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계(Das Stadium) /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
단계(Das Stadium)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 1877∼1962)
모든 꽃이 시들듯이
청춘이 나이에 굴하듯이
일생의 모든 시기와 지혜와 덕망도
그때그때에 꽃이 피어서
영원히 계속될 수 없다.
생의 외침을 들을 때마다 마음은
크게 서러워하지 않고
새로이 다른 속박으로 들어가듯이
이별과 재출발할 각오를 해야 한다.
대개 무슨 일이든 처음에는 이상한 힘이 깃들어 있다.
그것이 우리를 지키며 사는 데 도움이 된다.
우리는 공간을 명랑하게 하나씩 거닐어야 한다.
어디서나 고향처럼 집착을 느껴서는 안 된다.
우리의 정신은 우리를 구속하려 하지 않고,
우리를 한 단계씩 높여주며 넓혀주려고 한다.
우리 생활권에 뿌리를 박고
안이하게 살면 탄력을 잃기가 쉽다.
여행을 떠날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만이
습관의 마비 작용에서 벗어나리라.
죽을 때 아마 다시 우리를 새로운 공간으로 돌려보내서
젊게 꽃피워 줄는지도 모른다.
우리를 부르는 생의 외침은 결코 그치는 일이 없으리라.
그러면 좋아, 마음이여, 작별을 고하고
편히 있으라.
(전략) 니체는 우리가 보통 우리 자신과 동일시하는 의식의 이면에 진정한 자기가 있다고 봅니다. 니체가 '힘에의 의지'라고 부르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의 내면에는 끊임없이 자신을 고양시키고 강화시키고 싶어 하는 의지가 존재합니다. 이러한 의지는 우리가 피상적인 삶에 자족해 있을 때 병에 걸리게 한다든가 아니면 지금의 삶의 방식에 대해 권태나 허무감에 사로잡히게 함으로써 우리에게 삶의 방식을 변화시키라는 신호를 보낸다는 것입니다. (중략)
여기서 저는 제가 고등학교 때 애송했던 헤르만 헤세의 시 하나를 인용할까 합니다. 그 시를 책상 위에 붙여놓고 하루에도 몇 번씩 혼자서 낭송했던 기억이 지금도 새롭습니다.
헤세는 여기서 우리를 부르는 '생의 외침'에 대해서 말하고 있지만, 그것은 니체가 말하는 '힘에의 의지'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때마다 삶의 단계에 안주하지 말고 '힘에의 의지'가 명하는 대로 그 단계를 미련없이 명랑하게 뛰어넘어야 합니다. 니체의 다음 말을 인용하면서 이 장을 마칩니다.
‘사나이가 되어라! 그리하여 나를 따르지 말고 너 자신을 따르라! 너 자신을! 우리의 삶도 우리 스스로에 대해 권리를 지녀야 마땅하다! 우리도 또한 자유롭고 두려움 없이, 순진무구한 자기 안에서 자기 자신으로부터 성장하고 꽃을 피워야 한다.
- 박찬국 철학서 <사는 게 힘드냐고 니체가 물었다>(21세기북스, 2024)240~24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