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소설

이광수 장편소설 『재생(再生)』

언덕에서 2024. 11. 5. 07:44

 

이광수 장편소설 『재생(再生)』

 

이광수(李光洙, 1892~1950)의 장편소설로 1925년 발표되었다. 작자의 이상주의적 경향의 인생관을 종교적인 측면에서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이광수는 초기의 기독교사상에서 후기의 불교적 사상으로 변모하였다고 볼 수 있는데, 기독교에서 자신의 이상을 발견한 춘원의 사상은 이 작품 『재생』으로 대표된다. 『재생』은 [동아일보]에 1924년 11월 9일부터 1925년 3월 12일까지, 그리고 다시 1925년 7월 1일부터 9월 28일까지 연재되었다.  이 작품은 이광수가 척추카리에스 수술로 석 달간 연재를 중단하면서도 끝내 작품을 완성한, 작가에게 중요한 의미가 있는 작품 중 하나이다.

 순영이라는 한 여주인공의 타락과 재생을 다룬 작품이다. 작가는  마지막 자살이라는 순간까지 찬송가가 순영의 귀에 들리게 하고, 선교사 P 부인의 입을 통한 기독교적인 희생관 같은 내용은, 순영의 재생 동기를 기독교의 교리와 관련시켰다. 이 작품에 일관된 기독교적인 주조와 함께 춘원의 기독교적인 인생관을 대변한다. 이 작품은 사랑과 민족의 갈등, 젊음의 혼돈, 세상의 무성한 소문 등을 경험한 이광수의 내면이 잘 반영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작가는 1919년 삼일운동 실패 후 무력감에 빠져 민족적 이상을 상실하고 타락한 생활을 하고 있던 조선의 젊은이들을 질타하고 그들의 재생을 촉구하였다. 

 이 작품은 1960년, 1969년 두 번에 걸쳐 영화로 만들어졌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장안 청년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여학생 김순영과 청년 신봉구는 3·1 운동 준비 중 만나 사랑에 빠진다. 운동의 실패로 신봉구는 체포되어 감옥 생활을 하게 되고, 김순영은 두 달 만에 풀려난 후 사치와 허영에 빠진 현실 지향적인 인물로 변해간다.

 신봉구가 2년 반의 형기를 마치고 출옥할 무렵, 김순영은 부호 백윤희와 어울리며 그의 첩이 된다. 그러나 신봉구를 향한 미련과 양심의 가책에 괴로워하며, 두 사람은 석왕사에서 영원한 사랑을 맹세한다. 그러나 곧 김순영은 백윤희의 첩으로 돌아가고, 신봉구는 복수를 결심하며 인천의 미두 중개점에서 일하며 부자가 되겠다는 목표를 세운다.

 신봉구의 주인 김진영이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하고, 신봉구가 살인 혐의로 체포된다. 이 과정에서 김순영은 법정에 자진 출두하여 신봉구가 무죄라고 증언하지만, 세상의 눈을 의식하며 진술을 번복하는 등 혼란스러운 태도를 보인다. 감옥에 갇힌 신봉구는 스스로를 돌아보며 종교적으로 각성하게 된다.

 진범이 체포되면서 신봉구는 무죄로 석방된다. 신봉구는 과거를 정리하고 농촌 운동에 헌신하기로 결심한다. 한편, 김순영은 백윤희와 결별하고 방탕한 삶에 대한 대가로 몹쓸 병에 걸려 시각장애인 딸을 낳게 된다. 죄책감 속에 힘든 삶을 이어가던 김순영은 신봉구를 찾아가 용서를 구하지만, 그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절망에 빠진 김순영은 결국 금강산 구룡폭포에 몸을 던져 생을 마감한다. 얼마 후 신봉구는 김순영이 남긴 편지를 받고 그녀를 찾아가지만 이미 그녀는 세상을 떠난 후다. 신봉구는 그녀의 장례를 치르고 무덤에 비목을 세우며 자신의 슬픈 사랑을 마무리한다.

 

『재생』은 3·1 운동이 처음부터 ‘돈이나 애욕’과 선명하게 구분되는 숭고한 운동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는 뜻밖의 인식을 드러낸다. 3·1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감옥살이까지 하며 나라를 위하여 몸 바치고자 했던 주인공 심봉구는, 그 심층의 동기가 바로 김순영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음을, 즉 “내 한 몸의 만족을 위한 것”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었음을 반성하고 이후 헌신의 삶을 살아간다. 반면 김순영은 많은 고민 속에서도 매번 ‘소화기’(돈)와 ‘생식기’(육욕)의 행복만을 좇는 삶을 선택함으로써 마침내 쓸쓸한 죽음에 이른다.

 지금까지 『재생』은 흥미 본위의 통속소설로 규정되거나, 3·1 운동의 후일담으로 독해되거나, 민족(주의) 의식과 관련해서 논의되었다. 그러나 작품의 제목인 ‘재생’의 참된 의미에 주목해 본다면 비대칭성의 세계에 빠져 있던 신봉구가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 사이의 연속성 및 동일성을 강조하는” “대칭성의 사유를 깨닫고 그것을 실천하는 인간으로 다시 태어난 것을 의미한다”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이광수는 다양한 작품을 통해 시대의 전형을 반영해 왔다. 『재생』또한 그러한 작품의 특성을 보이며, 3.1 운동 이후의 혼란스러운 시대상과 인간 본성에 대한 탐구, 기독교의 수용과 같은, 당시 우리 사회 전반을 관통하는 문제의식을 담아내었다. 작가는 종교적이고 도덕적인 인생관과 이기적이고 배금주의적인 인생관 사이에서 갈등하는 중심인물 김순영의 모습을 통해 동시대 신여성의 삶을 재현하는 한편, 급변하는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흔들리는 인간의 심리와 삶을 사실적으로 그려내었다.

『재생』은 춘원의 소설 중 가장 통속소설에 가깝다는 평을 받을 만큼 흥미롭고 재미있는 연애소설이다. 또한 3·1 운동 이후 패배주의적이고 퇴폐적인 사회 분위기와 청년들의 풍속도를 개탄하여 각성시키려는 의도로 쓴 소설로서, 주인공 김순영은 1925년경 조선의 시대상을 대표하는 전형적인 여인이다. 이 작품은 단순한 애정소설이기보다 패배주의와 이기주의에 젖은 우리 민족을 계몽하려는 사실주의 작품으로 주목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