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

자유롭고 자각적인 죽음을 택하라

언덕에서 2025. 4. 21. 07:05

 

 

 

자유롭고 자각적인 죽음을 택하라

스콧 니어링은 1983년 100살이 되던 해, 죽음이 앞에 왔음을 느끼고 스스로 음식을 끊어 죽음에 이른다. 헬렌 니어링 또한 1995년 92세의 나이로 죽는다. 둘 다 인생을 충분히 즐기다, 행복하게 떠났다.

 

 

그리스도교를 비롯한 거의 대다수 종교는 자살을 금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목숨을 버리는 것은 죄라는 이유에서입니다. 이러한 종교들은 위대한 자살과 비겁한 자살을 구별하지 않습니다.

(중략)

 니체는 자연사(自然死)라고 불리는 것도 사실은 자연스러운 죽음이 아니라 어떻게 해서든 자신의 목숨을 이어가려는 비루함에서 비롯된 ‘부(不)자연사’이며 일종의 자살이라고 봅니다.

 인간은 항상 선택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자연사라는 것도 결국은 자신의 죽는 시점을 죽음이 찾아올 때까지 늦춘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것도 일종의 선택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니체는 사람은 자기 이외의 누구에 의해서도 죽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가 보기에 남들에게 민폐를 끼치면서 죽음이 찾아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은 “가장 경멸할 만한 조건들 아래에서의 죽음이며, 자유롭지 않은 죽음, 제때 죽지 않는 죽음, 비겁한 자의 죽음”입니다. 니체는 삶을 사랑하는 자라면 우연하거나 돌연하게가 아니라 자유로우면서도 의식적으로 죽는 것을 선택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더 나아가 그리스도교는 죽어가는 사람에게 그동안 삶에서 지은 죄를 회개할 것을 요구합니다. 죄를 회개하고 주님을 받아들이면 천국에 갈 것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지옥에 갈 것이라고 협박하지요. 이 점에서 니체는 그리스도교가 죽음의 시간에도 사람들의 양심을 능욕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교의 협박에 굴복하여 지옥에 떨어질까 걱정하면서 자신의 죄를 참회할 때 사람들을 비겁한 인간으로 전락시킨다는 것입니다.

 니체에게는 '죄 있는 인간'과 '죄 없는 인간'의 구별이 아니라 '병든 인간'과 '건강한 인간'의 구별이 있을 뿐입니다. 이러한 기준은 죽음에 임한 사람들에게 회개가 아니라 제 죽음을 의연하게 맞을 것, 자기 정신력을 최고로 고양할 것을 요구합니다. 이러한 기준에 의하면 삶에 대한 원한 때문에 자살을 택한 사람들은 삶을 짊어지기에는 너무나도 병약한 인간들이었기 때문에 자살을 한 것입니다. 이들의 자살은 자유로운 자살이 아니라 자포자기의 자살입니다.

 

 

 

- 박찬국「사는 게 힘드냐고 니체가 물었다」(21세기북스) 217~22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