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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朋滿座

다른 게 나쁜 건 아니잖아요? (1)

by 언덕에서 2012. 8. 21.

 

 

 

다른 게 나쁜 건 아니잖아요? (1)

 


이 책은 대한민국의 다문화 현실과 이를 바라보는 한국인의 문제의식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책으로 SBS스페셜이 취재하고 기록한, 아름다운 공존을 위한 다문화 이야기다.

 

 


“가장 곤궁한 자의 외침에 귀를 막는다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목소리도 알아듣지 못하게 된다.” (B. 브레히트)


은선이가 취재진 앞에서 불쑥 그동안 감추어 왔던 이야기를 꺼냈다.

“너는 엄마가 왜 일본 사람이냐고…….”

학교 친구들이 은선이 엄마가 일본 사람인 것을 두고 트집을 잡았던 모양이다.

안 좋은 기억이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 듯, 은선이의 표정이 금세 어두워진다.

“그래서 은선이는 뭐라 그랬어요?”

취재진이 묻자, 은선이는 기어드는 목소리로 “모른다고…….”라고 우물거린다.

“은선이는 그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아니요.”

취재진과 이야기를 하고 나서 카메라를 외면한 채 억지미소를 짓고 있던 은선이의 표정이 조금씩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콧잔등이 실룩거린다. 은선이는 지금 마음속으로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다. ---본문 pp.5-6 [prologue, 은선이의 눈물] 중에서

 

 

 


 스리랑카에서 온 스물여섯 살의 K씨는 안산의 한 공장에서 일했다. 여름철 휴가 시즌이 시작되자 이 공장의 업주는 다짜고짜 “휴가를 떠나라”며 K씨와 외국인근로자 동료들을 공장 밖으로 내몰았다. 숙소는 일시적으로 폐쇄되었고, 구내식당도 문을 닫았다. 공장 사장이 휴가비로 건네준 돈은 1인당 5만 원씩이었다.

 그들은 이참에 한번 호사를 누려 보자고 의견을 모았다. 부산의 해운대에 가기로 한 것이다. (…) 공장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숙소가 폐쇄되어 돌아갈 곳이 없었다. 차라리 빨리 휴가가 끝나기만을 바랐다. K씨는 자신과 동료들이 노숙자가 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휴가 기간이 끝나고 그들은 안산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그들의 씁쓸한 휴가는 그렇게 끝이 났다. 부산시에 의하면 2010년 여름 해운대 백사장 부근의 공원에서 노숙을 한 외국인근로자의 숫자가 1000명에 달했다고 한다.--- 본문 pp.106-108 [초대받지 못한 손님들] 중에서

 

 

 


“여러분들, 지금 화면을 통해 로버트 할리 아저씨, 주디스 아주머니, 영광이를 봤습니다. 여러분, 주디스 아주머니, 로버트 할리 아저씨, 영광이 같은 어린이들을 한국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여러분 생각은 어때요?”

“한국인이라고 생각해요. 자신이 한국인이라고 굳게 믿고 있고요, 한국에서 살고 있다면 충분히 한국인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자기가 한국인이라고 마음속으로 믿고 있고요. 또 다른 나라 사람이 우리나라 사람으로 안 된다는 법도 없잖아요.”

“태어난 거와 모습은 많이 다르지만, 국적과 자기가 한국인이라는 마음이 통일돼 있으니까 우리 한민족이랑 똑같아요.”

아이들 대부분은 스스로 한국인이라는 믿음만 있다면 누구나 한국인이고 또 한국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이들의 세계와는 달리, 어른들의 세계에서는 귀화 외국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아직도 냉담했다. 2006년에 SBS스페셜 제작팀이 실시했던 설문조사에서 ‘우리 민족을 단일민족이라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62.5%의 사람이 ‘그렇다’라고 답변했다. 그리고 ‘귀화 외국인을 한국인으로 인정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는 73.6%가 ‘인정할 수 없다’고 답했다. --- 본문 pp.143-144 [나는 한국인입니다] 중에서

 

 

▲ 다름을 인정하고, 같음을 발견하는 것, 그것이 `다문화’다.

