 (1964 ~ ) 잎들은 와르르 빛 아래 저녁 빛 아래 물방울은 동그르 꽃 밑에 꽃 연한 살 밑에 먼 곳에서 벗들은 술자리에 앉아 고기를 굽고 저녁 스며드네 한때 저녁이 오는 소리를 들으면 세상의 모든 주막이 일제히 문을 열어 마치 곡식을 거두어들이는 것처럼 저녁을 거두어들이는 듯했는데, 지금 우리는 술자리에 앉아 고기를 굽네 양념장 밑에 잦아든 살은 순하고 씹히는 풋고추는 섬덕섬덕하고 저녁 스며드네 마음 어느 동그라미 하나가 아주 어진 안개처럼 슬근슬근 저를 풀어놓는 것처럼 이제 우리를 풀어 스며드는 저녁을 그렇게 동그랗게 안아주는데, 어느 벗은 아들을 잃고 어느 벗은 집을 잃고 어느 벗은 다 잃고도 살아남아 고기를 굽네 불 옆에 앉아 젓가락으로 살점을 집어 불 위로 땀을 흘리며 .. 2012. 9. 10.
수수께끼 / 허수경 수수께끼 허수경 극장을 나와 우리는 밥집으로 갔네 고개를 숙이고 메이는 목으로 밥을 넘겼네 밥집을 나와 우리는 걸었네 서점은 다 문을 닫았고 맥줏집은 사람들로 가득해서 들어갈 수 없었네 안녕, 이제 우리 헤어져 바람처럼 그렇게 없어지자 먼 곳에서 누군가가 북극곰을 도살하고 있는 것 같아. 차비 있어? 차비는 없었지 이별 있어? 이별만 있었지 나는 그 후로 우리 가운데 하나를 다시 만나지 못했네 사랑했던 순간들의 영화와 밥은 기억나는데 그 얼굴은 봄 무우순이 잊어버린 눈물처럼 기억나지 않았네 얼음의 벽 속으로 들어와 기억이 집을 짓기 전에 얼른 지워버렸지 뒷모습이 기억나면 얼른 눈 위로 떨어지던 빛처럼 잠을 청했지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당신이 만년 동안 내 얼굴에 흐르는 눈물을 들여다보고 있었네 내.. 2009. 11.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