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현대소설

도스토옙스키 중편소설 『죽음의 집의 기록(Zapiski iz miortvogo doma)』

언덕에서 2024. 9. 9. 07:42

 

 

 

도스토옙스키 중편소설 『죽음의 집의  기록(Zapiski iz miortvogo doma)』

 

러시아 소설가 도스토옙스키(Dostoevski Fedor Mikhailovich. 1821~1881)의 중편소설로 1861년에서 1862년 사이에 발표되었다.

 러시아 최초로 감옥과 유형 생활을 묘사하고 있는 작품인 『죽음의 집의 기록』은 4년간, 죽음의 집이라고 불리는 수용소에서 수형 생활을 보낸 작가 자신의 생생한 체험을 담은 살아있는 기록이다. 서술적 자아의 체험이 갖는 객관성을 부각하기 위해, 다시 말해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임을 강조하기 위해 작가는 종종 일인칭 서술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자신의 죄다 없어진 현실 체험을 수기 형식을 빌어 문학화하고 있는 도스토옙스키는 있는 그대로, 겪었던 그대로의 경험적 사실들을 제시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형식주의자들의 용어로 가공하여 창조적 상상력의 예술성을 부가하였다.

『죽음의 집의 기록』의 화자인 "나"가 기억 속에서 반추하고 있는 죽음의 집, 이상스러운 가족들이 살아가고 있는 세계의 풍경을 지탱하고 있는 두 중심축은 '인간의 죄와 벌'이라는 주제이다. 작가의 창작이 집요하게 추적하고 있는 이러한 음조를 바탕으로 변주되는 다양한 현상과 대상과 인물과 사건들은 "나"라는 서술적 자아의 시간 체험에 따라 원근과 안팎의 거리감을 유지하며 작품의 전체 구도를 형성한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주인공 알렉산드르 페트로비치 고리안치코프는 과거 정치적 이유로 시베리아 유형지로 보내진 귀족 출신의 인물이다. 그는 유형소에서의 경험을 기록하여 이 책을 썼다고 설명한다.

 알렉산드르는 시베리아의 오물과 쓰레기, 불결한 환경 속에서 유형소 생활을 시작한다. 처음에는 엄청난 공포와 절망감에 휩싸이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유형소 생활에 익숙해진다. 그는 유형소 내의 살인자, 도둑, 정치범 등 다양한 죄수들과 교류하며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유형소 내의 규칙은 엄격하며, 죄수들은 가혹한 노동과 처벌을 받는다. 알렉산드르는 유형소에서의 생활이 얼마나 비인간적인지, 그리고 이곳에서 인간 존엄성이 어떻게 훼손되는지를 생생하게 묘사한다. 죄수들은 육체적, 정신적으로 고통받으며, 그들의 삶은 끊임없는 투쟁과 고난의 연속이다. 감옥에서의 열악한 생활과 고통을 통해 인간의 본성과 자유의 부재를 깨닫는다. 감옥 안에서 죄수들은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고, 도박하며, 여자를 품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하며 살아간다. 이 과정에서 주인공은 인간의 비열함과 원초적인 본능을 목격하게 되며, 러시아 사회의 어두운 미래를 암시하는 깨달음을 얻는다.

 그 와중에 알렉산드르는 유형소 내에서 몇몇 죄수들과 우정을 쌓는다. 이들은 서로에게 위안과 지지를 주며, 인간적인 교감을 나누기도 한다. 알렉산드르는 이러한 관계를 통해 인간의 본질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된다. 몇몇 죄수들은 탈출을 시도하지만, 대부분 실패로 끝난다. 탈출은 유형소의 현실을 벗어나기 위한 필사적인 시도로, 이는 죄수들의 절망과 희망을 동시에 상징한다.

