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무영 단편소설 『죄와 벌』
이무영 단편소설 『죄와 벌』
이무영(李無影, 1908~1960)의 단편소설로 1959년 [자유문학]에 발표되었다. 천주교 성직자가 세속적인 혈연관계와 고백 성사의 존엄성 사이에서 내적 갈등과 고뇌를 체험하는 과정을 그린 소설로 인간의 속성 중 빛의 자아와 어둠의 자아 갈등을 종교적 구원의 관점에서 바라본 작품이다.
작중 박 신부의 동생 찬재가 살인 누명을 쓰고 재판받게 되는데 박 신부는 우연히 바오로의 고해성사를 듣고 그가 범인임을 알게 되지만 그 내용은 절대로 밝혀서는 안 된다는 교리 때문에 괴로워한다. 밝히지 않으면 동생이 억울한 벌을 받게 되고 밝히면 신부의 신성한 직분을 포기하는 것이 될 수밖에 없는 진퇴양난의 처지에서 갈등을 느낀다.
한참 괴로워하다 주교가 깨우는 바람에 깨보니 바오로가 자수했다는 소식이 와 있었다. 종교적인 직분과 세속적인 정의감 사이에서 괴로워하는 인간으로서의 신부의 모습이 이 소설의 초점이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늦여름 어느 날, 거물급 인사 한규덕이 괴한의 피스톨에 맞은 살인 미수 사건이 터진다. 경찰은 유력한 용의자로 사건 현장에 있다가 검거된 박 신부의 친동생 박찬재를 지목한다. 형사가 박 신부 집을 찾아와서 사건을 전후한 찬재의 행적에 대해 묻고 간다.
사건 발생 삼 주일만에 용의자가 범행 일체에 대해 자백을 했다는 보도가 나온다. 그러나 한 씨 저격 사건에 대한 보도는 추측 일변도였다. 다시 열흘이 지났으나 배후 관계는 실마리도 잡아내지 못한다. 박 신부는 살인범의 형이라는 죄책감에 술을 마시고, 그때 교우 '바오로'의 방문을 받는다. '바오로'는 고해를 하다가 괴로움을 이기지 못하고 벌떡 일어서서 밖으로 뛰쳐나간다. 얼마 후, 다시 '바오로'가 나타나 자신이 한규덕 살인 사건의 범인이라고 고해를 한다. '바오로'는 자신의 가족을 부탁한 뒤에 자수하러 떠난다.
박 신부는 이튿날 새벽 미사에서 '바오로'를 위해 기도를 올리고 미사 후에 남산동 비탈의 '바오로'의 집을 찾아간다. 박 신부는 그의 아내에게 돈을 전해 준다. 그러나 '바오로'가 자수했다는 기사는 나지 않고 범인 박찬재의 심판이 조만간에 있으리라는 기사만 실린다.
다음날, 박 신부는 남산동으로 다시 찾아가지만 '바오로'는 집에 없다. 며칠 뒤 강론을 하다가 '바오로'를 발견하나 그는 강론 중에 나가 버린다.
영화 '나는 고백한다'를 개봉하는 날 열리기로 한 아우의 첫 공판이 연기된다. 박 신부는 영화를 보면서 '바오로'의 고명과 배신을 생각한다. 박 신부는 '바오로'가 자수할 것을 기도하면서 기다린다. 마침내 박 신부는 갈등 속에 고명의 비밀을 누설하고, 동생의 공판에서 방청하던 그는 '바오로'의 침묵과 찬재의 사형 언도에 고함을 지른다. "저 놈이 진범입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꿈속의 일이었다. 그때 주교는 박 신부의 잠을 깨우면서 '바오로'가 자수했음을 알려 준다.
이 소설은 인간의 죄와 벌, 사람의 판단과 종교적인 구원의 문제를 진지하게 다루고 있다. 어느 천주교 성직자가 세속적인 혈연관계와 고백 성사의 존엄성 사이에서 내적 갈등과 고뇌를 체험하는 모습의 이 작품은 한국 소설사에서 매우 이질적인 작품이다. 우리의 정신사의 흐름 속에는 원죄 의식이 없으므로 '참회록'은 매우 희귀하다. 죄를 다룬 작품이라 해도 대체로 관습이나 법률상의 죄만 다루므로, 그것을 요행히 피하기만 하면 잘못의 잘못됨은 망각의 피안으로 사라져 버린다.
그런데 이 작품은 가톨릭 성사인 '고백의 존엄성'과 '세속적 유혹' 사이에서 고민하는 한 신부의 모습으로 현실감을 준다. 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몰린 친동생과 살인을 고해한 진범 사이에서 고민하는 박 신부의 갈등을 축으로 종교상의 문제를 넘어 인간 사회의 죄와 벌에 대한 제도적 의미와 양심상의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또한 진범의 자수를 통해 인간들의 죄상 속에서도 희망을 일깨워 준다. 즉 인간주의적인 세계관이 암시된다.
이 작품은 세속적 인간들을 풍자한다. 신문 기자들은 인간의 본성과 신의 뜻에 대하여는 관심조차 두지 않고 법석을 부린다. 법정의 방청객들은 자신의 죄는 뉘우칠 줄 모르면서 남의 허물을 쉽게 속단하고 서슴없이 비난한다. 또한 재판관들은 무고한 피의자를 범인으로 몰아 사형 선고를 하기에 주저함이 없다. 이들의 속물 같은 죄상을 이 단편은 비웃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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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의 극적 반전은 살인 사건의 진범의 자수 대목이다. 그러나 우리를 감동하게 하는 부분은 고백 성사의 내용을 누설하지 않으려는 박 신부의 고뇌와 정직함이다. 결국, 이 소설의 초점은 한 성직자가 종교적인 직분과 세속적인 정의감 사이에서 고뇌하는 모습이다.
이 소설에서 박 신부는 성직자로서 고해성사 비밀을 지켜야 하는 고뇌와 동생에 대한 정 때문에 갈등하는 인물이다. 어느 경우를 어겨도 윤리적일 수 없는 상황이다. 만약 박 신부가 동생에 대한 혈육의 정으로 인해 진실을 밝힌다면 사제로서 고해성사 의무를 어겼다는 이유로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나 그가 비밀을 지키고 진범 바오로가 자수를 하지 않는다면 아마도 죄 없는 동생을 죽음으로 몰게 된다. 결국 박 신부는 어느 쪽을 선택하든 스스로에게 양심의 가책을 남기게 되는 '신부의 딜레마'를 안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다행이 바오로의 자수로 인해 일단락된다. 범인이 자수를 해야만 하는 필연성을 이야기 구성에 실었다면 작품의 완성도가 높았을 덴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