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적으로 / 김사인
필사적으로 김사인 비 오고, 술은 오르고, 속은 메슥거려 식은 땀 배고, 비는 오는데, 어디 마른 땅 한 귀퉁이 있다면 이 육신 벗어졌으면 좋겠는데, 어쩌자고 눈앞은 자꾸 아련해지나, 양손에는 우산과 가방 하나씩 쥐고, 자꾸 까부라지려 하네, 비는 오고, 오는데, 몸뚱이는 젖은 창호지처럼 척척 늘어지는데, 기억에도 흐릿한 옛 벗들 그림자, 환등(幻燈)과도 같이, 가슴에 예리한 칼금 긋고 지나가네. 한 손에 우산, 또 한 손엔 내용불상(內容不詳)의 가방을 쥐고 필사적으로, 달리 마땅한 폼이 없으므로 다만 필사적으로, 신발에 물은 스미고, 신호는 영영 안 바뀌는데. -시집 (창비 2006) 김사인 시인(1955~ )은 시적 대상의 안팎을 헤아리는 섬세한 시선과 결고운 시어로 무르익은 시의 아름다움을 한껏 전..
2009. 9.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