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스토옙스키 장편소설 『학대받은 사람들(Unizhennye i oskorblionnye)』
도스토옙스키 장편소설 『학대받은 사람들(Unizhennye i oskorblionnye)』
러시아 소설가 도스토옙스키(Dostoevski Fedor Mikhailovich.1821∼1881)의 장편소설로 1861년에 최초 발표되었다. 역자에 따라 <상처받은 사람들>로도 번역되었다. 잡지 [시대]의 창간호(1861년 1월)부터 시작하여 일곱 달에 걸쳐 연재되었다. 페테르부르크를 배경으로 한 그의 대표적인 소설이며 근대 러시아를 뒤흔든 크나큰 사회적 · 문학적 사건들, 즉 크림 전쟁과 러시아 패퇴, 농노제 폐지, 소설 문학과 신문 잡지의 전성기 속에서 쓰였다. 19세기 중엽 러시아 수도 각 구역의 현실감 있는 묘사와 공간 설정을 통해 페테르부르크 상류 사회의 이중적 삶과 하층민의 고통, 그에 따른 비극적 갈등과 모순을 그리고 있다.
이 작품은 예술적으로 큰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작품의 톤·테마·예술적 장치 등은 도스토옙스키가 예술적으로 매우 고심한 끝에 세상에 나온 것이어서 작가를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작품이다. 또 뒤이어 세상에 나오는 작가의 위대한 5대 장편에서 중요한 인물들의 등장을 예고하고 그 서곡의 역할도 충분히 하고 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데칼코마니처럼 꼭 닮은 두 개의 이야기가 교차한다.
● 이반과 나타샤는 원래 사랑하던 사이였으나 나타샤의 사랑이 알료샤에게로 옮겨 간다. 사랑하던 여인이 다른 남자를 사랑함에도 불구하고 이반은 나타샤의 행복을 위해 온갖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소지주로서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었던 이흐메네프가는 아버지 공작의 소송으로 몰락하게 되고, 페테르부르크의 빈민으로 전락할 위기에 있다. 외동딸 나타샤를 끔찍이도 사랑했던 이흐메네프 노인은 자신이 받은 모욕 때문에 딸을 저주하기에 이른다.
● 넬리 엄마의 이야기도 이와 거의 같다. 페페르쿠헨이라는 사람과 사랑하던 사이였던 넬리의 엄마는 발콥스키 공작의 꼬임에 빠져 아버지를 파산에 이르게 하고, 공작과 외국으로 달아난다. 공작에게 버림받는 과정에도, 그 후에도 페페르쿠헨은 그녀의 곁에서 함께 슬퍼하고, 함께 추억을 회상하며 그녀를 위해 온갖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한때 잘살았던 공장주 스미트 노인은 딸로 인해 완벽히 파산해 페테르부르크의 극빈자로 전락한다. 시집조차 보내려 하지 않을 만큼 딸을 끔찍이도 사랑했던 스미트 노인은 용서를 구하며 죽어 가는 딸을 끝끝내 용서하지 않는다.
다른 남자를 사랑하게 된 두 여인, 변절한 연인을 끝까지 돌봐 주고 사랑하는 버림받은 두 남자, 여인을 버린 두 남자인 아버지 공작과 아들 공작, 딸의 배신으로 정신적으로 모욕받고, 경제적으로도 타격을 입고 가난해진 두 아버지. 주인공의 이름만 바뀌었지 거의 같은 이야기로 봐도 무방할 정도다.
그러나 같은 인물, 같은 이야기 전개에도 불구하고 이야기의 끝은 상반된다. 끝까지 용서받지 못한 넬리의 엄마는 페테르부르크의 빈민가 지하실에서 폐병으로 삶을 마감한다. 딸의 이런 주검을 보고 스미트 노인 역시 제 정신을 잃고 광인이 되어 담장 밑에서 ‘개 같은’ 죽음을 맞는다. 스미트 노인은 딸을 사랑하면서도 끝까지 용서하지 않았기 때문에, 딸도 또 자신도 비참한 파국으로 내몰게 된다.
