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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를 읽다

남(南) 으로 창(窓) 을 내겠소 / 김상용

by 언덕에서 2009. 8. 11.

 

 

 

남(南) 으로 창(窓) 을 내겠소

 

                                                 김상용

 

남(南)으로 창(窓)을 내겠소

밭이 한참갈이

괭이로 파고

호미론 풀을 매지요

 

구름이 꼬인다 갈 리 있소

새 노래는 공으로 들으랴오

강냉이가 익걸랑

함께 와 자셔도 좋소

 

왜 사냐건

웃지요.

 

 

 - 시집<망향> (문장사 1939) 

 

 

 

 

 

 

 

 


 

 

 

흔히들 우리나라의 전원시의 백미로 손꼽는 작품이다. 김상용 시인(1902∼1951)이 1934년 <문학>지 제2호에 발표한 시이다. 소박한 전원생활을 제재로 노래한 작품으로 자연 친화적인 삶의 자세가 드러나 있다. 자연의 품으로 돌아가 흙과 더불어 살아가고 싶은 마음이 길지않은 시 전반에 잘 나타나 있다. '남(南)'이 주는 밝고 건강한 이미지와 함께 시적 화자의 삶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전원에서 안분지족(安分知足)하는 삶의 태도, 훈훈한 인정, 달관의 모습을 넉넉하게 보여 주고 있다.

 작중 화자는 평화로운 전원적 삶에의 소망을 말한다. 해가 잘 드는 남쪽으로 창문을 내고 흙과 더불어 사는 것이 그의 소망이다. 구름, 즉 헛된 세속적 이익이나 명예 따위가 유혹한다(꼬인다) 해도 그는 가지 않으려 한다. 다만 너그럽게 자연을 즐기고 이웃을 사랑하며 살고 싶다. 왜 사느냐고 묻지 말라. 이 평화로운 삶의 기쁨, 그것이 곧 삶의 여유가 아니겠는가?  자연과 인간이 하나가 되어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고 싶은 마음은 복잡한 도시 생활에 쫓기며 살아가는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일종의 모성 회귀(母性回歸)의 본능과 같은 것이다.

 화자는 이 전원생활 속에서 스스로 만족을 느끼며 어떤 유혹이 있더라도 도시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뜻을 '구름이 꼬인다. 갈 리 있소'라고 말하고 있다. 땅을 일구고 자연을 벗하며 인정미 넘치는 삶의 여유와 관조가 회화조의 친근한 어조에 용해되어 시적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다. 특히, 삶의 의미를 묻는 질문에 잔잔한 웃음으로 답하는 모습은 삶에 대한 깊은 성찰에서 우러나오는 초월과 달관의 경지를 함축적으로 보여 주는 시적 표현의 백미라 할 수 있다.  

 김현승 시인은 다음과 같이 이 시를 극찬했다.  

 "창을 남쪽으로 내겠다는 제목부터가 생활의 건강하고 낙천적인 면을 보여 준다. 그리고 이러한 생활에 대한 굳은 신념을 나타내면서도, 역설하거나 강요하는 것이 아니고, 제2연에서 보는 바와 같이 해학과 더불어 매우 시다운 표현을 하고 있다. 이 점이 이 시의 특별한 매력이다. 마지막 연은 의미의 함축성과 표현의 간결성 및 탄력성을 잘 간직하고 있다. 도회 생활의 공허한 삶은 생각지도 않고 무슨 재미로 전원에 파묻혀 사느냐고 질문하는 친구에게 만족한 대답을 주려면 한 권의 책을 써도 모자랄지 모른다. 그것을 시는 '웃지요'라는 단 한 마디로 표현하고 있다. 얼마나 복잡하고 많은 회의, 번민, 사색, 해답, 결심이 하나로 압축된 자신의 생활관을 실증하는 웃음인지 모른다. " -김현승: <한국현대시 해설>―

 김상용이 쓴 대부분의 시가 대개가 우수(憂愁)와 동양적 체념이 담긴 관조적 서정시였다고 한다면, 이 시는 이와는 좀 다른 시풍을 지닌 시가 아닌가 생각된다. 이 시는 언뜻 보면 도피와 체념과 간조가 주된 정조(情調)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 반대다.

 이 시에는 우수(憂愁)의 그늘이라곤 없다. 남으로 창을 낼 만큼 마음은 밝으며, 새 노래를 즐길 만큼 마음에는 여유가 있다. ‘한참 갈이’밖에 되지 않는 밭을 괭이로 파서 강냉이를 심고 ‘남으로 창을’낼 만큼 생활에 적극적이다. 세속적인 일들이 유혹을 해도 흔들리지 않는다. 건강한 신념이 있는 것이다. ‘왜 사냐건 / 웃지요’에 체념이 아니라 달관(達觀)이 있을 뿐이다.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 집을 짓고 그 집에 남으로 창을 내고 주경야독할 수 있는 날은 언제일까? 그날이 기다려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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