옌롄커 장편소설 『딩씨 마을의 꿈(丁庄梦)』
옌롄커 장편소설 『딩씨 마을의 꿈(丁庄梦)』
중국 소설가 옌 롄커(閻連科, Yan Lianke, 1958~)의 장편소설로 2006년에 발표되었다. 제1회, 2회 [루쉰 문학상]과 제 3회 [라오서 문학상]을 받은 작품이다.
비위생적인 의료바늘 사용으로 중국 시골의 ‘딩좡’이라는 마을이 에이즈에 집단 감염된 사건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다. 자본주의라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리라 믿었던 유토피아적 환상이 붕괴한 처참한 풍경을 묘사한 작품이다. 이 소설은 소중하기 짝이 없는 사람의 목숨이 없어지는 장면이 그 누구에게도 충격을 주지 못하는 마을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순박한 인심의 마을이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한 지역으로 변모하면서 인간성이 말살되어가는 과정이 세밀하게 그려진다. 옌롄커가 자기 작품 중 단연 최고라고 자부하는 『딩씨 마을의 꿈』은 작가의 작품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爲人民服務)> <사서(四書)> 등과 마찬가지로 국가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중국 정부로부터 판매 금지 조치당한 비운의 작품이다.
『딩씨 마을의 꿈』은 딩 후이라는 인물을 통해 인간의 탐욕과 권력욕이 얼마나 파괴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또한, 화자의 할아버지를 통해서는 과거의 영광과 현재의 비극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간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이 소설은 단순히 한 마을의 비극을 넘어, 현대 사회가 안고 있는 다양한 문제점을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다.
2006년은 중국이 급격한 경제 성장을 이루던 시기였지만, 그 이면에는 심각한 사회 문제들이 존재했다. 『딩씨 마을의 꿈』은 이러한 사회 문제, 특히 빈부격차, 환경 오염 그리고 AIDS와 같은 질병 문제를 날카롭게 비판하며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 작품 발표 이후 중국 정부의 검열에 부딪히면서 중국의 문화계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이는 옌롄커를 대표적인 비판 작가로 만들었고, 그의 작품은 중국 사회의 문제점을 고발하는 상징적인 작품이 되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딩씨 마을은 극심한 빈곤에 시달리고 있어서 마을 사람들은 돈을 벌어 생활을 개선하고자 하는 간절한 염원을 품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딩 후이가 등장하여 매혈 사업을 제안한다. 피를 팔면 돈을 쉽게 벌 수 있다는 유혹에 많은 마을 사람들이 딩 후이가 사업자가 된 매혈에 참여한다.
딩 후이의 매혈 사업은 빠르게 확장되어 마을 전체를 휘어잡는다. 하지만 돈벌이에만 급급한 그는 위생 기준을 무시하고 오염된 바늘을 사용하여 비위생적으로 매혈을 진행한다. 이는 곧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여 마을 전체에 에이즈가 빠르게 확산한다. 에이즈로 인해 마을 사람들이 잇달아 죽어 나가자 가족과 친지를 잃은 딩씨 마을은 절망과 공포에 휩싸인다.
돈맛을 알게 된 딩 후이의 계산법은 매혈에 그치지 않고 에이즈로 죽은 사람들에게 관을 비싸게 팔아 이익을 챙긴다. 심지어 관을 대충 만들다 보니 시체가 훼손되는 일까지 발생한다. 뿐만 아니라, 에이즈로 죽은 처녀나 총각의 귀신을 짝지어주는 '영 결혼 중매사업'까지 개시한다. 딩 후이는 마을 사람들의 고통을 이용하여 돈을 벌 수 있는 모든 범위까지 손을 뻗는다. 그 결과, 마을 사람들은 서로를 의심하고 배신하여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잔혹한 행위를 저지른다.
이후, 딩 후이는 자신의 악행으로 인해 마을 사람들에게 버림받는다. 딩 후이의 비참한 최후와는 별개로 마을은 폐허가 된다. 화자의 할아버지는 과거의 영광을 잃고 후손들의 비극을 보며 깊은 슬픔에 잠긴다. 마을 사람들은 에이즈라는 질병과 딩 후이의 탐욕이라는 두 가지 재앙으로 인해 모든 것을 잃고 절망적인 삶을 살아가는 장면에서 소설은 끝을 맺는다.
