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소설

김주영 단편소설 『새를 찾아서』

언덕에서 2024. 11. 14. 07:43

 

 

김주영 단편소설 『새를 찾아서』

 

김주영(金周榮.1939∼)의 단편소설로 1987년 발표되었다. 김주영 소설은 농촌을 배경으로 할 때는 토속적인 공간을 무대로 하여 향토색 짙은 언어와 현장감 있는 비어·속어·해학을 구사하고 도시를 배경으로 할 때는 소외된 인간에 대한 니힐한 묘사와 동물적인 환경 속에서의 생존에 대한 진한 회의, 이를 통한 비극적인 정황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김주영의 소설 중에는 떠남과 돌아옴을 큰 줄기로 삼은 소설이 있다. <홍어>가 그러하다. 부재하던 아버지의 돌아옴 그리고 어머니의 떠남, 어느 겨울날 삼례가 찾아오고 다시 떠남 등은 작품 전체의 뼈대가 됨과 동시에 작품에 긴장감을 준다. 단편소설 「새를 찾아서」는 떠남과 돌아옴이라는 주제의 연장선상에 놓여있는 작품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는 돌아옴은 뚜렷하게 드러나 있지 않으며 ‘떠남’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나는 선림원 사지의 답사 여행을 가기 위해 회원 일행을 태우고 약속 장소로 갔다. 그러나 지각한 나를 기다리지 않고 버스는 떠나고 없었다. 버스를 따라 잡기 위해 택시를 잡았다. 택시로 양양까지 가는 도중 어렸을 때 누나와 새를 후리러 다닐 적을 회상했다. 일찍 어머니를 여의고 나이 차가 열한 살이나 났기 때문에 나에게 있어서 누나는 거의 어머니 맞잡이였다. 그녀는 막내인 나를 거의 헌신적으로 돌보려 했다. 새집을 후릴 때, 가계가 넉넉한 집의 아이들은 덴찌라고 불리는 손전등을 가지고 다녔다. 새집의 구멍에다가 갑자기 덴찌 불빛을 들이대면 새들은 그 갑작스런 불빛에 놀라 혼수 상태에까지 이르러서 꼼짝하지 못하고 있을 때 재빨리 손을 집어넣어 새를 잡아낼 수 있었다. 덴찌가 없는 우리는 새를 한 마리도 잡을 수 없었다.

 어느 날 밤, 누나와 나는 획기적인 일을 하나 생각해 냈다. 바로 우리 집도 새들이 곧잘 깃들이는 초가집이었고 초가집인 이상 필경 여느 집들처럼 대여섯 군데의 새집은 있을 거라는 생각에 우리는 새들을 후리는 일에 곧 착수했고 새 한 마리를 방안에 가두는 데 성공했다. 우리는 어두운 방 안에서 새를 잡으려고 난리를 피웠으나 새는 잡지 못했다.

 결국 택시로 양양까지 갔고 양양에서 다시 오색 약수터로 갔으나 거기에서도 일행을 발견하지 못하자 밤중에 낙산과 설악산 주차장을 모두 뒤져보았으나 실패했다. 나는 다시 오색으로 돌아왔다가 아침에 택시를 타고 목적지인 원림사지에 도착했다. 인적 없는 그곳에서 몇 시간 동안이나 꼼짝않고 앉아 똑같은 구도의 풍경을 응시하다가 한 마리의 새가 솔방울이 되는 것을 보았다. 절터에서 내려와 긴 계곡을 걸어서 선림원 사지로 가는 길 초입에 이르러서 일행을 만났다. 우리 일행은 나보다 먼저 출발했지만 늦게 도착한 것이었다.

 

 김주영의 인물들이 찾고 있는 ‘새’는 삶이요, 생명이요, 아름다움이다. ‘새’는 명사가 아니라 동사인지도 모른다. 새를 ‘산 채로’ 잡기 위해서는 엄청난 도로(徒勞)가 필요하다. 날아다니는 새를 잡으려면 나도 끊임없이 떠돌지 않으면 안 된다. 처음부터 산 채로건, 죽은 채로건 많은 사냥감을 노획하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용의주도한 작전에 의해 몰이꾼처럼 추격해 가면 그만일 터이다.

 그러나 찾고자 하는 대상이 살아있는 채로의 아름다움이라면, 새잡이꾼처럼 밤새도록 헤매고 다닐 수밖에 없다. 선림원 사지를 찾아가는 사람의 이야기에는 내레이터가 어린 시절에 누나와 함께 체험한 새잡이 이야기가 회상의 형식으로 삽입되어 있다. 그 새잡이는 기다림과 헛된 노력의 연속이다.

 

 

 작품 속에서 ‘나’는 선림원 사지로 떠나기 위해 길을 나선다. 그러나 일행은 이미 떠나고 없다. 포기할 법도 한데 어떤 힘이 나로 하여금 이번 여행을 포기할 수 없게 만든다. 이러한 결심 자체가 이미 이번 여행이 일상에서의 예사롭지 않은 탈출임을 예고하고 있다. 일행과의 엇갈림은 나를 양양에서 오색으로, 낙산으로, 설악산으로 자꾸 떠나게 만든다. 쉽사리 잡히지 않는 새를 잡으려 방안에서 이리저리 몸을 던지던 어릴 적 나의 모습은 일행을 찾아 이곳저곳으로 헤매고 있는 지금의 나의 모습과 오버랩된다.

 작품 외적으로 볼 때 이 소설에서 ‘떠남’은 독자가 끝까지 작품에 대한 긴장감을 가지고 소설을 읽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그와 동시에 작품 내적으로는 ‘나(영구)’의 일상생활과 기존 관념에서의 탈출을 가능하게 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또한 떠남은 ‘나’에게 자유로운 생명력을 발산하는 수단이 된다. ‘나’는 새처럼 자유로운 영혼이 되기를 갈망하는 인물이다.