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창섭 장편소설 『삼부녀(三父女)』
손창섭 장편소설 『삼부녀(三父女)』
손창섭(孫昌涉. 1923~2010)의 장편소설로 1969년 12월 30일부터 1970년 6월 24일까지 [주간여성(한국일보사)]에 20회 연재되었다. 손창섭이 사망한 2010년 [예옥]에서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이 작품은 한국 전후세대를 대표하는 작가 손창섭이 한국을 떠나기 전 한국에서 발표한 마지막 작품으로, 2024년 현재의 우리 사회가 앓고 있는 가족해체 문제를 다룬 장편소설이다. 이 작품의 문학적 완성도는 높지 않아서 대중소설로 분류되어야 하지만 1970년에 발표되었고, 원조교제, 계약 가족 등 파격적인 이야기 구성 등은 한국의 인습적인 가족 사회의 부조리를 비판하고 새로운 대안 가족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는 작품이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배경은 1960년대 후반의 서울이다. 주인공 강인구는 40대 중년 남성으로, 자신의 동서(同棲)와 바람이 난 아내와 이혼하고 대학생과 고등학생인 두 딸과 함께 살고 있다.
주인공은 어느 날 친구 계(桂) 사장으로부터 미모의 여대생을 소개받아 데이트를 ‘계약’한다. 등록금과 생활비를 대주고 연애를 즐기는, 오늘날의 원조 교제이다.
그런 한편, 강인구는 요정에서 술을 따르는 친구의 딸을 대부(代父)로서 돌봐주기로 한다.
그러나 이혼한 어머니와 재결합할 것을 요구하는 두 딸과 강인구의 사이는 점점 틀어지고 결국 두 딸은 집을 나가버리고 그는 홀로 남는다.
한국의 인습적인 가족 관계를 회의해 오던 그는, 결국 원조 교제하는 여대생과 친구의 딸을 자기 집으로 불러들여 '삼부녀'라는 ‘계약 가족’의 생활을 꾸린다. 강인구는 이를 통해 현대 가족의 해체와 재구성을 이뤄낸다.
『삼부녀』는 1969~1970년 대중 잡지 주간여성』에 연재된 소설로, 손창섭이 일본으로 떠나기 전 한국에서 마지막으로 발표한 작품이다. 소설 속 주인공의 아내는 제부(弟夫)와 불륜관계에 빠지고, 주인공은 원조교제를 한다. 소설 속 큰딸은 방탕한 자유연애에 빠져 남자와 혼전 동거하는가 하면, 젊은 여성은 아버지의 친구인 주인공을 유혹한다. 심지어 주인공 중년 남성 강인구는 두 젊은 여성과 함께 목욕탕 안에 들어갈 정도로 파격적인 모습을 보인다. 지금으로부터 40년 전에 쓴 소설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진보적이다.
그 전개방식은 요즘 TV 속의 ‘막장 드라마’적 요소를 그대로 확인할 수 있다. 불륜, 근친, 동성애 등 이제까지 한국사회에서 금기시되어 왔던 극단적인 관계 코드가 동원되고 있다. 이렇듯 『삼부녀』는 대중 잡지에 실린 통속 소설을 표방하고 막장 드라마의 전개 요소를 지니고 있으나, 그 형식 속에는 날카로운 현실 비판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 혈연으로 맺어진 삼부녀의 가족은 해체되고 “연고 없는 남남끼리라도 뜻이 같은” 사람들로 새로운 삼부녀 가족이 탄생한다는 스토리 그 자체로 의미를 전하고 있다. 손창섭은 이미 40년 전에 혈연적 관계에 바탕한 한국의 전통적 가족관계에 대한 문제의식을 지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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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창섭은 196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장편소설을 쓰기 시작하였다. 중앙 일간지나 지방 일간지 또는 [주간여성] 등의 잡지에 연재된 이 소설들은, 남녀 관계를 중심으로 한 통속적인 이야기를 중심으로 한 세태소설을 표방하고 있다. 이러한 이야기들 속에는 부조리한 현실의 희생양이 된 인물 또는 비윤리적이거나 반사회적인 존재들에 대한 탐구가 담겨 있으며, 개인의 삶을 억압하는 한국사회의 인습적인 풍토와 타락한 정치에 대한 비판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
주제적으로, 삼부녀는 세대를 아우르는 가족 구조를 통해 전쟁으로 인한 세대 간의 갈등과 단절, 나아가 인간 내면의 공허함을 탐구한다. 소설 제목에서 암시하듯, 아버지와 세 명의 딸(삼부녀)이 중심이 되는 전통적 가족 내 갈등과 혼란은 당시 사회적 변화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손창섭은 이 작품을 통해 전쟁으로 인해 무너진 인간성과 도덕적 붕괴를 탐구하며, 그 안에서의 새로운 질서의 가능성을 그려냈다. 1960~70년대 당시, 혈연만이 가족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의심하고 사랑에 관한 도덕과 윤리의 구속성을 비판적으로 바라본 작가가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장편소설『삼부녀』는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손창섭의 장편소설들에 대한 관심을 이끌기에 충분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