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여성과 러시아 군인의 비극적인 사랑을 그린 영화 <러브 오브 시베리아(Сибирский цирюльник)>
미국 여성과 러시아 군인의 비극적인 사랑을 그린 영화 <러브 오브 시베리아(Сибирский цирюльник)>
1998년 러시아에서 제작된 영화 <러브 오브 시베리아 (Сибирский цирюльник, The Barber of Siberia)>는 러시아와 프랑스 합작 영화로, 니키타 미할코프(Nikita Mikhalkov) 감독이 직접 각본을 쓰고 연출을 맡았다. 원제는 '시베리아의 이발사(The Barber of Siberia)였다. 러시아 유명 배우 올렉 멘시코프와 영국 여배우 줄리아 오몬드가 주연을 맡은 이 영화는 19세기말 러시아의 광활한 시베리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낯선 환경에서 사랑과 희생을 경험하는 한 미국인 여성과 러시아 군인의 애틋한 사랑을 다루고 있다.
여주인공 제인이 스무 살 아들 맥클라칸의 출생비밀을 편지로 써 내려가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영화의 원제는 롯시니의 오페라 '세빌리아의 이발사'를 표방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그 후속편 격인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을 소재이자 배경음악으로 사용하고 있다. 주인공 제인과 톨스토이가 기차에서 처음 만났을 때 제인이 먼저 비제의 '카르멘' 중 아리아 '내 사랑은 새처럼 자유로워'를, 톨스토이가 '피가로의 결혼'에서 나오는 아리아 '더 이상 날지 못하리(non piu andrai)를 부른다. 또한 사관학교 졸업식에서는 '피가로의 결혼'을 직접 공연한다. 이후 시베리아로 유배 당하는 톨스토이는 친구들이 교가를 부르며 자신을 떠나보낼 때도 호송열차 안에서 다시 이 이리아를 부른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주인공 제인 캘러핸(Jane Callahan)은 미국 출신의 젊고 아름다운 여성이다. 1885년, 모스크바로 가는 기차에 탄 러시아 사관생도들은 1등 칸으로 숨어들고 그중 안드레이 소위는 아름다운 미국 여인 제인을 만난다. 그녀는 미국 발명가의 의뢰를 받아 러시아로 향하는 중이다. 발명가는 벌목기계를 러시아 황실에 팔기 위해 로비스로 제인을 고용했으며, 그녀가 황실을 설득해 계약을 맺기를 원하고 있다. 제인은 기차에서 운명처럼 러시아의 젊은 군인 안드레이 톨스토이(Andrey Tolstoy) 소위를 만나게 된다. 둘은 짧은 시간이지만 강한 끌림을 느끼며 서로에게 빠져들지만 제인은 안드레이에 마음을 표현하지 못한 채 헤어진다.
이후 제인은 사관학교 교장 레들로프 장군을 영업상 유혹하려고 학교로 갔다가 안드레이 소위와 재회한다. 둘은 사랑에 빠지지만, 현실은 이들을 결코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안드레이는 귀족의 딸과 약혼한 상태이고, 러시아 상류층 사회와 군사적 의무 사이에서 갈등을 겪는다.
렌들로프 장군은 제인의 의도를 알지 못한 채 그녀에 연정을 느낀다. 장군이 제인에게 청혼하려 가던 날 마침 안드레이를 만나 통역을 부탁하게 되고 편지를 낭독하던 안드레이는 제인에 대한 자신을 사랑을 고백한다. 제인은 안드레이를 찾아가 "내가 당신이라면 나 같은 여자를 사랑하지 않겠어요."라고 고백하고 두 사람의 사랑을 확인한다.
이후 제인이 로비스트 본연의 임무를 위해 렌들로프 장군과 함께 있는 모습을 본 안드레이는 제인이 장군과 특별한 관계가 있다고 판단하게 되고, 이로 인해 제인에 대한 신뢰와 사랑이 흔들린다. 결국 오해가 겹치고 정치적 음모까지 얽히면서 안드레이는 위기에 처하고, 군법회의에 넘겨진다. 제인은 안드레이를 구하려 애쓰지만, 시대적 한계와 사회적 위치로 인해 그를 도울 방도가 많지 않다. 안드레이는 황제 암살 누명을 쓰고 시베리아로 유배되고 친구들이 부르는 교가를 들으며 기차역을 떠난다.
