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철학서

군중 심리와 권력의 상호작용 『군중과 권력(Masse und Macht)』

언덕에서 2024. 11. 6. 07:41

 

 

 

군중 심리와 권력의 상호작용 『군중과 권력(Masse und Macht)』

 

불가리아 소설가·극작가·사회비평가 엘리아스 카네티(Elias Canetti, 1905∼1994) )가 쓴 사회이론서로 1960년 발표되었다. 군중 심리와 권력의 상호작용을 심도 있게 탐구한 철학적 저술로 오늘날 정치적·사회적 현상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저서이다.

『군중과 권력』은 엘리아스 카네티가 20년 이상의 오랜 침묵 속에서 '군중과 권력의 본질'에 대해 연구하여 1960년 발표한 책으로 출간과 동시에 '군중의 본질을 새로운 각도에서 조명했다. 이로써 인간사에 대한 포괄적인 이해의 토대를 마련한 책'(아놀드 토인비), '마르크스와 프로이트를 재조명할 수 있는 관점을 제공해 주는 책'(아이리스 머독) 등의 격찬을 받았다. 그 이후 유럽 사상계의 고전으로 자리 잡으며 카네티의 이름을 전 세계에 알렸다.

 이 책이 그가 [노벨문학상]을 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로 그가 오랜 시간 치열하게 연구한 필생의 기록을 담고 있다. 스포츠 관중에서 정치집회까지, 부시먼족에서 메카 순례까지, 원시 부족의 신화에서부터 세계종교들의 경전, 동서고금 권력자들의 전기, 심지어 정신질환자의 병례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자료를 총동원해서 쓰인 『군중과 권력』은 군중 현상과 권력의 상관관계를 분석함으로써, '군중의 물리학', '권력의 정신분석학'을 완성하고 있다.

 

 

 ‘군중’은 카네티 인생의 진정한 최대 관심사였다. 1910년 핼리 혜성 출현에 따른 종말론적 패닉 현상, 1911년 타이태닉호 침몰을 듣고 거리로 뛰쳐나와 비통해하던 인파의 물결, 1차 대전 당시 빈 시민들이 보여준 적개심과 광기, 전후 독일의 인플레이션에 따른 극심한 궁핍과 혼란, 그리고 히틀러, 나치즘, 유대인 학살 등등……. 그가 살았던 20세기 전반기만큼 군중 현상이 역사상 폭발했던 시기도 없었다. 군중이란 무엇인가, 군중은 어떻게 형성되는가, 군중을 구성하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물음이 그를 사로잡았다. 1924년 스무 살의 카네티는 평생을 군중 연구에 바치기로 결심한다.

 구체적인 계기가 되었던 사건으로 카네티는 두 가지를 예시한다.

 첫 번째는 1924년 국수주의자들에 의한 독일 외상 라테나우 암살 사건에 항의하기 위해 노동자들이 벌인 대규모 시위였다. 그는 이때의 체험을 다음과 같이 술회하고 있다. “이 군중은 예전에 내가 보았던 군중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나는 내 피부로 이 군중을 느꼈고, 이 군중의 일부가 된 것처럼 느끼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서 깜짝 놀랐다. 나는 그때까지 군중을 마치 나를 향해 습격해오는 것 같은 위협적인 것으로 생각해왔다. 그런데 이때에는 정반대 현상이 일어나 어떤 저항하기 힘든 힘으로 군중 속으로 빨려 들어가 나 자신이 군중의 일원이 되어가는 것을 느꼈다. 데모가 끝나 군중이 해산하고 각자 집으로 뿔뿔이 흩어져갈 때, 나는 나 자신이 지금까지보다 가련한 존재가 되고 무언가 귀중한 것을 잃고 만 듯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두 번째는 1927년 성난 시민들이 법무성 건물을 불태워버린 빈에서의 체험이었다. “이 일이 일어난 지 이미 반세기가 지났지만, 그날의 흥분은 오늘날까지도 나의 뼛속 깊이 남아 있다. 그것은 내 몸으로 직접 체험한 바로 혁명 일보 직전의 군중 시위였다. 100여 쪽에 걸쳐서도 그날 내가 본 바를 제대로 묘사하지 못할 것이다. 그 후 나는 바스티유의 폭풍우가 어떻게 일어났는지에 관해서는 한 줄의 책도 읽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나는 군중의 일부가 되었고, 그들 속에 정말 몰입되었으며, 또 그들이 하는 일에 추호의 저항감도 느끼지 않았다.”

 그는 군중에 관한 연구를 계속해나가던 중, 연구의 한계를 깨닫게 된다. 즉, 군중 연구가 권력에 대한 포괄적이고도 철저한 연구로 보충될 필요가 있음을 절감한 것이다. “군중과 권력은 서로 극히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어서 둘 중 어느 한 편이 결핍되면 나머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 이렇게 연구가 확대됨에 따라, 그에 소비되는 시간 역시 현저하게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나치즘의 발호는 그에게 군중과 권력에 대한 가장 무시무시한 예제를 제공해주었다. 그는 가까이에서 사태의 본질을 관찰하기 위해 나치스의 진군에도 불구하고 오스트리아에 가능한 한 오래 머물려 했다. 그러나 유대인에 대한 박해가 점점 거세지자 영국으로 망명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후 그는 줄곧 ‘군중’과 ‘권력’에 매달렸다.