 


 요즘 우리나라 농촌에는 한 집 건너 한 집에 외국인 며느리가 들어올 정도로 다문화가정이 증가하고 있다. 그래서 외국인 며느리가 낳은 아이가 맏손주가 되는 일이 낯설지 않다. 한국인 여성들이 농촌에 시집오는 것을 꺼리는 세태 때문에 나타나게 된 외국인 며느리의 등장이 새로운 풍속도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취재진은 민정이의 할아버지에게 뷔티 씨에 대해서 물었다.

“외국인 며느리, 어떠세요?”

“여기 왔으면 한국 사람이지 베트남 사람이라 하겠어?”

“시골에 계신 분들이 신세대같이 생각이 많이 바뀌셨다고 하더라고요. 아버님도 생각이 많이 바뀌셨어요?”

“그럼 바뀌었지! 옛날 구닥다리, 옛날 풍속…….”--- 본문 pp.197 [늙어 가는 대한민국의 내일] 중에서


 우리는 코시안의 집에서 하나의 이상향을 보았다. 동남아시아계 부모를 둔 갓난아기가 요람에 누워 있었고, 영광이가 그 아기를 예뻐 죽겠다는 표정으로 내려다보며 얼굴을 어루만졌다. 콩고 출신의 부모에게서 태어난 다니엘이 그 곁에서 아기를 지키고 있었고, 중국계 여자 아이가 아기의 눈앞에서 장난감을 흔들었다. 곧 아이들은 기차놀이를 했다. 제각각 피부색이 다른 아이들이 아무런 경계 없이 어울려 웃고 장난치고 까불면서도 기차는 멈추지 않았다. 좁은 거실을 빙글빙글 돌아가는 아이들의 기차는 영원히 멈추지 않을 것만 같았다. ---본문 pp.232 [누가 한국인입니까?] 중에서

 

 

 


 우리는 담임선생님에게 개학 첫 수업의 주제를 ‘한국인’으로 해 달라고 부탁했다. 선생님은 우리의 부탁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질문했다.

“한국 사람은 어떤 사람을 말하지?”

까불거리는 한 남학생이 “우리나라 사람이요!” 하고 맥없는 대답을 해서 웃게 만들었다.

 이번에는 여학생이 대답한다. “예의가 바른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문영이에게 카메라를 향하고 마이크를 내밀었다. 문영이는 수줍은 듯 대답했다.

“다른 나라보다 매운 거 더 좋아하고, 또 어른을 대하는 마음이 더 특별하면서, 친구들이랑 욕하고 싸우면서 더 친해지니까, 더 특이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영이의 말에 싸한 느낌이 가슴을 훑는다. 필리핀 사람을 엄마로 둔 문영이는 그 일 때문에 마음 상했던 적이 많았다. 한창 이야기를 잘 나누다가도 친구들은 조금만 의견이 틀어지면 “필리핀 사람이 뭘 아냐?”며 문영이의 입을 막고는 했다. 조금 전 교문을 들어선 문영이에게 어서 오라고 손짓하던 그 친구들이었다. 교실에서 철썩 달라붙어 떨어질 줄 몰랐던 그 친구들이었다. 그렇게 잘 지내다가도 또 의견이 틀어지면 친구들은 문영이에게 “야, 필리핀 사람이 뭘 아냐?”라고 말문을 막으려 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다음날이면 다시 서로를 향해 손짓을 하고, 교실에서 어울릴 것이고, 아무도 모르는 비밀을 함께 나눌 것이며, 그렇게 우정을 키워 갈 것이다. 문영이도, 문영이의 친구들도, 우리도 싸우면서 더 친해지는 한국 사람이니까.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 여성들이 농촌으로 시집가는 것을 기피하고, 3D 업종의 인력난이 가중되면서 한국사회에 외국인 며느리와 외국인근로자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북한을 탈출한 새터민과 중국ㆍ구소련 지역의 동포들이 가세하고, 한국에 매력을 느낀 세계 각지의 외국인들이 유입되면서 한국사회의 다문화 러시가 가속화되었다. 하지만 단일민족 이념을 믿고 순혈주의를 고집해 온 한국인들은 이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수많은 다문화 이웃들이 차별과 냉대 속에 상처받고 있다.

<내일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