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장(風葬) 1 / 황동규(黃東奎)
풍장(風葬) 1
황동규(黃東奎.1938∼ )
내 세상 뜨면 풍장시켜다오
섭섭하지 않게
옷은 입은 채로 전자시계는 가는 채로
손목에 달아 놓고
아주 춥지는 않게
가죽가방에 넣어 전세 택시에 싣고
군산(群山)에 가서
검색이 심하면
곰소쯤에 가서
통통배에 옮겨 실어다오
가방 속에서 다리 오그리고
그러나 편안히 누워 있다가
선유도 지나 무인도 지나 통통 소리 지나
배가 육지에 허리 대는 기척에
잠시 정신을 잃고
가방 벗기우고 옷 벗기우고
무인도의 늦가을 차가운 햇빛 속에
구두와 양말도 벗기우고
손목시계 부서질 때
남몰래 시간을 떨어뜨리고
바람 속에 익은 붉은 열매에서 툭툭 튕기는 씨들을
무연히 안 보이듯 바라보며
살을 말리게 해다오
어금니에 박혀 녹스는 백금(白金) 조각도
바람 속에 빛나게 해다오
바람을 이불처럼 덮고
화장(化粧)도 해탈(解脫)도 없이
이불 여미듯 바람을 여미고
마지막으로 몸의 피가 다 마를 때까지
바람과 놀게 해다오.
-시집 <풍장>(나남.1984) -
시적 화자에게 있어 죽음은 두려움도, 슬픔도 아닌 담담한 귀환이다. 그는 ‘바람’과 ‘죽음’의 이미지를 겹쳐 일상의 고단함을 벗어나 정신의 가벼움과 투명함을 추구한다. 궁극적으로는 모든 존재를 품는 무한한 자연, 즉 ‘무인도’로의 회귀를 꿈꾼다. 이 시에서 죽음은 회피의 대상이 아니라 긍정과 수용의 대상이며, 그러한 초연한 태도는 기존의 시적 전통 속에서는 드물게 발견되는 특징이다.
화자는 자신이 죽은 뒤 ‘풍장’을 해줄 것을 청하며, 자신의 육신이 자연의 품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담담히 그리고 있다. 세속의 관습을 벗어나 죽음을 하나의 자연 현상으로 받아들이는 이 시적 태도는 허무를 넘어선 투명한 인식의 산물이다.
세 연 30행으로 구성된 이 자유시는 내재율을 지닌 주지적·상징적 서정시로, 명령형 종결어미 ‘다오’의 반복을 통해 정서의 간절함과 운율의 긴장을 동시에 높인다. 제1연은 죽음을 준비하는 당부, 제2연은 풍장의 과정, 제3연은 바람 속에서의 유희를 통해 죽음의 본질을 노래한다.
‘바람’은 이 시의 핵심 이미지로, 모든 것을 풍화시켜 자연으로 되돌리는 힘이며, 화자는 죽음을 그 속에서의 ‘놀이’로 승화시킨다. 이는 죽음을 통과해 오히려 삶의 본질에 다가서려는 시인의 깊은 성찰을 보여준다. 삶과 죽음을 나누지 않고, 존재의 흐름 속에 죽음을 놓는 이 시는 죽음을 삶의 자연스러운 연장선으로 바라보며, 그 자체로 잔잔하고 깊은 울림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