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소설

정이현 장편소설 『달콤한 나의 도시』

언덕에서 2024. 7. 8. 07:17

 

 

정이현 장편소설 『달콤한 나의 도시』

 

정이현(鄭梨賢,1972~)의 장편소설로 2006년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발표 당시 도시적 삶의 코드를 전면에 내세워 2, 30대 젊은 여성들의 큰 공감을 불러일으킨 작품이다. 20대, 30대가 되면서 인생의 전환점 앞에 선 사람들의 풍경을 경쾌하면서도 날카롭게 그려내었다. 작가는 현대적 감수성을 글에 잘 녹인다는 호평을 받고 있는데 문학적 엄숙주의를 배반하고, 가볍고 불온한 상상력을 기반으로 한 톡톡 튀는 문체가 특징이다. 그렇다고 해서 작품의 내용이 가벼운 것도 아니며, 신세대의 로맨스나 사회적 역학에 대한 통찰력으로 예리하게 주제를 파고든다는 평을 듣는다. 작품의 대중성도 있어서 해당 소설이 드라마로 제작되었다. 

  이 작품은 누구나 공감할 만한 시대의 풍속을 담은 이야기이다. 2008년 SBS방송국에서 드라마로 제작하여 방송되어 일본으로 수출되었다. 소설 또한 일본어로 번역되어 출판되었다. 이후 여러 번 뮤지컬로도 제작되어 공연되었다. 중국에서도 제작되어 방영된 바 있는데 해당 드라마의 제목은 ‘첨밀도시(甜蜜都市)’였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서른한 살의 직장생활 7년 차인 오은수는 직장 상사로부터 ‘칙칙한 오은수’라는 말을 들으며 원룸 연립주택에서 독립해 사는 미혼여성이다. 근무처인 출판사에서는 열정과 정의로 뭉친 신입사원이 굴러들어 와 박힌 돌인 오은수를 가차 없이 흔든다. 여기에 연이어 ‘결혼은 무덤’이라고 외치던 전 애인의 청첩장과 절친한 친구 하재인의 깜짝 결혼 발표로 한 방 더 맞는다.

 누군가의 위로가 필요한 바로 그때 은수에게, 술자리에서 우연히 동석하게 된 연하남 윤태오를 만나고, 직장 상사가 소개해 준 순수한 범생이 김영수가 만나는가 하면, 순수한 이성 친구로 지내고 있는 팔자 좋은 백수 남유준은 프러포즈 비슷한 것을 해온다.

 별 볼 일 없는 직장인 여성으로선 선택이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다. 오은수는 직업이 없는 일곱 살 연하남 윤태오가 진정으로 좋아서 이유 없는 동거를 시작하나 사회적인 시선과 보장되지 않은 장래성을 생각해서 관계를 정리한다. 직장 내 회의에서 아이디어를 제공한 오은수는 그 결과에 책임을 지고 사표를 쓴 후 실직자가 된다.

 직장 다닐 때 상사의 소개로 알게 된 다섯 살 연상의 사업가 김영수는 성실하고 예의 바른 사람이어서 오은수가 먼저 청혼한다. 결혼 날짜를 잡으려는 즈음에 김영수가 증발한다. 김영수는 은수에게 오랜 기간 호감을 가지고 있었지만, 결국 자신의 길을 찾기 위해 다른 도시로 떠나게 된다. 그는 새로운 직장에서의 도전과 기회를 맞이하며, 은수와의 관계에서도 새로운 변화를 경험한다. 은수와 영수는 서로에게 중요한 존재임을 깨닫지만, 각자의 삶을 존중하며 각자의 길을 걷기로 한다. 그즈음에 결혼한 친구 하재인이 이혼하고, 부모님은 분가하여 별거에 들어간다.

 이후 은수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정한다. 은수는 출판사에서의 일에 더 큰 열정을 가지고 임하며,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또한, 그녀는 자신의 꿈과 목표를 향해 나아가며, 새로운 시작을 준비한다.

 

 한국 사회는 유난히 세대 구분에 민감한 듯하다. 서구에 비해 사회 변화와 정치적 굴곡이 빠르고 격심하기 때문으로 대략 10년 주기로 그 세대의 특성과 명칭이 바뀐다. 전후세대, 4·19세대, 통기타 혹은 유신 세대, 386세대, X세대…. 이들 중에서도 386세대까지는 시대 의식이나 역사의식이 개입되는 공통점이 있지만, 그 이후부터는 공동체 의식이나 사회의식은 슬그머니 실종되어 버리고 만다. 그 빈자리에 들어선 생각과 행동 패턴은 무엇일까.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 개인마다 마음 가는 것과는 별개로, 이들에게는 각각 잉여와 결핍이 담겨 있다. 1980년대에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내고 90년대에 20대를 맞았으며 2000년대에 접어들어 본격적인 사회생활을 시작한 세대가 소설의 주인공들이다.

 작가는 이전 시대 작가들과는 달리 시대에 대한 부채감에서 자유롭고 소위 민족과 사회라는 정치적 담론과도 거리를 둔 듯하다. 대신에 정치와 경제, 사회의 이념 논리 대신 그들 거대 담론에 묻혀 미처 조명받지 못했던 개인, 나와 너의 24시간을 채우고 있는 이미지(패션과 광고), 대화(수다와 기사, 인터넷 메신저, 휴대폰 문자), 관계(가족과 연인, 부부) 등에 주파수를 맞춘다.

 

 

 작품 속 주인공은 이전 세대 여성 작가들에 의해 그려진 여성 화자의 모습과도 차별성을 보인다. 1990년대 여성 소설이 전통적인 가부장제에 희생당하거나 차별에 앓는 여성의 저항과 제도 밖으로의 일탈을 주제화했다면, 작가의 ‘그녀들’은 그 남성 우위의 이데올로기와 자본주의의 보이지 않는 폭압 아래 형성된 여성상을 수용하는 듯하다가 이내 이용하는 영악함을 보여준다. '적나라한 여성성'을 보여주되 그 속에 숨어 있는 사회적 역학 관계를 새로운 시각으로 접하게 만든다. 이는 작가가 메마른 현실의 재해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놓았기 때문일 듯하다.

 이 소설은 이처럼 은수를 중심으로 그녀의 두 친구 이야기를 에피소드로 끼워 넣으면서 30대 초반 대도시 미혼여성들의 사랑과 연애 풍속도를 정밀하게 그려내었다. 이메일은 기본이고 문자메시지와 이모티콘이 중심 소통 수단이며, 떡볶이로 식사를 대신하고도 스타벅스 커피는 꼭 마셔야 하며, 수십 종의 아이스크림 이름을 줄줄이 꿰는 소비의 주체다. 친구들끼리 만나서 나누는 대화에 철학적이거나 사회적인 이슈가 등장하는 일은 거의 없다. 안정된 위상을 확보하기 위해 어떤 남자를 잡아야 할지 심하게 고민하는 게 전부다. 이 소설은 ‘속도감 있는 전개’와 ‘가벼운 듯하지만 녹록지 않은 주제 의식(생각할 거리)’ ‘간결하지만, 머릿속에 꼭꼭 새겨두고픈 꽉 찬 문장’으로 진행된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모두가 모른 척해왔던, 누구든 볼 수는 있지만, 아무나 쓸 수는 없는 개인의 욕망과 같은 세계의 이야기라고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