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나드 쇼 4막 희극 『인간과 초인(Man and Superman)』
버나드 쇼 4막 희극 『인간과 초인(Man and Superman)』
영국 극작가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 1856∼1950)가 쓴 4막 희극으로 ‘희극과 철학’이라는 부제(副題)가 붙어 있다. 1903년 발표되었으며 1905년 런던의 코트 극장에서 스테이지 소사이어티에 의하여 초연되었다. 쇼의 중심사상의 하나인 '생명력(life force: 종래에 자연 섭리라고 부르던 개념에 가깝다)'을 기지 있는 대사로 극화한 대표작이다.
이 작품은 '삶의 힘'은 여성에게서 발생하여 남성을 사로잡아 훌륭한 아이를 낳고, 그 발전으로 더 나은 사회를 건설해내는 것이며, 결국 초인의 집단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사회가 우리의 이상사회라는 것을 묘사했다. 종족의 번영을 바라는 모성 본능은 ‘생명력’으로 나타나, 상식과는 반대로 항상 여성은 포수가 되고, 남성은 그 미끼가 된다는 작자의 생명철학을 주인공 터너와 여주인공 앤에 의해 솜씨 좋게 희곡화된 걸작이다.
이 사상은 <알 도리 없지요(You never can tell)> 같은 다른 희곡에도 나타나 있으나, 본편은 이중 가장 단적인 표현으로서 쇼의 대표작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통상적인 상식을 넘은 장편이기 때문에 상연 때는 제3막은 생략하는 것이 보통이다. 제3막은 모두 꿈의 장면으로 일반은 알기 힘들어서 연극연구단체 등에서 <지옥의 돈 후안>이라는 제목으로 따로 상연하기도 한다. 제3막은 이 작품의 긴 서문이나 후기(後記)와 함께 쇼의 사상을 단적으로 잘 나타내었다. 작자에 의하면 생명력을 어떻게 이성으로 조종하는가에 따라 인류의 존재가 좌우된다는 것이다. F.W.니체와 H.베르그송의 영향을 찾아볼 수 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화이트필드 경이 죽으면서 딸 앤의 후견인으로 로벅 렘스덴과 잭 태너를 지목한다. 완고하고 보수적인 노인 로벅 렘스덴은 자유주의자 태너를 못마땅해하지만 앤 화이트필드는 태너를 자신의 배우자로 낙점한다.
앤과의 사랑은 물론 결혼이라는 제도 자체를 경멸하는 태너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앤은 갖은 방법으로 그를 유혹한다. 태너는 앤에게서 도망치듯 스페인으로 향했다가 숲에서 산적 떼를 만나 붙잡히는 신세가 된다. 이어지는 꿈속 장면에서는 돈 주안과 석상, 석상의 딸 아나가 등장해 선과 악, 천국과 지옥, 천사와 악마를 주제로 격렬히 토론한다.
꿈에서 깬 태너는 극적으로 앤과 재회하고, 앤은 결혼은 물론 아버지가 태너를 후견인으로 지목하도록 한 것까지, 모두가 앤 자신의 의지였음을 밝히며 태너에게 결혼을 종용한다. 앤의 강력한 의지 앞에 태너도 결국 굴복하고 만다.
여주인공 앤은 자기 자신의 체내에 있는 생명력에 충동적으로 되어 잭 터너를 뒤쫓는다. 잭 터너는 자유주의자로서 연애는 속박이라고 생각하여 그녀로부터 도피하려다가 마침내 그녀에게 굴복하고 결혼한다. 여주인공 앤의 활력은 오로지 창조력의 맹목적인 충동이고, 그 목적은 사적인 것이 아니라 커다란 우주의 목적이 되는 것이므로, 그녀는 자신의 모든 힘을 발휘하여 온갖 기회에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주인공 타나를 쫓아다니다가 마침내 그를 자기 수중에 넣은 것이다.
비평가, 정치적 활동가, 논객으로서 쇼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그러나 극작가로서 그에 대한 평가는 확고하다. 전통을 지키면서도 그것을 깨부수고 새로운 경지를 열었다는 의미에서 영문학사상 그의 서열은 셰익스피어 다음이다. 60여 편의 드라마를 썼는데 사회 풍자, 위트와 유머가 풍부한 희극에서 그의 재주는 두드러졌다. 특히 “철학적 희극”이란 부제가 붙은 「인간과 초인」에서 쇼는 남녀의 삼각 로맨스로부터 “초인”으로 대표되는 니체의 철학 사상을 전개해 나가며 적재적소에 유머와 농담을 배치해 희극의 차원을 한 단계 끌어올린다. 등장인물들의 기지 넘치는 대화, 심도 있는 토론 속에서 자연, 본성이 추동해 나가는 생명력 있는 삶이 이상사회를 만들어 낸다는 쇼의 오랜 철학적 관점을 발견할 수 있다.
♣
버나드 쇼의 사상이 집약된 이 작품은 극의 구조부터 상황 설정, 극 중 대사까지 고도의 상징성을 함축하고 있다. 게다가 삶과 죽음의 문제, 천국과 지옥의 관계 등 심오한 주제 때문에 다소 난해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몰입을 높이는 극적 반전과 재기 넘치는 대사는 독자를 사유의 길로 인도한다. 그리고 앤과 태너의 결합으로 초인(Superman)이 탄생하리라는 결말 부의 암시에 이르러 독자는 쇼가 궁극적으로 전하고자 한 진짜 메시지에 닿게 된다.
1905년 영국에서 초연되었던 『인간과 초인』은 런던의 코트 극장에서 176회 상연되었다. 참고로 당시 최고의 흥행 기록은 <아무도 몰라>(149회)와 <존 불의 다른 섬>(121회)이었다. 쇼는 『인간과 초인』으로 신세대 지식인들의 우상으로 떠올랐고 이후 10여 년간 그 자리를 지켰다. 그가 20세기 초부터 1차 세계 대전 이후에 이르기까지 젊은이들에게 미친 영향은 웰스나 체스타튼, 벨록, 골즈워디, 베넷 등 당시의 다른 인기 작가들과는 비교가 안 될 만큼 대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