 

 

 이처럼 『군중과 권력』은 이처럼 카네티가 35년에 걸쳐 치열하게 연구한 필생의 기록이다. 스포츠 관중에서 정치집회까지, 부시먼족에서 메카 순례까지, 원숭이의 손가락 훈련에서 알코올중독자의 환각까지 카네티는 온갖 군중 현상과 권력의 상관관계를 분석한다. 그는 원시 부족의 신화에서부터 세계종교들의 원전, 동서고금 권력자들의 전기, 심지어 환자의 병례에게 이르기까지 문학, 종교, 인류학, 심리학, 생물학의 영역을 넘나들며 ‘군중의 물리학’ ‘권력의 정신분석학’을 완성했다.

군중과 권력은 군중의 본질과 그 형성 과정, 그리고 권력의 작동 방식을 분석한 책이다. 카네티는 군중을 단순한 다수의 집합체로 보지 않고, 인간 심리의 핵심적인 측면이 드러나는 복잡한 사회적 현상으로 설명한다. 책의 주요 논지는 군중이 어떻게 형성되고 행동하며, 권력자들이 어떻게 군중을 통제하고 이용하는지에 관한 내용이다.

● 군중의 본질:

카네티는 군중을 일종의 생명체처럼 묘사하며, 군중은 자신의 규칙을 가지고 행동한다고 설명한다. 그는 군중을 다양한 유형으로 나누어 설명하는데, 열린 군중(계속해서 새로운 사람들을 받아들이며 확장되는 형태)과 닫힌 군중(고정된 인원으로 외부와 단절된 형태)으로 분류한다. 열린 군중은 시위나 혁명과 같은 급진적인 변화와 연결될 수 있고, 닫힌 군중은 특정 체제나 이념 아래에서 고정된 집단으로 나타날 수 있다.

● 군중과 공포:

카네티는 군중이 자라면서 그 안에 존재하는 개인의 공포가 사라진다고 주장한다. 군중 안에 있을 때 개인은 고립된 공포에서 벗어나고, 자신이 군중의 일부라는 사실이 안도감을 준다. 그러나 군중이 분산되거나 해체될 때, 다시 공포가 돌아온다.

● 권력과의 관계:

군중은 때로는 권력을 따르고, 때로는 권력에 저항한다. 카네티는 군중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권력이 개입하는 방식을 자세히 분석한다. 권력자들은 군중을 자신의 목적에 맞게 조종하거나 군중의 에너지를 통제하려 한다. 군중을 효과적으로 다스리는 권력은 군중의 본질을 이해하고 그 에너지를 활용하는 자들이다.

● 변화와 상징:

카네티는 다양한 군중 현상을 통해 사회적 변화와 권력의 상징적 의미를 설명한다. 군중이 어떻게 폭력적으로 변화할 수 있는지, 혹은 어떻게 자발적으로 형성되는지에 대한 역사적, 사회적 예시가 그것이다. 권력은 군중을 제어하기 위해 상징을 사용하며, 그 상징들은 종종 특정한 역사적, 문화적 맥락에서 큰 힘을 발휘한다.

군중과 권력을 둘러싼 보편적 ‘인간 조건(la condition humaine)’을 파악하고자 했던 카네티의 문제의식과 그가 제시한 분석의 틀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귀 기울일 만한 가치가 있기에, 고전의 재발굴과 재인식이라는 측면에서 의의가 있다.

 

 

 언젠가 여름을 붉게 달구었던 월드컵의 열기는 아직도 우리의 기억에 새롭다. 또 5년마다 치루는 대선마다 많은 사람의 생각과 행동이 집단으로 표출되고 있다. 우크라이나를 침범한 러시아의 전쟁 행보가 계속되는 가운데, 핵을 가진 북한의 위협으로 인한 한반도의 긴장도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1960년 카네티가 고민하던 당시 상황과 별반 다르지 않다. 파시즘과 냉전, 핵전쟁의 위협은 조금도 사라지지 않았으며, 정치 양극화로 인한 진영 간의 프로퍼갠더들의 극성도 여전하다. 현대적인 사회든 포스트모던한 사회든 군중과 권력의 상관관계는 아직도 명쾌히 풀리지 않고 있다.

 군중 현상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군중은 어떻게 형성되고 왜 와해하는가? 도대체 군중이란 무엇인가? 군중은 왜 권력자에게 복종하는가? 권력은 어디서 연유하며 어떻게 지배를 계속하는가? 권력자의 죽음의 위협을 어떻게 제어할 것인가? …… 카네티는 이러한 물음들을 해명하는 일을 자신의 평생의 과업으로 삼았다. 그가 이처럼 군중과 권력의 문제에 매달리게 된 것은 그의 삶과 무관하지 않다.

 

 

『군중과 권력』은 단순한 사회과학적 연구서가 아니라, 인간의 본성과 심리를 심도 있게 탐구한 철학적 저술로 평가받는다. 카네티는 인간이 군중 속에서 어떻게 행동하는지, 그리고 군중의 에너지가 어떻게 사회적, 정치적 변화를 끌어내는지를 폭넓게 고찰한다. 이 책은 권력을 가진 자들이 군중을 통제하고 조작하는 방식을 드러내며, 현대 정치와 사회 구조를 이해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군중과 권력』 독창적이면서도 도발적이다. 카네티는 군중 심리를 통해 권력의 메커니즘을 분석하고, 그것이 현대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설명한다. 특히 이 책은 전체주의적 권력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군중과 권력 사이의 복잡한 관계를 다루며 인간 존재의 불안과 공포를 설명한다. 카네티는 군중에 관한 주제를 다양한 역사적, 문화적 맥락에서 다루며, 그의 연구는 인류학, 정치학, 심리학을 넘나든다. 『군중과 권력』은 오늘날에도 정치적 및 사회적 현상을 이해하는 데 있어 중요한 참고서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