안드레이는 제인을 위해 희생을 감수한 후 홀로 시베리아에 남겨진다. 제인은 미국으로 돌아가게 되고, 둘의 사랑은 그 시베리아 대지에 영원히 남는다.
벌목기계의 완성을 이유로 10년 만에 시베리아로 온 제인은 안드레이를 찾아간다. 이미 가정을 이루고 자신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안드레이의 흔적을 보면서, 제인 자신이 머물 곳이 아님을 깨닫고 발길을 돌린다. 안드레이는 마차를 타고 달리는 제인을 멀리서 지켜본다. 두 사람은 한때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과의 추억을 되새기며 영화는 끝을 맺는다.
원래 '시베리아'의 이발사'는 벌목기계의 이름이며 유배지에서는 남주인공 안드레이의 이름이기도 하다. 원제인 <시베리아의 이발사>를 그냥 제쳐두고 <러브 오브 시베리아>라는 제목으로 국내에 개봉된 이유는 '사랑이야기'를 강조하며 흥행을 유도한 것으로 판단된다. 그렇지만 실제 영화를 보고 난 후의 느낌은 수입처의 의도와는 달리 시의적절한 제목 변경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안드레이와 제인의 사랑이 같은 무게였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제인은 10년을, 그 이후도 죄책감에 시달리고 아들을 통해 죄 갚음을 하고 살아야 할 운명이다. 안드레이는 유형지에서 삶의 많은 부분을 바친 후 한정된 자유만을 누리는 생활을 영위하지만 제인에 비해 훨씬 깊은 사랑의 결과이며 내면은 자유롭다. 자신의 열정과 사랑에 젊음을 바치고 달콤하고도 고통스러운 대가를 지불한 안드레이의 사랑은 단순한 사랑을 넘어선다. 벌목기계의 완성을 지켜보며 제인에게 10년을 기다리게 한 이유는 '죄책감'이었다. 순수한 청춘의 정열에 반해 폭풍 같은 감정을 다스리고 극복하지 못해 삶을 만들어버린 자신의 경솔함에 대한 후회에 자책에 다름 아니다.
인간의 만남과 사랑이라는 것도 자연과 역사의 도도한 흐름 속에서는 한 순간의 눈물일 따름이다. 안드레이와 제인의 삶을 뒤흔든 사랑이란 신이 부린 한 순간의 심술은 아닌가?
<러브 오브 시베리아>는 어느 미국 여성과 러시아 군인의 운명적이고 비극적인 사랑을 통해 당대 러시아의 사회적 구조와 정치적 상황을 강렬하게 묘사한 영화다. 영화는 러시아 황실, 상류층의 규율, 군부의 엄격한 제도 속에서 개인의 선택과 사랑이 억눌리는 모습을 그려내며, 낭만적이면서도 비극적인 정서로 가득하다.
이 영화는 러시아의 광활한 대지와 아름다운 자연을 배경으로, 당시 시대상을 사실적으로 재현하면서, 역사적 디테일을 풍부하게 살렸다. 니키타 미할코프 감독은 특유의 유머와 진지함을 결합해 당시 러시아 사회의 모순과 충돌을 표현했으며, 등장인물의 감정을 섬세하게 묘사했다.
또한, 주연을 맡은 줄리아 오몬드와 올레그 멘쉬코프는 제인과 톨스토이의 복잡한 감정을 훌륭하게 연기하며 영화의 몰입감을 높였다. 이들의 연기는 이국적인 사랑 이야기 속에서 각자의 처지와 고뇌를 선명하게 드러내며, 보는 이로 하여금 사랑과 희생에 대한 깊은 여운을 남긴다. 이 영화는 1999년 칸느 영화제 개막 작품으로 비경쟁부분에 출품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