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원평 장편소설 『아몬드』
손원평 장편소설 『아몬드』
소설가·영화감독 손원평(孫元平, 1979~)의 장편소설로 2017년 발표되었다. 감정적 연결, 회복력 그리고 자기 발견이라는 주제를 다룬 감동적인 성장소설이다. 주인공 윤재는 감정을 느끼거나 표현하는 능력이 제한되는 알렉시타임증이라는 질병을 앓는 소년이다. 윤재의 독특한 시선을 통해 소설은 인간다움의 의미와 감정이 관계를 형성하는 데 어떤 역할을 하는지 얘기한다.
감정 없는 담담한 어조로 이야기를 이끄는 윤재의 독백 안에서, 독자는 윤재가 느껴야 할 오만가지 감정을 대신 느끼게 된다. 감정의 무게와 오묘함, 성장의 아픔과 경이로움 등이 휘몰아치는 서사 안에서 독자를 압도하며, 현실에서라면 다만 문제아이자 피하고 싶은 두 소년인 윤재와 곤이를 독자는 오롯이 이해하고 바라보게 된다. 감정이 없기에 그 누구보다 순수하고 편견 없는 시선으로 세상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며 자라 나가는 윤재의 이야기를 통해 독자는 쌉쌀하고 달콤한 감정의 스펙트럼을 느끼며 감동할 수 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16세 소년 윤재는 감정을 느끼지도 표현하지도 못한다. 감정을 관장하는 뇌의 편도체 영역이 선천적으로 작은 알렉시티미아, 즉 ‘감정표현 불능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윤재를 평범한 사회구성원으로 키우려는 엄마와 할머니의 극진한 노력과 사랑 아래 윤재는 가까스로 별 탈 없이 자라난다. 그러나 16세 생일, 크리스마스이브에 비극적인 사고로 가족을 잃게 되면서 윤재는 세상에 홀로 남겨진다.
가족이라는 보호막이 사라지자 윤재는 단번에 ‘괴물’로 낙인찍힌다. 그러나 곧 윤재는 ‘또 다른 괴물’이라 일컬어지는 곤이라는 소년과 운명적으로 만나게 된다. 운명의 장난으로 어두운 터널 같은 어린 시절을 거친 곤이는 무엇에든 날카롭게 맞설 준비가 돼 있지만, 사실 상처투성이인 그의 안에는 연약하고 보드라운 심성이 감춰져 있다.
세상의 시선에서 벗어난 두 괴물. 어쩌면 양극단에 서 있는 두 소년은 편견 없는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특별한 우정을 쌓아가기 시작한다. 그러나 윤재가 ‘도라’라는 소녀를 통해 사랑의 감정을 배워가는 동안 곤이는 또다시 세상에서 낙인찍히고 버림받으며 비극을 향해 치닫는 위기를 맞이한다.
도라는 밝고 활기찬 소녀로, 윤재의 삶에 따뜻함과 빛을 가져온다. 도라의 공감 능력과 끈기는 윤재가 자신의 감정 세계를 탐구하도록 자극한다. 곤과 도라와의 관계를 통해 윤재는 감정에 대한 미묘한 변화를 경험하기 시작한다. 다른 사람들처럼 감정을 "느끼는" 것은 아니지만, 관계의 중요성과 작은 행동의 힘을 이해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본능적으로 느끼지는 못해도 타인을 배려하고, 따뜻한 행동을 실천하는 법을 배운다.
처음에는 곤과 윤재는 적대적인 관계였지만, 둘은 서로에게 배우며 복잡하면서도 변화하는 우정을 쌓아간다. 윤재는 자신의 특성을 받아들이는 한편, 가족을 잃은 아픔과도 맞선다. 그는 타인과 유대감을 형성하고, 아픔 속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작은 걸음을 내디딘다.