『딩씨 마을의 꿈』은 중국의 경제 발전의 결과가 가져온 비극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작가는 중국의 한 마을에서 비위생적인 헌혈 바늘을 사용해 에이즈에 집단 감염된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인간 본성의 어두운 면, 특히 자본주의라는 유토피아적 환상이 처참하게 무너지는 장면을 세밀하게 묘사해냈다.
이 작품은 이미 죽어 땅에 묻힌 열두 살 소년의 시선으로 서술하는 특이한 기법을 사용하는데 사실주의와 판타지가 결합된 작품이다. 피를 사고파는 과정에서 딩씨 마을 전체가 에이즈에 감염당하는 지독한 현실을 그린 이 작품은 21세기 중국 문단 최고의 문제작이다. 출간 이후 중국 내에서는 정부의 검열로 인해 출판 및 배포가 금지되었고, 해외에서 먼저 주목받으며 큰 반향을 일으켰다.
『딩씨 마을의 꿈』은 단순히 에이즈라는 질병이 가져온 비극만을 다루지 않는다. 인간의 탐욕, 권력욕 그리고 그로 인해 무너지는 공동체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특히, 화자의 할아버지와 딩 후이라는 두 인물을 통해 이러한 주제를 더욱 깊이 있게 보여주고 있다. 소설 속 화자는 죽은 소년의 시각에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데, 그의 할아버지는 과거 딩씨 마을의 유지이자 지도자로서 존경받는 인물이었지만, 딩 후이의 등장과 함께 별볼일없는 노인으로 치부당한다. 딩 후이의 매혈 사업이 번창하면서 마을의 분위기가 변하고, 할아버지의 영향력은 급격히 약해지기 시작한다. 손자인 화자가 에이즈에 걸리고 죽음을 맞이하는 것을 보면서 할아버지는 깊은 절망감에 빠지는데 자기 잘못인 양 마을이 망하고 후손들이 고통받는 모습을 보며 자책감에 시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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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나(샤오창)’는 십 년 전, 상부의 주도로 마을에서 대대적으로 일어난 매혈 운동의 우두머리였던 아버지에 대한 복수로 누군가 마을 어귀에 놓아둔 독이 묻은 토마토를 먹고 세상을 떠나게 된다. 이 작품은 너 나 할 것 없이 피를 팔아 부를 축적하게 되었지만, 결국엔 열병(에이즈)에 걸려 고통스럽게 생을 마감할 수밖에 없는 비극적인 현실을 이미 죽은 열두 살 소년의 시선으로 그려내어 작품의 강렬함을 극대화하고 있다.
(전략) 꿈속에서 그는 전에 가본 적이 있는 웨이현 현성과 둥징성 지하에 마치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파이프를 보았는데, 파이프에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제대로 접합되지 않은 파이프 연결 부위와 파이프가 꺾어지는 지점에서는 피가 분수처럼 솟구쳐 허공을 향해 뿌려지고 있었다. 붉은 비가 내리는 것 같았다. 진한 피비린내가 코를 찔렀다. 할아버지는 평원의 우물과 강물 모두 새빨갛고 비린내가 진하게 풍기는 피로 변해 있는 것을 보았다.(본문에서)
장편소설『딩씨 마을의 꿈』을 관통하고 있는 또 하나의 중요한 요소는 할아버지의 꿈이다. “고통과 절망을 희화화하거나 축소하지 않고 그 무게와 질감을 그대로 드러내되, 그 아픔과 추한 외상의 충격을 경감시켜줄 수 있는 서사적 장치”가 바로 꿈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작가는 할아버지의 꿈을 통해 ‘피를 팔아 천당과 같은 세월’을 얻으려고 했던 딩씨 마을 사람들의 희망이 절대로 실현될 수 없는 허황한 것임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동시에,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넘나들며 견고한 허구의 세계를 구축함으로써 보다 근원적인 진실에 도달할 수 있도록 한다. 또한 이 소설은 정부 주도의 매혈 운동이라는 사회 시스템이 얼마나 위험하고 비윤리적인지를 보여준다. 중국 정부는 돈벌이에만 급급하여 인민들의 건강과 생명을 외면했고, 그 결과 마을 전체를 파멸시켰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