 알렉산드르는 유형소 생활을 통해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고, 자신의 행동과 선택에 대해 깊이 반성한다. 그는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앞으로의 삶에 대해 새로운 결심을 하게 된다. 알렉산드르는 유형소 생활이 끝난 후 자유에 대한 강한 소망을 품는데 그는 자유를 갈망하며, 그동안의 고난을 딛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는 의지를 다진다.

 

『죽음의 집의 기록』이 도스토옙스키의 옥중 생활을 여실히 묘사한 자서전적 작품이라는 사실은, 그 자신이 “가상 인물의 이름을 빌려 형무소에서 보낸 지낸 나의 생활을 이야기했으며 옥살이를 같이한 옛 친구들을 묘사했다”라고 말한 것을 보아 틀림없는 일이다.

 도스토옙스키는 고달프기 그지없던 시베리아 유형을 통해 아욕(我慾)의 인간을 접하고 관찰하여 그러한 인물을 작품 속에서 재현해 낼 수 있었다. 그리고 고독과 소외 속에 멀어져 가는 도시 하층민들의 쓰레기 같은 삶을 침침한 블라인드 셔터를 통해 보는 듯한 어두운 필치로 묘사하고 있다. 이때부터 우리가 도스토옙스키에게 느끼는 신비적이며 공상적이고, 초인적이며 설교적인 인상이 정립되었는지도 모른다.

 감옥생활을 한다는 것은 한 개인에게 아주 불행한 일이다. 그러나 이 불행을 겪음으로써 도스토옙스키는 더욱 문학적으로 고양된 작품을 집필하게 됐으며, 독자는 감동적인 작품들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죽음의 집의 기록』은 도스토옙스키가 예술가로서 또한 사상가로서 뒷날의 큰 성공을 위해 겪은 연옥의 생활을 상세히 묘사한, 세계 문학에 그 유례가 없는 귀중한 인생 기록이다. 또한 이 작품은 도스토옙스키의 창작 생활에서의 새로운 발전 단계를 엿볼 수 있어 그 점을 밝히는 데에도 중요한 작품으로 꼽힌다.

 

 

 4년간의 수감 생활은 도스토옙스키에게 그를 둘러싸고 있던 밀수꾼, 화폐 위조자, 어린이 강간범, 부친 살해범, 강도 등과 같이 일상생활에서는 마주치기 어려운 인간상과 그들이 저지른 거의 모든 형태의 범죄에 대해서 깊이 있게 관찰할 기회를 제공했다. 도스토옙스키는 죄수를 보며 그들의 범죄와 이에 대해 죄수들이 갖는 심리적인 태도, 그리고 그들 하나하나의 심리적 메커니즘을 이해하려 노력했다. 이러한 관찰을 통해 시베리아 유형 전 도스토옙스키가 갖고 있던 이데올로기는 많은 변형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첫째, 작가는 인간 본성의 어둡고 야만적인 면을 발견하게 된다. 

 둘째, 인간이 이성적인 존재라는 것에 대한 작가 자신의 신념에 대한 수정이 가해졌다. 

 셋째. 죄수들 간의 힘의 역학 관계에 대한 관찰을 통해, 그는 죄수들 간의 격렬한 우위 다툼을 목격하고 가해자이며 피해자가 되고자 하는 인간 본성의 모순을 발견하게 된다. 이 발견은 도스토옙스키가 동등한 권리를 누리는 개인들이 평화로이 공존할 수 있다는 이전의 믿음을 지지할 수 없게 했다.

 도스토옙스키가 경험한 4년간의 “죽음의 집”의 경험은 물론 개인적이고 현실적인 차원에서는 고통이었겠으나, 예술적 차원에서는 위대한 작가로 태어나기 위한 산고의 세월이었으며, 철학적 차원에서는 민중과 러시아성에 대한 깊은 깨달음의 기회였다. 또한 종교적 차원에서는 길을 잃고 헤매던 어린양이 다시 하느님의 품으로 돌아오는 여정이었으며, 작가가 자신을 죽음을 통해 부활한 나자로와 동일시하게 되었던 대사건이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