나타샤가 넬리 엄마처럼 비극적인 최후를 맞지 않는 유일하고 결정적인 차이는 바로 아버지의 용서와 연민 어린 사랑에 있다. 연민 어린 사랑과 용서는 사랑받고 용서받는 사람뿐만 아니라, 사랑하고 용서하는 사람도 구원으로 인도한다. 용서와 사랑으로 맞잡은 손으로 인해 나타샤도 이흐메네프 노인도, 넬리의 엄마와 스미트 노인 같은 비극적인 파국을 면하게 된다. 춥고 각박하고 외롭고 고통스러운 이 지옥과 같은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용서와 사랑으로 서로를 부둥켜안고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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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젊은 작가 이반 페트로비치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반은 자신의 첫사랑 나타샤와 그녀의 가족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여러 인물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나타샤는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알료샤라는 남자와 사랑에 빠지지만, 알료샤의 아버지인 왕자 발코프스키의 음모로 인해 두 사람의 관계는 큰 시련을 겪는다.
이반은 나타샤를 돕기 위해 노력하지만, 그의 노력은 번번이 좌절된다. 이야기는 이반의 고통과 절망 그리고 나타샤와 알료샤의 비극적인 사랑을 통해 인간의 본성과 사회의 부조리를 깊이 파헤친다. 도스토옙스키 특유의 심리적 통찰력과 복잡한 인물 묘사가 돋보이는 작품으로, 당시 러시아 사회의 어두운 면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학대받은 사람들』이란 제목은 그 시대 가장 사랑받는 문학적 테마를 의미한다. 죄 없이 불행해지고 밑바닥 삶으로 내몰린 하층민들 그리고 욕심 많고 음흉하며 불행의 선동자인 부유한 상류층이 있다. 이 두 계층 즉 희생자와 범행자 사이의 갈등에서 대도시의 비참함이 야기된다.
오직 돈과 쾌락만을 추구하는 이기주의자 발코프스키 공작의 악마적인 그림자를 배경으로 그 아들 알료샤, 공작에게 학대받은 이흐메네프 노부부의 딸 나타샤, 그 약혼자이며 화자로 등장하는 바냐(이반 페트로비치), 백만장자의 딸 카챠 등 연약하지만 선의를 가진 인간들의 뒤얽힌 사랑 이야기가 본 줄거리를 이룬다. 스미스 노인과 그의 늙은 개의 죽음을 묘사한 첫머리 장면은 무척 유명하며, 격렬한 소용돌이 같은 긴 이야기는 공작의 남모르는 딸로서 신비로운 매력을 지닌 미소녀 넬리의 비극적 결말로써 끝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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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히 멜로드라마적인 이 소설의 주인공이자 화자인 이반은 공상적인 꿈으로 가득 찬, 가난하고 병약한 작가이다. 그는 도리에 어긋나게 변덕과 악습을 일삼는 부유한 공작의 음모에 넘어간다. 작품 전체를 통틀어 가장 진실하고 풍부하게 묘사된 인물은 이흐메네프 노부부이다. 스미스와 그의 딸 그리고 손녀 넬리에 관한 일화는 지나치게 소설적이고 박진감이 부족하지만, 넬리에게도 도스토옙스키가 주장하는 시정이 살아 숨 쉬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다. 특히 가혹한 주변 상황과 사악한 사람들에게 상처받고 망가진 상냥한 영혼의 고뇌,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는 미숙한 연애 감정에 대한 고민 등은 독자의 마음에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장편소설 『학대받은 사람들』 속의 작중 ‘학대받은 사람들’은 페테르부르크라는 음울한 도시가 풍기는 신비롭고 매력적인 분위기 속의 인물들이다. 이 작품에서는 ‘학대받은 사람들’이 보이는 엽기적이고 비밀스러운 실마리와 극적인 구성, 주요 인물의 독특한 성격, 작가의 인도주의적 열정 및 엄숙한 도덕 등 도스토옙스키 예술의 바탕을 이루는 여러 특징과 그 전형적인 수법이 선명하게 나타나 있다.
작가가 문단에 갓 등단했을 때의 환경과 감회를 젊은 작가를 통해 이야기함으로써, 도스토옙스키로서는 드물게 자전적인 요소를 짙게 가미하여 그의 다른 걸작들과 달리 독특한 친근감을 주는 작품을 만들었다. 이러한 친근감과 이야기의 소설적 흥미로 보아 『학대받은 사람들』은 도스토옙스키의 예술세계에 발을 들이기 위한 입문서로 더없이 적합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