소설은 희망스러우면서도 현실적인 톤으로 끝난다. 윤재는 자신의 특성을 "치유"하거나 다른 사람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관계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곤과 도라와의 관계를 통해 복잡하고 감정적인 세상을 헤쳐 나간다. 이는 감정을 표현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사람도 의미 있는 관계를 맺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 소설은 독자들에게 인간 경험의 다양성을 생각하고, 윤재와 같은 사람들을 이해할 당위성을 얘기한다. 윤재의 여정은 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개인적 성장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소설은 윤재의 특성을 통해 인간다움의 정의를 질문한다. 감정을 느끼는 것이 인간다움일까? 아니면 따뜻함과 이해를 실천하는 것이 인간다움일까?
이야기 속 펼쳐지는 관계들은 우정과 사랑이 깊은 상처도 치유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아몬드』는 간결한 문체, 깊이 있는 감정, 보편적인 주제를 통해 세대와 문화를 초월하여 독자들의 공감을 끌어낸다. 이 작품에서 곤의 비극적인 결말은 그의 힘든 과거, 사회의 낙인 그리고 자멸적인 성향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 윤재가 도라를 통해 인간관계와 치유를 배워가는 동안, 곤은 세상에서 다시 한번 외면당하고 비극적인 길로 빠져든다. 곤은 어린 시절부터 방치당하고 폭력 속에서 자랐다. 비행 전력도 많고 성격도 거칠어서, 사회는 그를 구제 불능으로 간주했다. 윤재랑 친해지면서 조금씩 달라질 수 있는 기회를 얻었지만, 그의 과거가 발목을 계속 잡는다. 윤재는 도라 같은 사람이 있어서 자기를 이해하고 성장할 기회를 잡았지만, 곤은 그런 사람이 없다. 오히려 곤의 파괴적인 행동들이 주변 사람들과 점점 더 멀어지게 만든다. 그래서 중요한 관계를 만들 기회를 자꾸 놓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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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은 사회가 문제아로 찍은 아이다. 사람들이 그의 분노와 충동적인 행동만 보고 "저 사람은 못 바뀐다"라고 단정 짓곤 한다. 그래서 그는 반복적으로 버림받고 의심받는다. 곤은 자기 고통을 건강하게 풀어내는 법을 모르고, 자꾸 위험한 선택을 한다. 윤재는 감정을 못 느끼는 한계가 있지만, 그래도 배려와 이해를 실천하려고 노력하지만 곤은 자신의 상처를 이겨내지 못해서 결국 자신을 더 망가뜨린다.
윤재는 도라를 통해 사랑이나 인간관계 같은 걸 배우지만, 곤은 그런 존재가 없다. 윤재는 도라와 함께 안정감이나 행복 같은 걸 조금씩 찾는데, 곤은 그런 순간이 없어서 절망에 더 휘둘린다. 곤의 이야기는 사회가 얼마나 쉽게 사람들을 판단하고 외면하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런 판단이 어떻게 사람을 비극으로 몰아가는지 잘 보여주는 본보기이기도 하다. 윤재가 성장하고 치유를 경험하는 동안, 곤은 그 반대 방향으로 가면서 두 사람의 대조가 더 뚜렷해진다.
작중 감정 없는 담담한 어조로 이야기를 이끄는 윤재의 독백 안에서, 독자는 윤재가 느껴야 할 오만가지 감정을 대신 느끼게 된다. 감정의 무게와 오묘함, 성장의 아픔과 경이로움 등이 휘몰아치는 서사 안에서 독자를 압도한다. 또한 독자는 현실에서라면 문제아이자 피하고 싶은 두 소년, 윤재와 곤이를 오롯이 이해하며 바라보게 된다. 감정이 없기에 그 누구보다 순수하고 편견 없는 시선으로 세상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며 자라 나가는 윤재의 이야기는 독자로하여금 쌉쌀하고 달콤한 감정의 스펙트럼을 느끼며 감동하게 한다.
윤재와 곤의 이야기를 통해, 독자는 상처받은 과거를 가진 사람들이 종종 사회와 주변 사람들에게 외면당하는 현실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소외당하는 이들을 사회가 열린 마음으로 포용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