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석에서 친구에게 보낸 편지
김유정(1908 ~ 1937)
형아! 나는 날로 몸이 꺼져간다. 이제는 자리에서 일어나기조차 자유롭지 못하다. 밤에는 불면증으로 하여 괴로운 시간을 원망하고 누워있다. 그리고 맹열(猛熱)이다. 아무리 생각하여도 딱한 일이다. 이러다가는 안 되겠다. 달리 도리를 찾지 않으면 이 몸을 다시 일으키기 어렵겠다.
형아! 나는 참말로 일어나고 싶다. 지금 나는 병마와 최후의 담판이다. 흥패가 이 고비에 달려 있음을 내가 잘 안다. 나에게는 돈이 필요하다. 그 돈이 없는 것이다.
형아! 내가 돈 백원을 만들어 볼 작정이다. 동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네가 좀 조력하여 주기 바란다. 또다시 탐정 소설을 번역해 보고 싶다. 그 외에는 다른 길이 없는 것이다. 허니, 네가 보던 중 대중화되고 흥미 있는 걸로 두어 권 보내 주기 바란다. 그러면 내 50일 이내로 역하여 너의 손에 가게 하여 주마. 하거든 네가 글력 주선하여 돈으로 바꿔 보내 다오.
형아! 물론, 이것이 무리임을 잘 안다. 무리를 하면 병을 더친다. 그러나 그 병을 위하여 무리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나의 몸이다. 그 돈이 되면 우선 닭을 한 삼십 마리 고아 먹겠다. 그리고 땅군을 들여 살무사 구렁이를 십여 뭇 멁어 보겠다. 그래야 내가 다시 살 것이다.
형아! 나는 지금 막다른 골목에 맞닥뜨렸다. 나로 하여금 너의 팔에 의지하여 광명을 찾게 하여 다오. 나는 요즘 가끔 울고 누워 있다. 모두가 답답한 사정이다.
반가운 소식 전해 다오. 기다리마.
1937년 3월 18일 김유정으로부터
☞위의 글은 김유정이 안회남(安懷南.1909∼?)에게 보낸 편지로 알려져 있다. 안회남은 광복 후 좌익 계열 문학 단체인 조선문학건설본부에 이어 조선문학동맹 결성에 참가하여 소설부 위원장을 맡았다. 1947년경에 월북하였고, 한국 전쟁 시기에 종군작가단에 참가하여 서울에 왔다가 박태원, 현덕, 설정식 등 아직 월북하지 않고 있던 문인들과 함께 북조선으로 돌아갔다. 1960년대 숙청되었다는 설만 있을 뿐, 1954년경까지의 활동만 확인되었고 이후 행적은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김유정(1908 ~ 1937) : 소설가, ‘구인회’에 참가하였으며, 농촌과 도시의 토속적 인간상을 유머러스한 필치로 그려 내었다. 29세의 나이로 폐결핵으로인해 요절하였다. 작품에 〈봄봄〉, 〈동백꽃〉, 〈따라지〉 따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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