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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바리공주신화

by 언덕에서 2007. 1. 23.

 

 

바리공주신화

 

 

 

   

전국적으로 전승되는 무속신화로 <바리데기> <칠공주> <오구풀이>라고도 한다. 죽은 사람의 혼령을 저승으로 보내기 위해 베풀어지는 사령제(死靈祭) 무의(巫儀)에서 구연된다. 무가의 내용은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다.

 서울지역 전승본이 바리공주의 영웅적 행위와 신성(神性) 획득 과정의 인과적 전개를 통해 신화적 모습을 잘 지키고 있는 반면, 함경도지역 전승본은 인과의 논리가 허물어지고 골계적 성격이 강화되면서 민담으로의 변모를 보인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옛날 이씨 주상금마마가 7공주를 본다는 해에 왕비를 맞아들인 후 계속해서 6공주를 낳는다. 왕과 왕비는 왕자를 낳기 위해 온갖 치성을 드린 후 일곱째 아이를 잉태했으나 낳고 보니 또 공주였다. 크게 노한 대왕은 일곱째 공주를 옥함에 넣어 강물에 띄워버린다. 아기는 석가세존의 지시로 바리공덕 할아비와 할미에게 구출되어 양육된다.

 바리공주가 15세 되었을 때 대왕마마가 병이 들었는데 꿈에 청의동자가 나타나서 하늘이 아는 아기를 버린 죄로 죽게 되었다며 살기 위해서는 버린 아기가 구해다준 무장신선의 약려수를 먹어야 한다고 했다. 바리공주를 찾으라는 왕명이 내려지고 한 대신의 충성으로 바리공주를 찾는다. 바리공주는 모든 신하들과 언니들이 거절한 구약(救藥)의 길을 남장(男裝)을 하고 혼자 떠난다.

 저승세계를 지나 신선세계에 이른 바리공주는 무장신선을 만나 약물값으로 나무하기 3년, 물긷기 3년, 불때기 3년 등 9년 동안 일을 해주고 무장신선과 혼인해 아들 일곱을 낳은 뒤 약수를 가지고 함께 돌아온다. 이때 양전마마는 이미 승하해 장사를 지내려는 중이었는데 바리공주가 상여를 멈추게 하고 약수와 꽃으로 양전마마를 살린다.

 살아난 대왕마마는 바리공주의 소원을 들어 그녀를 만신(萬神)의 왕이 되게 하고, 무장신선은 죽은 사람이 가는 길에서 노제(路祭)를 받아먹게 하고, 일곱 아들은 저승의 십대왕(十大王)이 되게 한다.

 

 ♣

 

 바리공주는 부모의 잘못을 대신해서 자신의 삶을 희생한 효녀이다. 바리공주의 아버지는 2번 잘못을 저질렀다. 한 번은 7공주를 본다는 해에 혼인을 한 것이고 다음은 자신의 화를 풀기 위해 죄없는 혈육을 버린 것이다. 이것은 사회에서 용인되지 않은 금제를 위반한 행위였고 그 결과 죽음의 징벌이 내려지게 된 것이다.

 그러나 바리공주의 헌신적인 고행으로 부왕부부는 징벌에서 구출되어 삶을 되찾는다. 여기에는 '금제의 선언-금제의 위반-위반에 대한 징벌-징벌로부터 구출'이라는 일반적인 유형구조가 들어 있다. 이러한 유형의 신화는 대개 사회에 선언된 금기로부터 해방되려는 집단의 잠재의식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즉 <바리공주>는 가부장제 사회에서 억압된 여성의식의 산물이라고 볼 수 있다.

 바리공주의 신화적 성격은 바리공주의 신성성 획득과 관련해 파악할 수 있다. 서울지역 전승본에서는 바리공주가 무조신(巫祖神)이 된다. 영남지역 전승본에서는 바리공주가 저승차지신이 된다. 죽은 사람을 살려냈다는 점에서 바리공주는 무당의 기능 중 특히 치병(治病)면에서 위대한 공적을 남긴 인물이다.

 한편 바리공주는 저승세계를 여행하면서 저승의 수많은 원귀(寃鬼)들을 인도해준다. 그래서 바리공주는 저승세계를 관장하는 무속의 신이 된 것이다. 이러한 바리공주의 이중적 성격은 바로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기를 바라는 마음과, 죽음과 동시에 이승과는 단절해야 한다는 인간의 이중적 심리가 함께 반영된 것이다. 바리공주는 무당들의 수호신으로 추앙을 받아 사령제에는 꼭 모신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